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연재할까 하니 갤러게이들아 잘 부탁한다. 


오늘 할 이야기는 부페/뷔페(영어 발음이니 뭐라고 한글로 쳐도 똑같다 마치 베컴/배캄) 이야기!

[음식이야기] 바이킹 후손들의 식문화, 부페(Buffet) | 인스티즈

 

요즘에 에쉴리니 빕스니 샐러드와&부페와 함께 대학가 근처에선 롤바/스시바/고기바 등 부페들이 유행하더라.

그래서 상-유 갤러 게이들을 위해 오늘은 부페 이야기를 해볼까 해. 뭐 듣다가 좀 유용한 정보 있으면

나중에 여자사람 만날때 이야기 해줘봐라 너님에게 후광이 비칠지도 모른다.

1.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시작 된 바이킹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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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페의 이야기는 백야와 오로라로 유명하고 복지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이 모여 사는곳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시작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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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면 알수 있듯이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산맥이 가로지르고 있으며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추워서 농업을 하기엔 결코 좋은지리조건을 가진 곳이 아니야. 그나마 동남부 지역은 농업이 발달했지만 자급자족은 힘들 정도의 수확량 이였어. 현대에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풍부한 어획량과 하우스 농업등으로 전처럼 심각하진 않지.

이 척박한 땅에서 정말 많은 인종들이 탄생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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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연전연패 시키고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정복한 고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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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국,호주,미국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앵글로 섹슨족의 역사도 바로 이 스칸다나비아 반도에서 시작 되. 이들이 영국에 정착한건 웨섹스 왕국을 무너뜨리고 정착하면서 앵글로 섹슨족이라 불렸지. 이 쪽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넘어가겠으요.

참고 - 잉글랜드(England) 라는 이름은 앵글로(Anglo)의 땅 (land)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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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흔히 김리를 떠올리는 듯한 이 인종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노르만족, 흔히 바이킹족 이라고 불리는 형들이야.스칸디나비아에서 살았던 이 민족은 다른 인종과는 다르게 유달리 용감했고 모험심이 강했어. 그로 인해서 

항해술이 매우 발달했지.바이킹이 역사에서 언급되기 시작한건 8세기 말 린디스판 수도원 습격 사건에서 부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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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린디스판 수도원을 약탈한 바이킹들은 수도사들을 죽이고 물건과 식량들을 약탈했어.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그다지 영국 섬나라가 강하지않다는 점을 알게 되. 모험심이 강한 그들은 

"이왕 이리된거 전 유럽을 한번 털어볼까?" 라는 호기심에 점점 노략질 판을 키워가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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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나오듯이 내륙을 넘어 러시아로 넘어간 바이킹들도 있지만 결국 바닷가에 정착. 거칠것 없는 바이킹들은 유럽의 해안을 가진 국가들은 모조리 약탈하기 시작했고 영국 7왕국들을 멸망 위기까지 몰고 갈 정도였어. 


프랑스 파리를 3만명의 바이킹들이 포위하고 공격하자 위기에 몰린 귀족들이 노르망디 땅과(지도상 잉글랜드 밑 주황색) 여자&재물들을 내밀며 협상을 하기도 했지. 

기세가 오른 바이킹들은 이베이라 반도,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해안까지 침공해서 약탈을 일삼았어.이들이 얼마나 골치였는지는 비잔틴과의 사건으로 알 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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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부유럽의 패자였던 비잔틴 제국도 바이킹이 침공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을때는 전쟁을 피하고 싶어했어. 그들 중 한 무리가 콘스탄티노블 근처 해역으로 진격하자 도시 안으로 통하는 모든 해협로에는 쇠사슬을 걸어놓고 배를 통과하지 못하게 만들어.

하지만 불굴의 북지국 바이킹 성님들은 쇠사슬 무시하고 배에 그림과 같이 통나무를 넣고 바퀴처럼 배를 굴려가기 시작, 

결국 내륙을 통과해서 콘스탄티노블 근처 해협으로 진입에 성공해. 이 사실에 놀란 비잔틴제국은 막대한 제물을 주어 화해를 청해.


(이 방법은 오스만 제국과의 콘스탄티 노블 공방전에서 다시한번 쇠사슬로 방어했지만 전쟁의 군주라 불리던 젊은 메메드2세는 바이킹과 같은 방법으로 반대편 콘스탄티노블의 바다를 포위해서 보급로를 끊고 결국 승리)

그럼 배를 끌고 이동하던 내륙은 안전했냐? 아니 그냥 길가다 마을이나 성이 보이면 닥치는대로 죽이고 약탈을 했다고 해.

