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랑팔랑 떨어지는 벚꽃잎 사이로 사람들이 날뛰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사방팔방. 동민은 미간을 있는대로 찌푸린다. 지금 이 사람들이, 벚꽃을 보다가 미쳐버린 건가? 다들 제정신이 아니네. 그렇게 고개를 젓고 있는데, 현민도 그 사람들처럼 날뛴다. 뭐하냐, 너. 펄쩍펄쩍 뛰는 현민의 팔을 잡으니, 현민은 아쉬워하는 한숨을 내쉰다. 아, 잡을 수 있었는데!
"뭘 잡아, 너 정신줄이나 잡아."
"아잇, 혀엉. 떨어지는 벚꽃잎 하나를 딱, 잡으면 짝사랑이 이루어진대요."
"웃기네."
"진짜거든요! 맞는지 아닌지 저랑 내기할래요??"
내기해요! 내가 잡으면, 내 짝사랑이 이루어지는 걸로! 그렇게 해요! 현민이 동민의 팔에 매달린다. 안 이루어진대도. 동민의 말에 현민은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구요! 라고 소리를 지른다. 뭘 대보냐, 너가 좋아하는 건 나인데. 눈에 뻔히 보이는 수작을 부리는 현민을 보며, 동민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녀석의 누나가 올린 10년 전 싸인 사진에, 모든 사람들은 말했다. 동민과 현민은 운명이라고. 하긴, 우리 둘이 처음 만난 날, 그리고 10년 후 우리는 십이장기를 멋지게 두었으니까. 그거 하난 신기하긴 하지. 동민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현민은 왈칵 화를 내며 외쳤다. 신기한 게 아니라, 이건 운명이라구요!! 하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목에 걸면 목걸이인 것을. 동민을 사랑하는 현민에게는 운명이라고 느껴졌지만, 운명을 믿지 않는 동민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일일 뿐이었다. 그런 게 운명일거 같으면, 내 팬 준용이는? 걔랑 나는 결혼하고 애 낳으면서 살아야되냐? 동민이 빈정거리자 현민은 풀이 죽었다.
그리고 그 운명론은 이제 기세가 꺾인 줄 알았다. 그런데 현민은 어느 날, 다짜고짜 동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 형, 이제 저랑 형 둘이 방송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거야말로 운명 아닙니까?
"........계약은 너가 알아서 한 거잖아."
동민의 일침에 현민은 순간 말이 막혔다. 아니, 형님, 그렇게 말하시면 저도 되게... 동민은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자라, 그래야 키큰다. 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솔직하게 말하면, 운명론 같은 거 없어도 동민은 이미 흔들릴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37년 인생을 보수적으로 살아 온 건장한 성인 남자가, 16살이나 어린 남자아이에게 끌리는 것은 금기와도 같은 일이다. 있을 수 없다, 라고 생각한 동민이지만 이미 현민은 자신이 허용한 거리 이상으로 다가와 있었다. 현민이 장난을 걸면 미소를 지으며 받아주고, 힘들어할 때면 자기 일도 아닌데 발 벗고 나섰다. 한 번은 인생 처음으로 MC를 맡는다며 어떡하냐는 현민의 걱정에, 동민은 자신이 MC를 보는 갖가지 행사에 현민을 데려갔다. 그것도 모자라서, 아는 MC들과의 술자리에까지 현민을 데리고 나타났다. 얘가 이제 방송 갓 시작하는 애인데, 얘 잘 가르쳐 주라구. 동민의 은근한 부탁에, 사람들은 현민에게 MC보는 법에 대해 세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러다 한 사람이 동민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동민씨가 지극정성이네 아주. 나중엔, 결혼도 하겠어!"
