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이 땅을 뒤덮었다. 흙 내음이 아닌 하얀 눈의 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가 흩어졌다. 아무도 밟지 않았던 새하얀 눈 위에 발자국이 새겨졌다. 급하게 뛰던 수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가도 금세 일어서 다시 달렸다. 치맛자락엔 눈이 녹아 이슬처럼 달려 떨어졌고 눈가엔 눈물이 애처로이 매달려있다 떨어졌다. 입술을 물었던 탓인지, 붉게 달아오르는 아픔에 수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급하게 뛰어나왔지만 시간이 맞을지, 과연 연화를 볼 수 있을지 그게 겁이 났다. 겨우겨우 궁을 빠져나오자 저 멀리 연화의 모습이 보였다.
"공주님!!"
"..."
수의 목소리에 병사들과 연화의 걸음이 멈췄다. 조금만, 조금만 더. 수가 눈물을 애써 닦아내며 연화에게 달려가 앞을 막아섰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병사가 수를 막아서자 뒤에 있던 정이 그런 병사를 제지하며 고개를 저었다. "잠시, 잠시면 됩니다 황자님." 수의 말에 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물러서자 병사들 또한 한 걸음 둘에게서 물러섰다. 여전히 수에게로 향하지 않던 연화의 시선이 연화의 손을 잡아오는 수로 인해 천천히 돌아왔다. 연화와 허공에서 마주한 시선에 수가 울컥 눈물을 쏟았다. "그러니, 제가, 저와 도망가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수의 떨리는 목소리에 연화가 그저 말없이 수를 바라봤다. "이리 가시면, 저는, 저는." "수야." 한참만에 연화의 입에서 수의 이름이 흩어졌다. 숙였던 고개를 들어 연화를 바라본 수의 눈이 애처로이 연화를 옭아맸다.
"이리 될 수밖에 없었던 걸 알고 있지 않느냐."
"... 공주님."
"내가, 너에게 못한 것이 많아, 그게 제일, 어쩌면 제일 후회가 된다."
"..."
"더 아껴줄걸, 더 많이 같이 시간을 보낼걸."
"... 공주님, 제발."
"널 시샘하지 말 걸."
수의 눈 가득 고인 눈물이 다시 후드득 떨어지고 잡힌 수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연화가 조심스레 반대 손을 뻗어 수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괜찮다, 나는. 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아는데. 지금 많이 무서워하는 걸 아는데. 어찌 이리 거짓말만 하시는지. 속으로 흩어지는 말은 수의 입 밖으로 나오지 못 했다. 맴돌고 또 맴돌다 연기처럼 사라졌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들려오는 정의 목소리에 수가 눈을 크게 떠 연화를 바라봤다. 그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던 연화가 조심스레 수의 손을 놓았다. 힘없이 떨어지는 손이, 파르르 떨리는 손끝이, 연화의 입술을 깨물게 만들었다. "가자." 정이 다시 말을 잇고 수의 옆으로 걸어가는 연화의 걸음이 무거웠다. 멍하니 그저 그런 모습을 보며 아무런 이야기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던 수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울음소리가 들리면 연화가 마음 아파할 것을 생각해서. 자신이 먼저 무너지면, 더 힘들어할 거 같아서, 그래서. 공주님, 공주님, 연화, 공주님. 수의 떨리는 목소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참을 걷던 연화의 시선이 수에게로 돌아갔다. 입을 막고 우는 아이에게 연화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웃어주는 일 뿐이었다. 그저, 꿈같이, 그렇게. 늘 수에게 보여준 미소를 보여줄 뿐이었다.

'수야, 아프지 말고 늘 밝게 웃어야 해. 내가 너에게 했던 모진 말과 행동들을 용서하지 않아도 좋으니. 나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수야, 내, 너를 많이, 많이 아꼈다. 말로 하지 못하였지만, 정말 많이. 너무 늦어 미안하구나.
수야, 나의 해수야.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렴. 그거면, 그거 하나면 나는 되었다.
수야, 꽃처럼, 늘 예쁘게 피어줘. 내가 너를 어디서 봐도 알아볼 수 있도록.'
노래가 참 좋다.... 사약길은 너무 힘들다...ㅠㅠㅠ 사약길만 걷자 연화수...하...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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