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인물 개괄
명문 출신으로 조부 순숙, 부친 순곤, 숙부 순상 등이 모두 이름 높은 인물들이었다. 어릴적부터 '황제를 보좌할 제목'으로 평가받았다. 순욱이 기주에 있을 때 원소는 귀빈의 예를 갖춰서 맞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순욱은 원소가 큰 일을 이룰 인물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조조 밑으로 들어갔다. 순욱을 얻은 조조는 " 나의 장량이로다. " 라고 하며 그를 사마에 임명하였다.
순욱은 항상 조조 밑에 있으면서 전략을 짰고, 조조가 그 세력을 확대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후한의 황제인 헌제를 옹립하여 중원에 세력을 둔다는 책략을 조조에게 진언한 것도 순욱이었고, 조조의 진영에 많은 인재를 모은 것도 순욱의 수완이었다. 그가 추천한 인물은 모두 유능해서 조조의 사업에 크게 공헌하였다.
순욱은 서주의 유비와 여포를 서로 싸우게 하려고 유비에게 관직을 주고 그 담보로 여포를 치게 하는, 이른바 두 표범이 서로 싸우게 하는 '이호경식지계'를 내놓는 일. 그리고 유비와 원술을 다투게 해 서주를 지키고 있는 여포의 변심을 꾀어내는, 이른바 호랑이를 내고 이리를 삼키는 '구호탄랑지계'를 거는 등 계략가로서 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후일 여포 토벌과 서주의 유비 공격, 관도 전투 등에서도 계략으로써 활약한다. 중원에 일대 세력을 구축한 조조는 형주의 유표를 공격하기에 앞서 순욱에게 전략을 물었다. 유표는 조조의 침공 이전에 사망하였으나 형주는 순욱의 계략대로 조조에게 항복하였다.
212년 동소 등이 조조를 위공의 지위에 오르게 하려고 획책하자 순욱은 이에 반대, 이 사건으로 그는 조조와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 이때 손권 정벌이 행해지는데, 순욱은 초군의 군위로 파견되어 시중 광록대부로서 군사에 참여. 조조군이 유수에 도착했을 때 병으로 쓰러져 수춘에 잔류하고 근심과 고민 속에서 50세로 사망한다. <위씨춘추>에 의하면 조조는 순욱에게 위문하는 품(品)을 보냈는데, 열어보니 속은 비어 있었다. 품은 형식일 뿐, 내용물이 없다는 것은 '귀공과의 사이는 서로 예만 갖출 뿐 마음은 없다.'는 의미다. 순욱은 사태를 깨닫고, 독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2. 조위 진영에서의 그의 위상
삼방순욱(三訪筍彧)! 말 그대로, 조조가 세 번 방문해서 순욱을 얻었다는 말이다. 삼방순욱의 고사는 정사에는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민간 전설에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 중의 하나다.
순욱은 그의 나이 스물아홉에 조조를 찾아갔다. 조조는 순욱을 장량에 비유하며 극진히 맞아들였다. 그는 정도가 아니면 가지 않았고, 만인의 모범이 되었다. 참모라는 직책의 성격을 고려하면 덕을 갖추고 소신까지 겸비한 순욱의 품성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대개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가 그렇듯이 순욱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대목은 조조가 천하를 거의 평정한 뒤에 벌어진 조조와 순욱 간에 벌어진 갈등이다. 그것이 지조인지, 아니면 시세 흐름에 대한 이해 부족인지는 깊이 따져봐야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승자에게 너무 인색하고, 패자에게 너무 너그러운지도 모르겠다. 승자와 패자에 대한 대접은 정당해야 한다. 좋든 싫든 그들이 역사를 이끈 주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조를 최후의 승자로 만드는 데에 기여한 최고의 인물은 누구인가?
조조는 순욱을 일컬어 “나의 자방이다.” 라고 하였다. 참모에게 장량이란 소리만큼 영광된 것이 또 있겠는가! 그리고 조조는 그에 대해 "내가 그와 더불어 일을 계획하면 천하에 무슨 근심이 있으리오!" 라고 했다. 그렇다면 조위의 다른 참모진과 순욱을 비교하여 보자. 가후는 삼국지의 시작부터 끝까지 출연하는 천재 전략가이다. 그러나 주군을 자주 바꿨다는 사실은 결국 전술적 영민함은 있으나 전략적 예지가 떨어진다는 것을 반증한다.
곽가는 또 누구인가. 조조가 '더불어 일을 계획할 수 있는 사람' , 즉 책사를 추천해 달라고 하자 순욱이 곽가를 추천했다. 조조는 곽가에 대해 "나로 하여금 큰 일을 이룰 수 있게 할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구나." 라고 했다. 조조로부터 오직 곽가만이 그의 뜻을 정확하게 안다는 평가를 들었으나, 38살에 요절한 것이 흠이다.
이러한 참모들의 맏형이 순욱이었다. 그는 참모들을 잘 이끌었다. 순유, 곽가, 정욱 등도 모두 순욱이 추천한 인사들이었다. 군주에게 능력있는 사람을 천거하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인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순욱은 총애를 독점하지도, 누구를 배척하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덕이 있었다. 전투는 책으로 하지만, 전쟁은 경륜으로 한다. 전체 구도를 운영하는 전략가는 순유, 가후, 곽가, 정욱이 아니라 순욱이었다.