그러자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현실에서도 장오 연합이냐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거 징하게 붙어다니네. 아주 남녀로 태어났으면 천생연분이 따로 없겠어! 사람들의 외침 속에서, 동민은 수줍게 웃는 현민을 발견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현민은 동민에게 세번째로 고백을 해 왔다. 형, 형이 그만 좋아하라고 하셨지만. 형님이 자꾸 챙겨주시고 그러시니까... 제 마음은 더 커졌어요. 못 막겠습니다. 촉촉히 젖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현민을 보며, 동민은 다시 한 번 위기의식을 느꼈다. 동민은 현민을 만난 이후로, 항상 현민을 눈으로 좇고 현민과 대화하고. 늘 현민과 붙어 있었다. 이 정도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이 낯선데, 어린 놈이 다시 밀고 들어오니 못 이기는 척 자기 자신을 열어버릴것만 같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동민은 현민에게 딱밤을 먹인다.
"세번째로 말해줄게. 인생 접고 싶냐? 너랑 난 남자야."
"요즘 그게 흠이 된대요? 홍석천 형님을 봐요. 얼마나 승승장구하는데요."
"그 형이 하룻밤 사이에 그렇게 된 줄 알아? 8년을 마음고생했어, 8년을. 너 8년 뒤엔 29이야. 아홉수 인생 되고 싶냐?"
이씽... 현민은 동민을 원망스럽게 노려보며 이마를 문질렀다. 이미 동민의 마음 속에 자신이 싹트고 자라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동민이 은근히 티를 내왔고, 현민도 그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지는 벌써 반년이 다되어간다. 이제 둘 다 감정이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은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덜 익은 사이였나보다. 나는 이제 동민에 대한 마음이 벚꽃처럼 만개했는데, 동민의 마음속 꽃봉오리는 대체 언제 열릴런지. 봄바람은 불고, 모든 꽃은 만개하는데, 대체 동민꽃은 무슨 꽃이길래 이리 피지를 않는걸까. 현민은 가슴이 답답해진다.
4월말이 되자, 회사 옆 벚꽃나무에서 남은 벚꽃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마치 이제 벚꽃의 시간을 마감하겠습니다! 라는 듯이, 벚꽃잎은 너무할 정도로 떨어져내리고 있다. 오, 예쁜데. 동민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하나가 생각난다. 그거 한 번 해보고 싶은데, 괜찮으려나? 행동으로 실행하기 전에,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다행히 점심시간이 갓 지난 시간이라, 회사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동민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무 밑으로 가 섰다. 그리고 현민이 벚꽃나무 밑에서 날뛰던 것을 기억하고는, 자신도 살짝살짝 뛰어본다. 이리저리 콩콩콩. 흔들흔들 콩콩콩. 그렇게 몇 분이나 나무 밑에서 날뛰며 손을 휘저었을까, 동민은 휘두르던 손을 가만히 펴 보았다.
손 안에는 벚꽃잎 하나.
동민은 벚꽃잎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손을 쭉 펴도, 바람이 부는데도 이 벚꽃잎 하나는 동민의 손바닥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익, 익. 떨어져라. 손을 흔들어봐도, 손바닥을 보면 꽃잎은 손바닥에 찰싹 달라붙어있다. 참 나, 누구 같기는. 동민은 잠시 벚꽃잎을 바라보더니, 가만히 미소짓는다.
너는내운명♥ : 아빨리와
너는내운명♥ : 나 간다
현민은 전력을 다해 달리면서 핸드폰을 흘끗 바라본다. 액정에는 동민이 방금 보낸 톡이 두 개가 와 있다. 거의 다 와간다구요...!! 현민은 헐레벌떡 뛰어 계단을 내려간다. 그리고는 두리번거려 익숙한 인영을 찾아낸다. 동민은 조명 하나 켜지지 않은 어두운 벤치에 혼자 않아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따뜻한 봄바람에 동민의 앞머리는 살짝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바람을 느끼고 있다가, 옆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에 동민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을 걸었다.
"운 좋네. 5초 더 기다리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지하철을 놓쳐서....엄청 뛰어내려왔어요."
"이제 연예인인데, 지하철을 왜 타. 매니저 차 없냐."
