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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1년 전 (2015/2/11) 게시물이에요




책사를 칭찬할 때 최고의 극찬 "그대는 나의 장자방이다!"의 그 장자방 업적 | 인스티즈

장량 자방(張良 子房)

 

 

 

 

 

 

 

책사를 칭찬할 때 최고의 극찬 "그대는 나의 장자방이다!"의 그 장자방 업적 | 인스티즈

▲장량과 함께 시황제 암살을 기획한 창해역사

 

장량이 회양(淮陽)에서 예를 배운 후에 동쪽으로 여행하다가 창해군(倉海君)을 만나서 장사 한 사람을 얻어 그를 위해 120근 짜리 철퇴를 만들었다. 진시황이 동쪽으로 순수 나왔을 때 장량과 창해역사는 진시황을 박랑사(博浪沙)에서 저격했으나, 뒤따르던 부거(副車)를 잘못 맞추었다. 진시황이 대노하여 천하에 대 수색령을 내려 자객이라고 의심나는 사람들을 매우 급하게 붙잡아 들였는데 이것은 모두 장량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다. 장량이 이름과 성을 바꾸고 하비(下邳)로 도망가 숨었다.

▶의인(義人)으로서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장량

 

 

 

-최고의 책사, 그 전설이 시작되다-

 

장량이 하비에 숨어 있을 때 어떤 다리 위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때 노인 한 사람이 갈포로 지은 옷을 입고 장량이 있던 곳으로 오더니 곧바로 그의 신발을 벗어 다리 아래로 던지고 나더니 장량을 보고 말했다.

"젊은이, 내 신발 좀 줏어다 주게나!"

장량이 놀라 그 노인을 두들겨 패주려고 하다가 그가 나이를 먹은 노인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화를 참으며 다리 밑으로 내려가 신발을 주어다 주었다. 이에 다시 그 노인이 장량에게 말했다.
"신발을 신겨주게나."
기왕에 신발을 주어왔음으로 노인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그에게 신발을 신겨주었다. 발을 뻗어 장량에게 신발을 신기게 한 노인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자기 길을 갔다. 장량이 마음속으로 놀라며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노인이 일 리쯤 가다가 다시 돌아와 장량을 향해 말했다.
"자네는 내가 가르칠만 하다! 닷새 후에 아침이 밝아올 때 여기서 다시 만나세!"

장량이 마음속으로 더욱 괴이하게 여기며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윽고 닷새 후 아침에 장량이 약속한 장소에 나갔으나 그 노인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으면서 화를 내며 말했다.

"젊은 사람이 노인과 약속을 해 놓고 늦게 왔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노인이 돌아가면서 장량을 향해 말했다.
"닷새 후 새벽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세나!"

그리고 닷새 후 장량은 새벽닭이 우는소리를 듣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러나 그때도 노인이 먼저와 기다리고 있다가 장량을 보고 늦게 왔다고 화를 내며 닷새 후 새벽에 다시 그곳으로 나오라고 하면서 가버렸다. 그리고 닷새 후 장량은 그 전날 야밤도 미처 되기 전에 그곳에 나가서 노인을 기다렸다.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노인이 나타나며 기뻐하며 말했다.

"젊은이라면 마땅히 이래야지!"
이윽고 노인이 소맷자락 속에서 책 한 권을 내놓으며 말했다.

 

"이 책을 배우면 장차 제왕의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0년 후에는 능히 제왕의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3년 후에는 젊은이는 나를 제북(濟北)의 곡성산(穀城山)에서 만나볼 수 있으리라! 그때 곡성산 밑에 노란 돌이 하나 있을 것이니 그것이 바로 나일 것이다."

 

그리고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이윽고 날이 밝아 그 책을 살펴보니 그것은 바로 '태공병법(太公兵法)'이었다. 장량이 기이한 일이라고 여겨 그 책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읽고 외웠다.

 

 

 

-왕좌지재(王佐之才), 제왕(帝王)을 알아보다-

 

장량이 하비에 머물며 협객이 되었는데 그때 항백(項伯)이란 사람이 살인하여 죄를 얻자 장량이 그를 구해 숨겨주었다.

