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글씨만 읽어도 됨 ㅋㅋ
2006년 김연아
2006년 3월, 슬로베니아에서 열리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를 준비할 때였다.
발목을 지지해주어야 할 부츠가 일주일만 신으면 자꾸 무너졌다.
새 스케이트화인데도 조금만 훈련하면 헌 것처럼 헐렁한 느낌이 들고 틀어졌다.
계속 같은 문제가 반복되자 내가 예민해서 그런 거나, 나한테 문제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스케이트화를 바꿔보고 심하면 이틀 신고 새것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그렇게 연습도 제대로 못하고 스케이트화로 신경전을 벌이며 울고불고 하다 보니 나중엔 바꿀 스케이트화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운 좋게도 동료선수인 최지은 언니가 며칠 신다 안맞아서 그냥 둔 스케이트화를 얻어 신게 되었다. 그것에 발에 딱 맞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방법이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스케이트화를 테이프로 칭칭 감고
대회를 준비했다. <김연아 - 7분드라마>
일주일만 신으면 무너지는 부츠때문에
최지은 선수 부츠를 빌려 신고2006 주니어 월드 대회를 출전하게됨. 그 대회에서 김연아는아사다마오를 24점차로
누르고 1위를 하게 됨.
안맞는 신발이기때문에 늘어났던 인대가 다시 재발하기도 했었음.
주니어월드 이후에 새로 신발을 시켰고
올때까지는 무너진 스케이트화를 테이핑해서 훈련.
허리 골반뼈쪽에도 부상있는 연아
이후에 김연아는 시니어첫 시즌을 준비하게 되는데
시니어 데뷔 무대에 서기 직전까지 스케이트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
시니어 데뷔 무대에 서기 직전이었다.스케이트화와 씨름하다 보니 발목이
피로해져 다시 인대 부상이 왔다. 선수생활이 끝날 때까지 이 통증을
달고 살아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다. 제조회사가 다른 스케이트화로 계속 바꿔봤지만
소용 없었다. 보통 4개월 이상 신어야 하는데 일주일 만에 무너지는 부츠에 테이프를
감아가며 가신히 한 달을 버텼다. 매다 새 스케이트화를 신어야 하니 비용도 부담인 데다 스케이트날을 맞추는 일, 스케이트화에 적응하는일도 만만치 않았다.
날마다 전쟁을 치르듯이 훈련했고, 신경이 예민해지다 보니 엄마와 자주 갈등이 생겼다. 연습은 안 되고, 부상으로 몸은 아프고, 엄마와 자꾸 부딪쳐 싸우고..
그런 내 모습에 화가 나 우는 일을 날마다 반복하다 보니 정말 지쳐 버렸다.
<김연아 - 7분드라마>
계속 되는 스케이트화문제로 다시 인대 부상이 생겼고,
보통 4개월 이상 신어야 하는데 일주일만에 무너지는 부츠때문에 새 스케이트화를 신어야 하는 비용 부담과 스케이트화에
적응하는일도 만만치 않았다고함.
(이때 당시 김연아는 부츠 후원사나 개인스폰서가 하나도 없던시절)
연습은 안되고 몸은 아프고 엄마와는 부딪치고
결국엔 가족들과 상의하고 피겨를 그만 두기로함.
(빙상연맹 관계자 분께서 집까지 찾아와 수차례 설득했지만
그간 힘들었던 문제들로가족들과 연아의 마음은 쉽게 돌아서지 않았다고함)
이후 며칠동안 평범한 학생으로 지냈지만..
다른 친구들은 학원이다 다들 바쁘고 나름대로
자기 꿈을 갖고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친구들에 비해 자신만 중도 하차한 기분이었다고함..
꼬맹이때부터 피겨만 바라보고 달려온 내가 잘하는것, 앞으로도 잘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스케이팅'밖에 없었다.
결국 다시 며칠만에 링크장으로 돌아감 ㅋ ㅋ
그동안 스케이트화 문제와 무릎 통증, 만성이 되어 버린 발목
부상으로 하루도 제대로 훈련할 수 없었지만
시니어 첫대회인 06년 2차 그랑프리 시리즈대회에선 종합 3위,
두번째 무대인 그랑프리 에릭 봉파르 대회에선 종합1위를
하게됨.
(대회 일주일전에 부츠 오른쪽만 새것으로 교체했고 스케이트화에 적응하는것도 익숙해졌다고 함.)
2006년 12월 초 어느날, 갑자기 허리가 뻐근하고 쿡쿡 쑤셨다. 가끔씩 나타나는
통증인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아픔을 느꼈다. 대회까지 시간은 없고 연습은 해야겠는데,
허리는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통증을 빨리 없애기 위해 병원을 찾아다니며
물리치료도 받아보고 침도 맞아보고 부황도 뜨고 운동을 쉬어보기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정말 다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등부터 배까지 압박테이프를 칭칭 감으면
좀 덜하라 했지만 통증을 누그러뜨릴 수는 없었다. 할수 없이 허리에 무리가
덜 가는 동작만 연습하며 러시아에서 열릴 그랑프리 파이널을 준비했다.
정마 힘든 준비기간이었다. 허리는 아프고 스케이트화는 여태 말썽인 데다 몸을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는지.. 넘어지고 일어서면 또다시 넘어지고..
통증으로 몸 전체가 위축됐는지 조금이라도 허리를 쓰는 동작을 하면 나도
모르게 균형을 잃고 얼음판 위에 넘어졌다. 그래서 더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그랑프리 마지막 대회를 앞두고 넋 놓고 앉아 있을 순 없었다.
(김연아 7분드라마중)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를 앞두고 갑자기 허리에 통증이 생겼고 물리치료,침,부황,압박테이프.. 할수 있는건 다해봤지만
통증은 누그러뜨릴수 없었고
통증으로 인해 몸전체가 위축됐는지 조금만 허리를 쓰는 동작을
하며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일쑤고
스케이트화까지도말썽이었다고함
이런상태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출전.


