옛날에 그파 1회 정도때 써둔건데 지금에서야 푼다 ㄸㄹㄹ [유현민] "나는 왜 늘 네 연합에 필요한 사람이 아니야?" 단순한 의도의 질문이었다면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이 질문의 진짜 속뜻을 눈치챈 현민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유현이 기다리는 대답은 '형이 가지고 있는 패가 늘 저랑 연관이 없어서요.' 혹은 '게임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따위의 변명이 아니었다. 물론 현민도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밖에는 다른 사람들이 회식이다 뭐다 해서 꽤나 시끄러운 상황이었고, 그래서 두 사람이 사라져도 직접 찾으러 다니지 않을 상황이었다. 어느 방에 있든 따라다니는 카메라도 없는, 그런, 현민만 난처한. 유현은 그 온화한 얼굴을 싹 굳히고 무표정으로 제 앞의 소년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왜 대답을 못 하는 걸까 현민이가. 네 연합에 끼워 줘, 이런 말 하는 거 아냐." "알아요, 그래서...... 알아서 내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네 인생에서도 내가 필요 없을까?"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현민은 아무렇지 않게 쓴 말을 내뱉는 유현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하지만 시선을 피할 때마다 나 봐, 오현민- 하는 목소리가 더 무서웠다. 달다고 생각했던 목소리가 이름도 못 들어봤던 약초처럼 썼다. 현민은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어 유현과 눈을 마주했다. 술에 강하지 않은 유현의 얼굴빛은 티 안 나게 붉었다. 막 한 잔 마시려다 얘기 좀 하자는 말에 잔을 내려놓아야만 했던 현민과는 다르게. "난 네가 좋아. 내가 늘 말하니까 너도 알 거 아냐. 네 게임 스타일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기술도 좋아. 근데 왜 대상이 내가 아닌 건데 현민아." 유현이 술을 몇 잔 걸쳤는지까지 일일이 세지는 못했지만 그의 발음은 살짝 엇나가고 있었다. 지금 이런 걸 캐치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현민은 그간 유현과 자신의 플레이를 돌아보며, 그의 질문의 핵심 요소를 제외하는 선에서 대답했다. "불신의 여지를 준 건 우리 서로잖아요, 저 혼자가 아니에요." "불신의 여지... 그래, 그 여지 때문에 난 너와 붙어먹지 못했다 이거지." "이번 파이널에서는 믿으면 돼요.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런데 현민아. 뭐가 하나 틀렸다." 뭐가요. 살짝 불안한 상황임을 직감한 현민이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유현의 살짝 풀린 눈이 그 발을 봄과 함께 찌푸려졌다. 피하냐? 현민은 그런 게 아니라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취한 사람에게는 말보다 큰 제스처를 보여 주라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취한 상대방은 그것마저 무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유현은, 달랐다. "난 너 믿었어. 네가 아니었다고 아무리 말해 봤자 과거는 변하지 않아." "...... 아니에요. 형, 일단 우리 회식 자리로 돌아가는 게......" "내가 취했다고 생각하지 마 현민아. 난 네 자존심, 비틀어 꺾을 수 있어." 저보다 몇 살이나 많은 사람에게 말로 이길 수 있을 만큼 현민은 강하지 않았던 것일까.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악바리를 써 가며 참았다. 이 사람 앞에서 우는 건 정복에 순응하겠다는 뜻과 같을 것만 같아서. 유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처음보다 멀어진 그들의 거리를 보았다. 그리고 현민이 걸었던 딱 두 걸음만큼, 다시 그에게 다가갔다. "현민아, 혹시 내가 싫냐?" "형을 내가 왜 싫어하겠어요." "망가뜨려도 돼? 혹시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 경훈이랑 잘 놀던데 그런 거야?" "경훈 형은 여기서 꺼낼 이름 아니에요, 그리고......" 나는 장난감이 아니라 망가뜨릴 수 없어요. 느슨해질 대로 느슨해진 그의 눈하며 몸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술에 취해서 못 하는 소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현민의 눈이 비친 유현의 모습은 딱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비위에 맞춰 줘야만 하는 게 이 게임의 필승법과도 같았다. 그는 건드리면 안 될, 도전하면 안 될 사람이었다. 유현이 어느새 현민의 손목을 잡은 채로 벽에 기대 있는 상태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카이스트 천재 오현민, 결국 정신적으로는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네." "뭐라고요?" "사람도 장난감처럼 한없이 망가질 수 있는데." 유현의 정확한 발음과 목소리에 현민은 곧장 경직되었다. 언제든, 어떻게든 자신을 망가뜨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정신을 지배해 왔다. 아득해져 가는 정신과 시선으로 쳐다본 유현의 머리색이 천장 조명을 받아 은은한 주황으로 빛을 냈다. 분명 예쁜데, 그의 앞에서는 예쁘다는 말도 함부로 꺼낼 수 없었다. 아니, 꺼낼 수 있대도 하지 않겠지만. "볼까, 되는지 안 되는지?" "... 원하는 게 뭐예요, 형. 대체 뭐로 만족시켜 드려야 해요." "너." 이제 그 풀린 눈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도 흐릿해지는 시점이었다. 현민은 부어오르기 시작하는 손목을 힐긋, 저만을 눈에 담고 있는 유현을 힐긋 보았다.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 오늘은 그냥 들어가지만, 다음엔 이런 것도 없어." 게임에선 자신이 우위일지 몰라도, 사회에선 한참 멀었다. 아, 아...... 들어가 버리는 유현을 보며 현민은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분명, 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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