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4월 28일대구광역시에서 일어난 대형 참사로 대구지하철 1호선 1~ 2구간 사이에서 일어난 가스 폭발 사고이다.상인네거리에 있는 대구백화점 상인점 신축 공사를 위해 지반 공사를 하던 (주)표준 개발의 인부가 실수로 가스관을 파손시켰고 이때 누출된 가스가 하수관을 통해 지하철 공사장으로 유입, 괴어있다가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 후 50m에 달하는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400m에 달하는 건설 현장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이 폭발 사고로 사망 101명, 부상 202명 등 2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으며 차량 150대 이상, 건물 80여 채가 파손되는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
특히 사건 현장이 학교 근처인 데다 등교 시간이라는 점 때문에 학생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 유품으로 피 묻은 책가방과 불에 탄 교과서/참고서가 많아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당시 사진 중에 피범벅이 된 책가방을 수습하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여성 자원봉사자의 모습도 있었다. 특히 근처 영남중학교 학생들의 피해가 컸는데 사망자 중 42명이 이 영남중학교 학생이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넋들을 기리자. 그나마 영남중학교를 제외한 나머지 인근 중학교들은 그 날이 금요일이라서 모두 소풍을 나간 바람에 피해가 적었다고 한다. 또 영남중학교와 붙어있는 영남고등학교는 등교 시간이 사고 시간보다 20분 빨라서 피해를 입지 않았다. 사고 후 1년이 지난 1996년에 영남중 희생자 유족과 교사, 학우들이 쓴 글을 모은 책이 발행되기도 하였다. 이 책은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람 가능.
또한 폭발 당시 튀어오른 복공판이나 고열 때문에 크게 훼손된 시신이 많아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백화점 공사 시공사 측의 뒤늦은 신고와 대구 도시가스 측의 뒤늦은 사후 대처로 대형 사고가 났다는 점은 한국에서 발생하는 대형 사고의 기본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주)표준 개발 측에서는 가스관 파손 이후 30분이 지나서야 대구 도시가스에 신고를 했으며 대구 도시가스 측은 또 30분이 지나서야 사고 현장 주변의 밸브를 일일이 수동으로 잠그러 출동하는 어처구니 없는 대처를 보여주었다.
사실 한국의 대부분 도시의 지하 내에 있는 파이프나 전선 등이 제대로 정비 및 관리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가벼이 여겼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주변에서 상하수관을 실수로 건드려 물이 치솟은 일은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때는 상하수관이 아니라 가스관을 건드렸다는 것 뿐이다. 가스관 자체도 규정인 1m보다 얕게 매설되어 있었으며 시공사 측도 가스관 매설 등의 정보를 미리 받고 피해서 공사를 해야 하지만 무허가로 막무가내로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고는 관계 기관의 안일한 태도로 인해 벌어진 인재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이후 관련 법 개정과 구난체계 개혁이 이루어졌다. 법원에서는 시공사 측의 과실을 인정하여 인부를 포함한 회사 관계자 9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까지 터지면서 안전불감증에 대한 대대적인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또 당시 사고 때문에 상인네거리를 지나는 시내버스들은 모두 사고 수습이 끝날 때까지 우회 운행을 했으며 당시 사고로 파손된 22번 버스는 사고의 참혹함을 말해줬다.
현재 롯데백화점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고가도로 아래에 위령비가 있다. 또 대구광역시 달서구 학산공원 내부에 위령탑이 있는데, 추모 행사는 2005년 10주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열지 않는다. 그런데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으며, 2011년 11월 8일에는 수성구 범물동 동아백화점 수성점 앞 대구도시철도 3호선 공사 현장에서 굴삭기가 작업하던 도중 도시가스관을 파손하여 가스가 누출되었다. 다행히 신속히 밸브를 차단하고 복구해서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하마터면 제2의 상인동 참사가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도시가스관 등의 지하 매설물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고 작업하다 보니 항상 참사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흠좀무한 것이 참사 이전에 이미 "육 해 공에서 사고가 한 번씩 터졌으니 이제 남은 곳은 땅 속 뿐" 이라는 말이 돌았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저 ㅋㅋㅋ으로 흘리는 농담이었겠지만, 설마는 결국 여러 사람을 잡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