시합 전에 자신의 컨디션이 나쁘다는 걸 드러내는 건 이미 지고 들어가는
거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통증이 나타날까 봐 조심하면서도 아파도 안 아픈척,
괜찮은 척 했다.
통증때문에 등허리 배까지 테이핑을 하고 경기를 나갔고,
김연아는 아사다마오를 12점차로 누르고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1위를함.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후
김연아는 국민은행과 첫 광고계약을 맺음ㅎㅎ
그리고 첫광고 수익금 일부를 피겨 후배들한테 지원해줌ㅎㅎ
허리통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당시 2007년 1월에 열리는 장춘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기 위해 준비중이었는데
스케이팅은 커녕 기본 훈련인 러닝이나 허리를 움직이는 동작만 해도
통증이 느껴졌다.
허리가 정말 많이 아픈 날은 아침에 몸을 일으키기조차 힘들었다. 침대에
일어나 바닥에 발을 딛을 때부터 왼쪽 허리가 등쪽으로 올라붙은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왼쪽 옆구리 스트레칭을 할 때면 옆구리가 엿가락처럼 영영
늘어나 버린 것 같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때는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와서
스트레칭 동작을 반복할 수가 없었다. 점프를 하면 착지할때의 충격때문에
허리를 망치로 때리는 것처럼 '덜컹'하는 통증이 느껴졌다.
매일 밤 매일 아침, 또 아플까, 오늘은 얼마나 아플까,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는걸까,
두려었다. 하지만 항상 제자리였다. 매일 눈 뜨기가 두려울 정도로 괴로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김연아 - 7분드라마>
허리가 정말 많이 아픈날은 아침에 몸을 일으키기조차 힘들었고
스트레칭을 하면 옆구리가 늘어나고 찢어지는듯한 통증이 오고
점프를 하면 착지때 허리를 망치로 때리는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고함.
매일 매일이 얼마나 아플까 두려웠고
매일 눈 뜨기가 두려울 정도로 괴로운 날들이
계속 되었다고함.

실제로 김연아는 병원에서 허리디스크 초기진단을 받은 상태.

그리고 몸이 다 낫지 않은 상태에서
연아는 동계체전에 나가서 1위를 함..
1위는 했지만 연아는 최악의 점수를 받음..ㅠ ㅠ
2007년 3월, 나의 첫 세계선수권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허리통증은 계속 남아있었고, 매일 아침 졸려서 퉁퉁 부은 눈으로 차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았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할 때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다니,
내가 불치병 환자같이 느껴졌다. 시간이 갈수록 조급한 마음이 커지고 불안함에
신경이 예민해져 화를 내기 일쑤였다.
엄마가 더 마음 아프고 걱정하신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답답함을
가눌 수가 없었다.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는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경기가 다가올수록 마음은 더욱 지쳐만 갔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포기할 수는 업성ㅆ다.
지난 대회들도 힘들었지만 잘 견뎌왔기 때문에 메달이나 순위에 상관없이
그냥 해보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결과가 중요하지 않았다.
경기장에 가서 기권을 하더라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일본에 도착하고 나서도 우리 팀은 오로지 내 허리에만 신경을 썼다.
공식연습 전 아침마다 침 맞고 치료하고 진통제 먹고 허리에 테이핑하고,
온갖 방법들을 총동원해 경기를 준비했다. 공식 연습때도 혹시나 아플까
조심조심, 아파도 안 아픈 척하느라 힘들었다.
<김연아 - 7분드라마>
세계선수권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허리통증은 여전했고
매일마다 한시간 이상걸리는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어야 했다고함.

테이핑을 감고 공식연습을 갖고
냉각 스프레이를 잔뜩 뿌리고 경기에 출전했다고함
결과는 쇼트 세계신기록, 종합 순위 3위를 함.

