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연인) [은/순덕] 드라마에 안 나올 것 같아서 쓰는 현대ver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10/14/23/17c8c5766f8453b00156d35012e2308f.gif)
"수고하셨습니다."
평범한 하루가 또 지나갔다. 잘 가, 하진아. 아직도 어색한 본인의 이름에 하진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고려를 떠나 이곳에 온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갔다. 몇 계절을 거쳐 다시 돌아온 현실은 우습다는 듯 고작 30분 지난 게 끝이었다. 며칠은 울었고 며칠은 잤다. 또 며칠은 집에만 있었고 며칠은 술만 먹으며 보냈다. 그래도 현실은 변함 없었고 하진의 기억 또한 변함 없었다. 그렇게 하진은 다시 현실을 받아들였다. 목숨은 위태롭지 않았지만 하진의 마음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아, 돌겠네."
잊으려고 노력했던 것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놓치지 싫은 인연들은 분명했다. 하진은 버스 정류장에 앉아 눈을 감았다. 버스 타야 돼. 여기서 울면 진짜 미친 사람으로 볼 거야. 구질구질하게 이러지 말자, 고하진. 마음 속으로 몇 번이고 되새겼다. 그러나 한 번 쏟아지기 시작한 기억은 막을 수록 더욱 빠르게 떠올랐고 그럴수록 하진은 눈을 더욱 꼭 감았다.
"야, 예쁜 애. 같이 좀 가자."
익숙한 목소리의 하진이 눈을 떴다.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정류장으로 교복 입은 소녀와 소년이 걸어 오고 있었다.
"너가 빨리 오면 되잖아."
"아직도 화났어? 아, 내 말 좀 들어봐. 응?"
"됐어. 너가 좋아하는 해수인지 뭔지 하는 애한테 가서 이야기해."
"내가 해수를 좋아한다고? 나 예쁜 애만 좋아해."
한껏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은 소년은 소녀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하잖아, 순덕아. 소녀에게 환하게 웃는 소년을 보며 하진은 옅게 웃었다.
"됐어. 입만 열면 거짓말만 하고."
"거짓말 아닌데. 너가 내 짱이야."
"니 말 이제 안 믿어!"
"진짜야! 난 이제 너밖에 없다니까!"
오랜만에 들어보는 음성들에 하진은 소리내어 웃었다. 그렇게 슬펐던 말들이 지금은 그저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하진의 마음을 놓이게 했다. 잠시 대화를 멈추고 자신을 쳐다보는 두 아이에 고개를 숙여 웃음을 참았지만 퍼지는 미소는 막을 수 없었다. 너 때문에 웃잖아. 쪽팔려, 진짜. 차갑게 소년의 손을 쳐내는 소녀를 보며 하진은 고려 때와 전혀 다른 두 사람의 모습에 묘한 이질감과 동질감을 동시에 느꼈다.
"내가 이번에 금메달 따오면 믿을래?"
"무슨 메달?"
"뭐야, 남자친구 대회 나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 진짜 실망이네."
"내 할 일도 바쁜데 니 대회를 내가 어떻게 알아."
냉정하게 말하는 소녀의 말에 소년은 금방 시무룩해져서 애꿎은 땅만 툭툭 찼다. 야, 넌 무슨 고등학생이 왜 그렇게 애 같냐? 너 수요일날 대회 나가는 거 알고 있어, 바보야. 미안한 듯 소년의 옷자락을 당기며 소녀는 말했다. 금메달 따오면 믿어줄게. 너 공부 못 해서 합기도라도 잘 해야 되니까 꼭 메달 따와. 말 한 마디에 다시 환하게 웃는 소년은 소녀의 뒤를 강아지처럼 쫓아가며 다시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내가 금메달 따와서 꼭 너 목에 걸어줄게!"
"또 오버한다. 가서 다치지나 마."
"나 걱정해주는 거야? 대박. 오늘 가서 일기 써야지."
"집 가서 자기나 해. 오늘부터 컨디션 조절 해야될 거 아니야."
"오빠 강철이야. 우리 순덕이 지키려면 튼튼해야지."
"은아, 시끄러우니까 좀 조용히 가자."
알았다는 말이 3초도 지나기도 전에 다시 입을 여는 왕은과 그런 왕은이 질린다는 듯 순덕은 손으로 귀를 막으며 걸어갔다. 멀어저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하진은 그제야 다시 소리내어 웃었다. 고려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네요, 두 사람 모두. 하진은 너무 웃어서 아픈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
"잘 지내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입니다."
두 분 모두 아프지 말고 행복하세요. 하진은 차마 뱉지 못 한 말을 삼켰다. 지우고 싶던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다. 그러나 하진은 눈을 감지 않았다. 어쩌면 괴로운 기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저기요."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하진은 옆을 봤다. 다소 날카로운 목소리와는 다른 캐주얼한 복장을 입은 한 사내가 어색하다는 듯 뒷목을 한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지갑 떨어뜨리신 것 같아서."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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