그리고 10년 후에 진섭(陳涉) 등이 기병하자 장량도 역시 젊은이 100여 명을 모았다. 그때 경구(景駒)가 스스로 초나라의 대리왕이 되어 유읍(留邑)에 머물렀다. 장량이 경구를 찾아가던 도중에 패공(유방)을 만났다. 그때 패공은 휘하에 수천의 무리를 이끌고 하비의 서쪽을 공략하고 있었다. 장량은 패공의 휘하에 들어갔다. 패공은 장량을 구장(廐將)에 임명했다. 장량이 패공에게 자주 '태공병법(太公兵法)'을 유세하자 패공은 좋아하여 그때마다 장량의 계책을 실전에 사용하곤 했다. 장량이 다른 사람에게도 태공병법에 관해 논했으나, 패공 외는 아무도 깨닫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장량은 속으로 생각했다.

"패공은 아마도 하늘이 낸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장량은 패공을 따르기로 하고 경구(景駒)에게 가지 않았다.

-유방, 장량의 계책으로 관중에 먼저 입성하다-

 

책사를 칭찬할 때 최고의 극찬 "그대는 나의 장자방이다!"의 그 장자방 업적 | 인스티즈

 

패공이 낙양에서 남쪽으로 나아가 환원산(轘轅山)으로 진격했을 때 장량도 군사를 이끌고 그의 뒤를 따라 출전하여 한나라 땅의 십여 개 성을 함락시키고 양웅(楊熊)의 군사를 격파했다. 패공은 이어서 한왕 성에게 양책(陽翟)에 머물며 지키라 명하고 자기와 장량은 남쪽으로 나아가 완성(宛城)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후 계속해서 서쪽으로 진격하여 무관(武關)으로 들어갔다. 패공이 2만의 군사로 요관(嶢關)에 있는 진나라 군사들을 공격하려고 하자 장량이 계책을 내어 말했다.

"진나라 군대는 아직도 그 세력이 강하여 결코 가볍게 보시면 안될 것입니다. 제가 듣기에 진나라 장수들은 모두 장사꾼 출신들이라, 장사꾼은 이로써 유혹하면 마음이 쉽게 움직이게 할 수 있습니다. 패공께서 일단 보루를 지키면서, 사람을 앞서 보내 5만 명의 식사를 준비하도록 하고, 산봉우리에는 모두 깃발을 빽빽이 꽂아 의병(疑兵)을 세우고, 다시 역이기(酈食其)에게 금은보화를 주어 진나라 진영으로 보내 적장들을 이로써 달래 항복을 권유하시기 바랍니다."

과연 진나라 장수가 반하여 패공의 군사와 연합하여 서쪽으로 진격하여 함양을 습격하려고 했다. 패공이 진군과 함께 함양을 공격하려고 하자 장량이 다시 말했다.

"아마도 그 계획은 진나라 장수 혼자만의 생각이라 혹시 그 부하 군사들이 명령을 받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진나라 군사들이 장수의 말을 따르지 않게 되면 필시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니 차라리 그들이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서 공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에 패공이 즉시 군사를 이끌고 진군을 공격하자, 진군은 크게 무너졌다. 도망가는 진군의 뒤를 추격하여 남전(藍田)에서 다시 싸웠다. 진나라 군사들은 결국은 남전에서 와해되고 패공은 함양에 입성해서 진왕 자영(子嬰)의 항복을 받았다. 

-유방, 장량의 덕(德)으로 인해 홍문에서 살아남다-

 

책사를 칭찬할 때 최고의 극찬 "그대는 나의 장자방이다!"의 그 장자방 업적 | 인스티즈

 

항우가 이윽고 홍문(鴻門)에 이르러 패상의 패공을 공격하려고 했다. 이에 항백(項伯)이 야음을 틈타 패공의 진영에 당도하여 아무도 몰래 장량을 만나 그곳을 빠져나가자고 했다. 장량이 듣고 항백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한왕(韓王)을 위해 패공에게 파견된 사람입니다. 오늘 일이 급하게 되었다고 나 혼자 도망친다면 그것은 의가 아닐 것입니다."

