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진짜 가끔 애같다니까요? -뭐가 그렇게 애 같아요? 내가 어제 다리가 부어서 같은 팀 부장님이 태워주셨는데, 그걸 또 보셨더라구요. 집에 들어가니까 아주... 냉기가... 나 무슨 에어ㅋ... -아... 하하... 형, 형님... 신나게 열변을 토하던 중 백아가 어색한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내 입을 틀어막았다. 싸늘한 기운으로 보아서는 분명 틀림 없다. 틀어막는 백아의 손을 앙 물고는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 뭐요, 뭐. 왜 그렇게 봐요? 아, 또 무시하시게요? -... 허, 참. 하나도 안 무서워요. 제가 천년 전에 이미 말씀 드렸잖아요. 저는 한개도 안 무섭습니다. -그 입. 아씨, 또 움찔했어. 이번에는 절대 질 수 없다. 이게 도대체 몇번이야. 잡으려면 초장에 잡아야지. 암. 제 입이 뭐요? 하고 싶은 말 다 하라고 있는게 입인데. 저 오늘 안 들어가요. 혼자 자던지, 말던지. 평소에는 무서워 꺼낼 수도 없었던 말을 툭 던지고 옥상을 빠져왔다. 자리에 앉아 일을 하려고 키보드를 잡았지만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입술을 질근 씹으며 초조해지기까지 했다. 분명 전화나 카톡, 아니면 호출이라도 와야할텐데 아무 연락도 없었다. 아, 망했다. 시간이 지나 퇴근시간이 되었다. 여전히 연락 하나 없었다. 그래, 해보자는 거지. 코를 흥흥거리며 땅니 꺼지게 회사를 벗어났다. 벗어나 한참을 돌고 돌다보니 여전히 익숙한 곳에 멈춰 서 있었다. 가로등 아래에 서 한참을 올려다봤다. 아씨. 갈 곳도 더럽게 없다. 여기밖에 없네. 신발코가 닳을만큼 땅을 문지르고 주저앉아 지나가는 개미를 세어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도, 연락 하나 오지 않았다. 화난 건 이미 오래 전, 내가 잘못했나 하는 생각과 온갖 걱정, 슬픔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번쩍이는 구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고개를 올려 앞을 보니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이 보였다. ... -갈 곳이 없나보지? ... -왜. 갈 곳 많지않나? ...없어요. -왜, 안 들어올거라더니. 짐이라도 싸려고 여기 있는 건가. 그 말 한마디에 가슴이 쿵 내려앉고 식음땀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 우리가 아주 처음 본 날의 표정, 말투가 들리고 보였기때문이다. 속으로 울컥, 눈물이 올라와 기어코 울고말았다. 이 사람이 진짜 날 보내면 어떡하지, 진짜 영영 못 보면 어떡하지, 이제 더 이상 내가 질렸으면 어떡하지. 수만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기 시작했다. 나 나갈까요... - 그랬으면 좋겠죠...? - 알았어요. 갈게요. 짐은 나중에 챙길게요... 바라볼 자신이 없어 땅끝만을 보며 말을 이어가고는 걸음을 돌렸다. 어디가지. 갈 곳, 없는데. 몇걸음 걸었을까, 뒤에서 이끄는 힘에 몸이 돌아갔다 . -뭐하는 거냐. 왜요... 제가 떠났으면, 하시잖아요. -기억 안 나? 뭐요... -내가 언제 가라고 허락했어. ... -내가 가라고 했던가. ... 그럼 뭐에요. 짐 싸서 나가란 소리 아니에요? -내가 말했지. 넌 여전히 머리가 안 좋군. 넌 내것이다. 내 허락도 없이는 어디 떠날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온전한 내 사람. ...그럼 그 소리는 왜 안 건데요. -... 홧김. 뭐요? -홧김이다. 나 없이 잘 살 수 있어보이는 네 모습에 화가 났다. 나는 하루라도 그럴 수 없는데, 넌 아닌 것 같아 화가 났다.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생각했는데... 화가 났다. ... -다 괜찮으니 앞에서만 말하지 마. 그냥 옆에만 있어. ... -그냥 그걸로 족하다, 나는. ... 아닌데. - 잘 살 수 있는 거, 그거 아니라구요. -...뭐? 저도, 살 수 없어요. 곁에 없으면 살 수 없다구요. 약한 모습 보이지 마세요. 전 그날에도 지금도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도 말했잖아요. 전 당신의 것이라고. 그리고 또 말했죠. 당신의 나의 것이라고. 나도 애가 탑니다. 그리고 하루라도 없으면 살 수 없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사랑해요. 나의 것, 나의 소. 변하지... 않는, 나의 소. -... 내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줘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나의 것... 네 것... 예, 나의 것. 나의 말에 한참 당황하다 이내 차가운 표정을 지워내고 잔잔한 웃음으로 돌아온 그는 내 대답을 마지막으로 따뜻하게 나를 안아왔다. 진심으로 전해지는 마음에 심장이 점점 세차게 뛰었다. 그리고 고개를 든 그가 조심스레 볼을 감싸아 코끝을 사랑스럽게 부딪히고는 숨을 함껏 담아왔다. 나의 것, 나의 소. 시간을 건너 한참을 건넜지만 과거의 당신도, 이렇게 믿기지 않게 서있는 현재의 당신도, 사랑합니다.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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