공식 스케줄 가는 것도 아니고 사적인 시간에 매니저 형 일하게 할 순 없잖아요. 현민이 툴툴대자, 동민은 가만히 웃는다. 좀 앉아봐. 동민이 현민의 옆자리를 툭툭 치자, 현민은 벤치에 털썩 앉는다. 일주일에 두 번, 동민과 현민은 밤이 되면 이렇게 한강공원에서 만난다. 딱히 뭘 하는 것도 아닌데, 둘은 어두운 곳에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를 하다가 헤어지곤 했다. 세 번의 고백도 모두 이 공원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세 번의 거절도. 현민이 앉자 동민은 현민을 가만히 바라본다.
"나도 그거 해봤어."
"뭐요?"
"벚꽃잎 잡기."
"어, 잡았어요? 어때요?"
"잡았겠냐."
그렇죠.....라며 현민은 시무룩해진다. 이제 벚꽃잎이 거의 다 떨어져가는 시기라, 현민도 잎 하나를 잡아보려고 벚꽃나무가 보일 때마다 아래에서 기를 쓰며 날뛰었다. 어서 하나라도 잡아서 동민이 형한테 사진을 보여줘야해....!! 그러나 시커먼 마음으로 임해서인지, 벚꽃잎은 야속하게도 현민의 손을 피해갔다. 현민의 팔, 현민의 바지. 심지어 현민의 스냅백에 묻은 벚꽃잎을 보며, 현민은 짜증을 냈었다. 여기가 아니라고!!! 어쩌겠는가, 이제 벚꽃잎은 다 져가는데. 동민은 시무룩한 현민을 바라본다.
"얼른 우리 벚꽃잎 하나 잡아야되는데, 거의 다 졌어요.. 여기는 벚꽃잎이 하나도 없네요. 다른 데 한번 가볼래요?"
"귀찮게 뭘. 그보다, 왜 우리냐."
"왜라뇨. 저도 짝사랑을 하고 있고, 형도..."
현민은 자기 가슴팍을 손가락질해보인다. 동민은 잠시 그 손을 어이없이 바라보더니, 몸을 일으킨다. 앉은 채로 기지개를 펴며, 현민에게 은근하게 묻는다. 이제 어떡할거야? 벚꽃은 없는데, 짝사랑은 이대로 실패인가? 동민의 말에 현민은 발끈한다. 아니에요!!!!!!!!
"네 번이고 다섯 번이고, 저는 이 마음 안 변해요!!"
".................."
"형님도 마음 뻔히 보이는데, 저를 자꾸 밀어내려는.........."
"어, 벚꽃잎이다."
현민이 말을 하는데 동민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지갑을 꺼내더니, 그 안에서 낮에 잡았던 벚꽃잎을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히 꺼낸다. 손 펴봐, 동민의 말에 현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순순히 손을 편다. 그러자 동민은 그 위로 꽃잎을 떨어뜨린다. 팔랑팔랑, 그렇게 꽃잎은 현민의 손 위에 앉았다.
"..............."
"너 껀 됐고, 내 꺼는.........."
동민은 가만히 생각을 한다. 그 동안 현민은 손바닥 위의 꽃잎을 가만히 바라본다. 어이없다. 나는 정직하게 잡으려고 별 노력을 다했는데, 이걸로 된 거라고 생각하라는 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드는데, 갑자기 동민이 현민의 볼에 검지손가락을 꾹 누른다. 뭐, 뭐에요!! 아파요!! 현민이 얼굴을 돌리려하자, 동민은 현민의 턱을 붙잡아 고정시킨다. 곧 손가락을 떼자, 타원형의 손가락 자국이 남는다. 동민은 바지 주머니에서 작은 거울을 꺼낸다. 거울 봐봐. 현민이 고개를 틀어 뺨을 거울에 비추자, 하얀 얼굴에 손가락 자국이 빨갛게 남았다.
"이게 뭐에요."
"내 벚꽃잎."
꽃이라면, 식상하게 벚꽃인 것이다!!!!!!!!!!!!!!!!!!!!!!!
...........11시 넘었네(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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