장량이 즉시 패공에게 달려가 그 일을 고했다. 패공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장차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패공께서 함곡관으로 군사를 보내 항우를 막으려고 하셨는데 정말로 항왕에 반기를 들려고 하신 것입니까?"

"어떤 천박하고 무지한 놈이 나보고 말하기를 함곡관에서 제후군을 막게 되면 진나라 땅은 모두 차지할 수 있다고 했소. 그래서 내가 그의 말을 따른 것이오."

"그렇다면 패공께서는 지금 항우를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패공이 한 동안 말이 없더니 이윽고 입을 열어 말했다.

"나는 결코 항우와 대적할 수 없소. 어떻게 하면 좋겠소?"

 

장량이 항백을 억지로 패공 앞으로 데려와 회견을 시켰다. 항백을 접견한 패공은 그에게 술잔을 올려 축수를 하고 그들 자녀들을 혼인시켜 인척 관계를 맺기로 했다. 그래서 항백은 초군의 진영으로 돌아가 패공이 감히 항우를 배반할 생각을 하지 안 했으며, 단지 관에서 제후군에게 항거한 것은 도적들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해 주었다. 패공이 항우를 접견한 후에 화해를 했다. 이 일은 '항우본기(項羽本紀)'에 자세하게 나와있다.

-장량, 잔도를 불태워 항우를 방심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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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원년(B.C 206년) 정월 패공이 한왕이 되어 파(巴)와 촉(蜀)땅을 다스리게 되었다. 한왕이 장량에게 황금 100일(鎰)과 주옥(珠玉) 2말을 하사했다. 장량은 그 모두를 다시 항백에게 주었다. 한왕 역시 장량을 통해 항백에게 많은 재물을 주어 한중(漢中)의 땅을 항우에게 청해 달라고 부탁했다. 항우가 허락하자 한왕은 마침내 한중의 땅을 얻을 수 있었다. 한왕이 그 봉지에 부임하러 갈 때 장량은 포중(褒中)까지 따라와 한왕을 전송했다. 한왕은 포중에서 장량을 한나라에 돌아가게 했다. 장량이 한왕과 헤어지면서 말했다.

 

"왕께서는 잔도를 지나간 다음 반드시 불태워 절대 관중이나 중원으로 나갈 생각이 없다는 마음을 천하의 제후들에게 밝히셔야 할 것입니다. 그것으로써 항왕의 마음을 안심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장량은 한나라로 돌아가고 한왕은 한중으로 들어가면서 지나온 잔도를 모두 불태워 버렸다.

이윽고 장량이 한왕과 헤어지고 한나라에 이르렀으나 항왕은 한왕(韓王) 성(成)이 옛날 장량의 권유로 한왕을 따랐다고 해서 자기 봉국으로 보내지 않고 동쪽의 팽성으로 데리고 갔다. 장량이 항왕에게 말했다.

"한왕이 한중으로 들어가면서 잔도를 불태워 길을 끊은 것을 보면 아마도 그는 그곳에서 중원이나 관중으로 나올 생각이 없는 듯 합니다."

장량은 이어서 항왕에게 제왕 전영(田榮)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편지를 써서 고했다. 항왕은 이로써 서쪽의 한왕에 대한 걱정을 떨쳐 버리고 그 군사로 북쪽의 제나라를 공격했다.

▶항우의 시선을 다른곳으로 돌려 유방이 반격할 시간을 벌게 해주는 장량

 

 

 

-유방에게 경포와 팽월을 포섭하게 하고, 한신에게 정벌을 맡기도록 종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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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왕은 결국은 한왕 성을 봉국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그 작위를 후로 깎은 다음, 다시 팽성에 이르자 죽였다. 장량이 도망쳐 소로를 이용하여 한왕에게 돌아왔다. 한왕 역시 그 동안 한중에서 나와 삼진(三秦)을 평정했다. 한왕에 의해 성신후(成信侯)에 봉해진 장량은 함곡관을 나와 동쪽으로 진격하여 초나라를 공격하는 한군에 종군했다. 한왕이 팽성에 이르렀으나 초군과의 싸움에서 지고 패퇴했다. 한왕이 하읍(下邑)에 이르렀을 때 말에서 내려 말안장에 기대어 장량에게 물었다.