07월드 세계신 세운 이후에 김연아는 첫 공식스폰서도 생김
(이전에는 2006년에 GS 칼텍스 회장님이 연아가 훈련비때문에 고생하고 있단 얘기를 듣고 연아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7000만원 후원해줬었음.
그리고 나중에 연아가 직접 그분께 찾아가 감사 인사 드렸다고 함)
김연아는 이렇게 시니어 첫 시즌을 끝냄.. ㅇㅇ
06-07 시즌 동안 스케이트캐나다 3위, 에릭봉파르 1위,
그랑프리파이널 1위, 세계선수권 3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시니어 데뷔 첫 시즌이데다 내가 한 경기 내용에 비하면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부상과 함께 살면서 연습 부족, 체력 부족으로 고생했기 때문에 나는 매 겨기마다 나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그리고 매번 기적이 일어났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면 겸손하다고 하시지만 사실이었다.
아마 내 훈련상황과 준비과정을 본 사람이라면 믿을 것이다.
그만큼 어렵게 훈련했고,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적을 일으큰 것은 신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라고 한다.
기적을 바라기만 하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적은 신이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시의 의지와 노력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이번 시즌에서 내가 거둔 성적은 부상과 싸우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내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거이다. 아마도 그런 나를 기특하게 여긴 신께서 보내주신 선물이 아닐까.
이후 연아는남은 2007년을 큰 부상없이 선수생활을
보내고 컵 오브 차이나, 컵 오브 러시아(세계신),
토리노 그랑프리파이널 모두 1위를함.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08사대륙, 세계선수권 앞두고 병원에서 고관절 부상으로
상태가 많이 안좋아 3개월 뒤에나 완치 가능하단 소리를 들음.
계속 부상으로 고생하다 08-09시즌 처음으로 큰부상없는
시즌을 맞게됨
(물론 발톱이 빠지거나 자잘한 발목부상들은 꽤있었음)
연아 시니어 첫 시즌글인데...
이글만 봐도 김연아가 왜 자기 자식한텐
절대 피겨 안시킬거라고 말한지 알꺼야..
나도 연아보고 나중에 내 자식은 절대 운동시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깐 ㅠㅠ ..
(그리고 연아는 연아 혼자만 노력한게 아니라..
가족들의 희생도 엄청 났음..)
이런 부상들 외에도..
편파판정이나..
다른 외국선수들은 피겨 전용링크장에서 훈련할때..
아사다마오는 개인전용링크장에서 훈련할때..
연아는 일반인들과 롯데월드에서 훈련하거나
롯데월드 새벽훈련 했던적도많았음.
08세계선수권을 준비할땐
연아는 쇼트세계신,프리세계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였음에도 일반인들과 롯데월드에서 같이 훈련했었음.
이때 연아도 국민여동생으로 유명했던 시절이라..
연습하는데 일반인들이 플래쉬 터트리고 사진찍고
사인해달라 그러고 ..
심지어는 프로그램 연습중인데 점프 뛰어보라고 이름부르고
소리질러대고 그랬대.
그래서 그때 연아가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때 나와 경쟁할 다른 선수들은 저 혼자 혹은 선수들끼리만 있는 링크에서 집중해서 훈련하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어서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복받쳤다고 하더라고 ㅠ
(연아 책에 있는 얘기임 ㅠ)
+) 당시21살 나와 비슷한 또래였지만
나와는 좀 다르게 보였던 멘탈



본인의 부상, 슬럼프, 어려웠던 경제형편,
돈연아 악플, 힘들었던 훈련한경, 편파판정얘기는
쿨하게 얘기하다가 ㅋㅋ







올림픽 끝나고 가족들과 스텝들과 축하파티 했던
에피소드 얘기하다가 눈물을 흘림 ㅠㅠ
21살이지만, 7살때부터 자기 또래들에 비하면
힘든일도 고생도 배로 했을텐데
김연아는 자기때문이 아니라
나의 꿈을 이룰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음 ㅠㅠ
(방송 나오기전에 연아가 눈물흘렸다길래
난 당연히 본인 얘기 하다가 울 줄 알았거든..)
+)
"여자 싱글 경기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 하늘이 내려주는 금메달이기에 그날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더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난 연아가 이 얘기할때에도 멘탈이 대단하다 느꼈음..
(저 인터뷰 보자마자될사람은 역시 되나보다 생각했었음)
올림픽 끝난후 뿐만이 아니라 올림픽 경기전에도
올림픽 금메달에 대해 물어보면 김연아는 항상
하늘이 내려준것, 내가 그날의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을것,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항상 이런식으로 대답했었음.
올림픽 쇼트경기가 끝났을때 기자가
올림픽 금메달이 어떤 의미냐, 올림픽 금메달 딸 수 있겠느냐
라고 물어봤을때에도 연아는 저렇게 대답했었음.
그저 모든 시합중의 하나일뿐이라면서.
그리고 비슷한 질문에 마오는 그동안 쇼트에서 10점 차이로
뒤졌지만 지금은 4점 차이밖에 나지 않고 점프 하나의 차이기때문에 역전 가능성이 있다 이런식으로 대답했었음..


실제로도 마오는..
올림픽 끝나고 다큐에서..
4점 차이고 점프 하나의 차이이기때문에
본인이 충분히 역전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함.
(그러나 역전은 커녕...김연아한테 23점차로 짐-_-)
이거 보면서 서로 동갑이고
둘다 국민들로부터 금메달 압박 쩔게 받고
어릴때부터 올림픽 무대를 꿈꾸고
훈련한 선수들인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마음가짐이 좀 다르다고 생각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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