[음식이야기] 바이킹 후손들의 식문화, 부페(Buffet) | 인스티즈

그들의 항해술이 발달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콜롬보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500년전에 북 아메리카에 도달했다는 점이야.아이슬란드 바이킹 영웅전인 '빈란드 사가'에서는 캐나다의 뉴 퍼틀랜드 섬에 정착했다고 했는데 실제 역사학자들이 조사해 보니 과거 바이킹이 사용했던 무기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었어.

하지만 주기적으로 오는 빙하기와 약탈할 제물들이 없자 그들은 사라진것으로 전해져. 바이킹의 이런 활동은 1066년 노르웨이의 왕 하랄이 잉글랜드 원정에서 패해 전사하면서 3백년간 바다를 누비던 약탈자들은 역사속에서 사라져.

2. 바이킹, 그들이 남긴 식문화 부페

[음식이야기] 바이킹 후손들의 식문화, 부페(Buffet) | 인스티즈

자 그럼 바이킹 이야기는 이쯤에서 하고 식문화로 다시 넘어가 볼께(좀 길어졌군 지루했다면 미안)

스웨덴에서는 이렇게 여러 음식을 차려놓고 접시에 덜어서 먹는 것을 스뫼르고스보르도(smorgasbord) 라고 말해.

여기서 Smor 스모르는 빵과 버터, Gas는 가금류, Bord 는 널판지를 뜻해. 한마디로 널판지에 빵과 버터 그리고 고기들을 죽 차려놓고 먹는 음식이라고 보면 되.

이 음식은 앞서 말한 바이킹족들이 약탈에 성공하면 노획 물품 중 여러가지 식재료와 음식들을 탁자나 널판지에 모두 올려 놓고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축제를 벌였던 것이 유래라고 해.

[음식이야기] 바이킹 후손들의 식문화, 부페(Buffet) | 인스티즈

이에 조금 더 발전 된 음식으로는 덴마크의 스뫼르브레드 라는 것이 있어. 위 사진이 그 음식인데 빵에 고기,음식들을 올려 먹는 것이야.


샌드위치와는 달리 오픈된 형식으로 호밀빵을 사용하는데 밀 자급자족이 어려웠던 북유럽이였기에 호밀빵을 즐겨 먹었다고 해.빵 위에 올리는 음식으로는 연어알,새우,청어 등의 북유럽 바다에서 쉽게 잡히는 해산물이였고 양고기, 소고기, 돼지고기나 닭, 계란도 올려서 먹는다고 해.

여기에 크림, 치즈, 올리브등을 올려놓는 고급 요리로 변질되었는데 빵 위에 올리는 토핑 종류만 140 가지가 넘는다고 할 정도.

부페는 그 이후 프랑스에 전파 되어 이 식문화는 천장/식기 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Buffet 라고 불리기 시작해. 오늘날의 우리가 부페라고 불리는 바로 그 것이지.


[음식이야기] 바이킹 후손들의 식문화, 부페(Buffet) | 인스티즈

근대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해. 우리나라 최초의 부페는 국립 의료원(동대문 쇼핑물 뒤에 위치)을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 3국이 공동 설립/운영을 하기로 되있는데 이 기술자들과 사절단들을 위해 전용 식당/휴게실로 1958년  11월에 문을 열었어. 이 후 상류층들을 위한 회원제로 운영했다가 1980년부터는 회원제를 폐지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해.

현재도 동대문 쇼핑몰 뒤편에 이 사진의 식당은 그때 그 시절처럼 ‘스칸디나비아 클럽’ 이란 이름으로 계속 영업하고 있다 하니 관심있는 게이들은 여자 사람들 손 잡고 한번 가보도록.

[음식이야기] 바이킹 후손들의 식문화, 부페(Buffet) | 인스티즈

대표적인 노르웨이의 음식들인데 유럽에 가면 부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요리라고 해. 맛이 궁금한 게이들은 저 식당가면 이 음식들을 이용할수있는 부페 시설이 되있다고 하니 궁금하거나 기회되는 게이들은 가보는 것도 좋겠다.

[음식이야기] 바이킹 후손들의 식문화, 부페(Buffet) | 인스티즈

3. 바이킹의 후손들, 그 후의 이야기

노르웨이는 1200년대에 전성기를 맡이했지만 흑사병이 퍼지면서 인구 60%가 사망하게 되면서 스웨덴에 흡수 되.

1905년 독립을 요구하던 노르웨이 국민들에게 척박한 땅과 바다밖에 없다고 판단한 스웨덴은 독립을 허락하지만

노르웨이 대륙봉에 엄청난 양의 유전이 발견되면서 스웨덴은 후에 땅을치고 후회했다고 함.

유전 덕분에 경제력에서 스웨덴을 압도하기 시작한 노르웨이, 현재는 스웨덴인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노르웨이로 많이

넘어간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