"내가 함곡관 동쪽의 땅을 떼어서 다른 사람과 나누려고 하오. 누가 능히 나와함께 통일천하를 건립하여 대공을 세울 수 있겠소?"

"구강왕 경포(黥布)는 초나라의 맹장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초왕과 틈이 벌어져 사이가 소원한 상태고, 팽월(彭越)은 제왕(齊王) 전영(田榮)과 함께 양나라 땅에서 항우에게 반기를 들었으니 이 두 사람을 급히 부러 쓰시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대왕의 장수 중에는 오직 한신만이 큰 일을 맡기면 한 방면의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왕께서 땅을 나누시려고 하신다면 이 세 사람에게 나누어주어야만 초나라를 무찌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한왕은 즉시 수하(隨何)를 사자로 보내 구강왕 경포를 설득하도록 하고 팽월에게는 별도의 사람을 보내 연락을 취하도록 했다. 이윽고 위왕(魏王) 표(豹)가 배반하자 한신을 장수로 삼아 그를 공격하게 했으며, 계속해서 연(燕), 대(代), 제(齊), 조(趙) 등의 땅을 공략하게 했다. 한왕이 초나라를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세 사람의 힘 때문이었다.

-덕(德)과 예(禮)를 무기로 하여, 과연 항우를 이길 수 있겠사옵니까-

 

 

책사를 칭찬할 때 최고의 극찬 "그대는 나의 장자방이다!"의 그 장자방 업적 | 인스티즈

 

한 3년(B.C 204년) 항우가 형양에서 포위하여 맹공을 받은 한왕은 매우 두려워하며 역이기(酈食其)와 함께 초나라 세력을 약화시킬 계획을 궁리했다. 역이기가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옛날 탕왕은 하나라의 걸왕(桀王)을 토벌하고 나서, 하나라의 후손들을 기(杞)에 봉했고, 주무왕은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토벌한 다음 그 후손들을 송(宋)에 봉했습니다. 그러나 진나라가 나타나 덕과 도를 저버리고 각 제후국들을 침략하여 6국을 멸하고 그 후손들의 대를 끊어 그들은 송곳 하나 세울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폐하께서 진실로 육국의 후예들을 제후로 다시 세우시고 그들 모두에게 제후의 인수(印綬)를 나누어주신다면, 그 나라의 군신들과 백성들은 폐하의 은덕에 감읍하여 대왕에게 달려와 귀의할 것이고, 폐하의 도의를 앙모하여 기꺼이 폐하의 신민이 되기를 자청할 것입니다. 세상에 도덕과 정의가 행해지면 페하께서는 남면하여 폐자를 칭하게 될 수 있으며, 초왕은 틀림없이 의관을 정제하여 공손한 태도로 달려와 폐하께 조배를 드릴 것입니다."

한왕이 역이기의 말을 찬동하며 말했다.

"좋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제후들을 위한 인장을 샛길 것이니, 선생은 그것들을 직접 들고 제후들을 찾아가 전하시기 바랍니다."

역이기가 미처 행차를 떠나기 전에 장량이 마침 외지에서 돌아와 한왕을 알현했다. 한왕이 막 식사를 하려다 말고 장량을 향해 말했다.

"자방(子房)께서는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오. 문객으로 있던 사람 중에 초나라의 세력을 깎을 수 있는 계책을 낸 사람이 있었소."

이윽고 한왕이 장량에게 역식기의 계책을 모두 말하고 물었다.

"자방께서는 그의 계책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따위 생각을 폐하께 올린 것입니까? 그렇게 하신다면 폐하께서 도모하려고 하는 대사는 결코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청컨대 대왕 앞에 놓여있는 젓가락을 잠시 저에게 빌려주시면 제가 대왕을 위해 당면한 형세를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장량이 이어서 한왕에게 설명했다.