순욱이 맹활약한 기간은 191년부터 삼국시대가 열리기 전인 212년까지다. 순욱이 내놓은 헌제 옹립이라는 책략은 조조가 천하의 패권을 장악하게 된 것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 이후의 삼국쟁패는 비록 삼국이 정립하는 구도였으나, 조조의 패권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따라서, 순욱은 삼국 시대 개막 이전에 무대에서 사라졌으나, 그 전에 이미 조조를 천하의 패자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순욱이 정립해 놓은 '천하 패자 = 조조' 의 공식은 그 누구도 바꾸지 못했다.
3. 순욱은 왜 조조가 위공에 오르는 것에 반대했을까?
순욱이 조조를 대하는 태도가 돌변한 원인을 알려면 후한의 작위 제도를 들여다 보아야 한다. 상고시대에는 최고 통치자가 왕이고 그 아래에 공, 후, 백, 자, 남의 다섯 가지 작위가 있었다. 후한 때에는 황제 아래에 왕이 있고 왕 아래에는 후작이 있을 뿐 공작과 백작, , 남작은 모두 없어졌다. 아주 특별한 예로 후한의 왕실은 주나라의 후대를 위공으로 봉하고, 은나라의 후대를 송공으로 봉해, 한나라의 손님으로 삼으면서 지위를 삼공으로 높이 정해주었다. 전대 왕조의 후예를 높이 대하는 것은 중국에서는 일종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새 왕조에 위험이 될 수 없었다.
또한 근 200년 동안 후한에서는 황위계승자를 제와한 황제의 아들이 왕이 되어 한 군을 얻어 봉국으로 삼았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세금을 받아먹고 살 뿐 백성을 통치하지는 못했다. 실제 지배권은 군의 태수와 같은 국의 상의 쥐고 있어, 이런 왕들 역시 조정을 위협할 힘이 없었다.
황제의 손자나 증손자, 고손자들은 열후의 작위를 얻었으나, 작으면 한 정의 몇 백호에서 나오는 세금을 받고, 많아야 한 현에서 나오는 세금을 얻어서 살았다. 어쨌든 유씨가 아닌 사람들은 근 200년 세월에 최고로 현후밖에 될 수 없었는데, 만약 조조가 위공이 되면 후한에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변화요, 작위제도를 통째로 뒤엎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조조는 나라를 다스리는 실권을 잡은 사람이므로 그가 순조롭게 위공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한조의 몰락은 불 보듯 뻔한 노릇이었다.
당대의 모든 지식층의 고민은, 한왕조의 존속가능성이었다고 여겨진다. 주나라가 붕괴한 이래로 전국이 물리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더해 이념적으로 재통합되는 데 무려 400년이 걸린다. 이 시대는 한나라 시대의 인물들이 역사의 교훈으로 삼던 시대이기도 하다. 그것을 통합해서 새로운 질서를 제시한 것이 漢제국이다. 따라서 이 왕조가 존속하느냐는, 질서를 유지하느냐 혹은 기성의 것을 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내느냐의 문제가 된다.
순욱은 이 시대를 배경으로 성장한 사람이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성장하며 그것을 지식을 응용하는 토대로 삼는다. 동시에 그의 출생에서 보이듯이 그는 문벌내지는 족벌이다. 또한 유가 사상의 한 갈래를 만든 순자의 후예로서 한조의 부흥을 바랐던 순욱은 조조가 위공이 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로서는 조조가 한의 충신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편이 더 좋다고 믿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4. 맺음말
삼국지 관련 카페에서 최고의 참모는 누구? 라는 형식의 질문을 보면, 답변이 수십 개가 되더라도 순욱의 이름은 찾기가 힘들다. 가끔 가다, 순욱이라고 답하면 순욱은 단순한 정치가일 뿐이라고 이의제기가 들어오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도 전략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옛말에 '전투를 함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적은 상대방이 아니라, 내부의 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후방의 중요성이 크다는 말이다. 가령, 제갈량의 수제자인 강유는 북벌을 할 때마다 항상 안심할 수 없었다. 언제,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날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조는 그럴 걱정이 없었다. 후방에 든든한 참모인 순욱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 깃들고, 지혜로운 신하는 주인을 가려 섬긴다. 순욱은 조조를 만나 그 뜻을 펼쳤다. 때로는 웅대한 전략구상으로, 때로는 혀를 내두르는 묘책으로, 그리고 때로는 근거지를 지키는 행정으로 난세를 평정했다. 결코 그 뜻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유방에게 전략가 장량과 행정가 소하가 있었다면, 조조에게는 그 두 사람을 합친 순욱이 있었다. 그는 흠모의 정이 느껴지는 초일류의 참모였다. 마지막으로 나관중본 삼국지에서의 순욱에 대한 평가를 올리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영상의 순욱은 자가 문약이라.
사람들은 제왕 보좌할 인재라 했더라.
이름은 다섯 크나큰 산과 가지런하고
공업은 조정의 세 부서를 울렸네.
맹덕이 끝까지 처음처럼 대하지 못해
유후가 다시 나타나지 않누나.
충성스러운 이 한을 품고 죽으니
천하사람 모두 슬퍼하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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