"옛날 탕왕이 걸왕을 토벌하고 그 후손들을 기(杞) 땅에 봉한 것은 걸왕을 사지에 몰아 넣어 능히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였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능히 항적(항우)을 사지에 몰아 넣어 그를 제압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소."

 

"그것이 제후들을 새로 세울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주무왕이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정벌하고 그 후예들을 송나라에 봉한 것은 주왕의 머리를 이미 얻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는 항적(項籍)의 머리를 능히 얻을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소."

 

"그것이 불가한 두 번째 이유입니다. 주무왕이라에 들어갈 때 상용(商容)이 살았던 마을의 이문(里門)에서 그의 어진 마음을 표창했고, 감옥에 갇혀있었던 기자(箕子)를 석방했었으며, 또한 주왕에게 죽임을 당한 비간(比干)의 무덤에 흙을 더 쌓아 그 높이를 높여주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능히 성인의 분묘를 다시 새로 쌓고, 현인이 살았던 마을의 이문에서 그의 덕을 칭송하며, 재능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앞을 지나며 그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소."

 

"그것이 불가한 세 번째 이유입니다. 주무왕은 거교(鉅橋)의 창고에 있던 식량과 녹대(鹿臺)에 쌓여있던 금품을 꺼내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능히 부고 있는 식량과 금품을 모두 꺼내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실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소."


"그것이 불가한 네 번째 이유입니다. 주무왕은 은나라를 멸한 일이 끝나자, 병거를 개조해서 수레를 만들고, 병장기를 모두 거꾸로 세워 창고 속에 넣고 모두를 호랑이 가죽으로 덮음으로써 천하에 다시는 군사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였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무력의 사용을 중지하고 문치를 행하여 다시는 병장기의 사용을 금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소."


"그것이 불가한 다섯 번째 이유입니다. 주무왕은 다시 화산(華山)의 남쪽 기슭에 전마들을 풀어놓고 다시는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천하에 보였습니다. 오늘 폐하께서는 전마들을 풀어주어 다시는 그 말들을 전쟁에 쓰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소."


"그것이 불가한 여섯 번째 이유입니다. 주무왕은 은나라를 멸하고 돌아와 소들을 도림(桃林) 북쪽 기슭에 풀어놓고 다시는 용병(用兵)의 일로 군수품과 양초를 운반하거나 모으지 않겠다고 천하에 보였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수레를 끄는 소들을 풀어 방목시킴으로써 천하에 군수품과 양초를 운반하거나 모으지 않겠다는 뜻을 보일 수 있으십니까?"
"할 수 없소."


"그것이 불가한 일곱 번째의 이유입니다. 또한 천하를 돌아다니는 선비들이 그의 친척과 이별하고, 그 조상의 분묘를 버리며, 옛 친구들과 떨어져 폐하를 따라 천하를 전전하는 것은 단지 매일 밤마다 한 뼘의 땅이나마 떼어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오늘 육국(六國)을 복국시켜 한(韓), 위(魏), 연(燕), 조(趙), 제(齊), 초(楚) 등의 후손들을 제후왕으로 세운다면, 천하의 선비들은 각기 그 주인을 섬긴다고 하면서 그 친척과 친구 그리고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갈 버릴 텐데, 폐하께서는 천하를 얻기 위해 누구와 함께 싸우려고 하십니까? 그 불가한 여덟 번째 이유입니다. 더욱이 지금 초나라보다 더 강대한 나라는 없어, 세력이 약한 육국의 제후국들은 결국은 초나라를 다시 따를 것입니다. 폐하께서 어떻게 그들을 신하로 삼으실 수 있겠습니까? 문객의 계책을 시행하신다면 폐하가 도모하려고 하는 일은 모두 그르치게 됩니다."

한왕이 장량의 말을 다 듣더니 입안에 있던 음식을 뱉어내고는 역이기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유생 놈 때문에 하마터면 천하의 공사(公事)를 망칠뻔 했구나!"

한왕이 즉시 명을 내려 조각하고 있던 인장들을 모두 녹여버리라고 했다.

-아직은 한신과 제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책사를 칭찬할 때 최고의 극찬 "그대는 나의 장자방이다!"의 그 장자방 업적 | 인스티즈

 

한왕 4년(B.C 203년) 한신이 제나라를 정벌하여 점령하고 스스로 제왕(齊王)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사자를 한왕에게 보냈다. 한왕이 대노하여 한신을 공격하려고 했다. 장량이 한왕에게 한신을 제왕에 봉해야 한다고 권했다. 한왕은 장량에게 제왕신(齊王信)이라고 새겨진 인장을 주어 한신에게 사자로 보냈다. 이 일은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자세하게 나와있다.

그해 가을 한왕은 초군의 뒤를 추격하여 하양(夏陽)의 남쪽에 이르러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고릉(固陵)으로 후퇴하여 보루에 의지하여 굳게 지키며 약속한 제후들이 군사를 이끌고 당도하기를 기다렸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에 한왕이 장량의 계책을 따르자 제후들이 이윽고 군사를 이끌고 달려왔다. 이 일은 '항우본기(項羽本紀)'에 기록되어 있다.

-논공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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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B.C 201년) 정월, 항우를 멸하고 공신들에게 논공행상을 했다. 장량은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가 싸워 세운 공이 없었음에도 고조가 일부러 장량이 세운 공에 대해서 언급했다.

"군중의 장막 안에서 계책을 내어 천리 밖의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것이 자방이 세운 공로이다. 장량으로 하여금 제나라 땅의 3만 호를 스스로 골라서 봉읍으로 갖게 하라!"

▶만인(萬人)의 공신 앞에서 그 중 장량의 공이 으뜸이었음을 공언하는 유방

이에 장량이 사양하며 말했다.

"원래 저는 하비(下邳)에서 몸을 일으켜 경구를 찾아가다가 도중에 유(留) 땅에서 폐하를 우연히 뵙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저에게 폐하를 만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저의 계책을 받아 주셨고, 다행히 저의 계책은 적중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이룬 공이 아니라 폐하의 배려로 인한 일이라, 저는 단지 유현(留縣)에 봉해지는 것만으로 과분하온데, 어찌 감히 제가 3만 호의 봉지를 바라겠습니까?"

그래서 장량은 유(留) 땅을 봉지로 갖는 유후(留侯)가 되어, 소하(蕭何) 등과 같이 봉해졌다.

황제가 이미 큰공을 세운 20여 명의 공신들에게 상과 봉지를 주었으나, 그밖의 공신들에 대해서는 매일 서로 공을 다투어, 그 서열을 매길 수 없어, 오랫동안 봉읍과 상작을 결정할 수 없었다. 황제가 낙양의 남궁(南宮)에 머물며 다리 위를 지나가다가 다리 밑의 모래밭에 일단의 장수들이 모여 앉아 서로 간에 무엇인가를 의논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황제가 곁에서 시종하고 있던 유후 장량에게 물었다.

"저들은 지금 무엇을 의논하고 있는 것이오?"

"폐하께서는 아직도 그것을 모르시고 계십니까? 저들은 반란을 획책하고 있는 중입니다."

"천하가 이미 안정되어 가려고 하는 마당에, 무엇 때문에 모반을 의논한단 말이오."

"폐하께서는 평민의 신분으로 일어나, 저들의 힘으로 천하를 얻으시어, 지금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그러나 봉읍과 상작을 내린 사람들은 모두 소하(蕭何)나 조참(曺參)과 같은 폐하와 가깝거나 총애하는 옛 친구들 뿐이고, 폐하께서 살해한 자들은 모두 살아오시면서 원한을 품은 자들입니다. 지금 군리(軍吏)들이 저들과 같은 사람들의 공로를 모두 계산해 본 바, 천하의 땅을 전부 가지고도 그들 모두에게 봉읍과 상작을 주기에는 부족하다고 했음으로, 저들은 폐하께서 자기들 모두에게 봉읍을 내려주지 않을까 걱정하고, 또 평소에 자기가 저지른 실수로 인해 의심받아 살해될까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삼삼오오 모여서 모반을 하려고 의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소?"
"폐하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군신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미워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옹치(雍齒)라는 놈은 나와 오랜 원한이 있소. 그 놈은 옛날 나로 하여금 난처한 처지에 빠지게 해서 욕을 여러 번 보게 했소. 내가 여러 번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그가 세운 공이 많이 차마 죽이지 못하고 참고 있는 중이오."

"지금 급히 옹치를 먼저 봉하여 군신들이 보게 하시기 바랍니다. 군신들이 옹치가 봉읍과 상작을 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 자기도 틀림없이 봉작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고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조가 주연을 마련하여, 그 자리에서 옹치를 십방후(什方侯)에 봉했다. 이어서 고조는 군신들 앞에서 승상과 어사(御史)를 재촉하여 공신들의 공을 평가하여 봉읍과 상작을 하루빨리 결정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윽고 주연이 끝나자 군신들은 모두 기뻐하며 말했다.

"옹치도 후에 봉해졌는데, 우리 같은 사람이야 어찌 걱정하겠는가?"

-수도는 관중(장안)으로 정하심이 이롭사옵니다-

 

유경(劉敬)이 고조에게 유세했다. "관중(진의 도읍 함양과 그 일대)을 도성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고조는 의심하며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고조의 좌우에 있던 대신들은 모두가 관동(關東) 출신이라 그 대부분이 낙양을 도성으로 삼을 것을 권하면서 그 이유를 말했다.
"낙양의 동쪽에는 성고(成皐)가 있고, 서쪽에는 효산과 민지(澠池)가 있습니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황하에 의지하고 있고, 이수(伊水)와 낙수(洛水)를 마주 대하고 있어 그 험준한 지형과 견고한 성곽에 의지한다면 가히 마음을 놓을 수 있습니다."

장량이 자기 의견을 말했다.

"낙양은 비록 그와 같이 지리적인 이점과 견고한 성곽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의 땅은 너무 협소하여 사방 백리에 불과합니다. 또한 토지는 척박하고, 사면에서 적군의 침입을 맞이할 수 있어 이와 같은 땅은 결코 군사적으로 유리한 땅이 아닙니다. 관중의 동쪽에는 효산(崤山)과 함곡관(函谷關)이 있고, 서쪽에는 농산(隴山)과 민산(岷山)이 있어 그 사이의 비옥한 땅은 사방 천리에 달하고 있습니다. 또한 남쪽으로는 물산이 풍부한 파(巴)와 촉(蜀) 두 군(郡)과 접하고 있고, 북쪽에는 호(胡) 땅의 대초원이 있어 능히 가축을 방목하여 기를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삼면은 험준한 지형에 의지하여 굳게 지킬 수 있고, 단지 동쪽 한 방면만을 통해 제후들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만일 제후들이 안정되어 있으면, 하수와 위수(渭水)를 이용하여 관동에서 산출되는 양식과 물자들을 관중으로 수송할 수 있을 것이며, 제후들이 반하여 천하에 변란이 일어나면 위수나 하수의 순류를 타고 병사들과 그 군수품을 수월하게 수송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천리에 달하는 철옹성과 같은 땅이며 하늘이 내려준 천혜의 창고입니다. 유경(劉敬)의 올린 건의가 옳습니다."

그래서 고조는 즉시 마음을 결정하고 어가를 움직여 서쪽의 관중으로 들어가 그곳에 도읍을 정했다.

-유후 장자방, 편안히 속세를 떠나다-

 

이어서 장량은 선식을 배워 오곡을 먹지 않았고, 도인(道引)을 행하여 몸을 가볍게 했다.

이윽고 고조가 세상을 뜨자(B.C 195년) 여후(呂后)가 장량의 은혜를 생각하고 강제로 음식을 먹게 하면서 말했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마치 흰 망아지가 문틈으로 지나가는 것과 같이 찰나의 일과 같은데, 어찌 그와 같이 스스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입니까?"

장량은 부득이 선식을 중단하고 억지로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8년 후(B.C 187년)에 죽었다. 시호는 문성후(文成侯)고 거의 아들 장불의(張不疑) 그 작위를 물려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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