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4살 직장인 여자사람입니다. 너무도 개인적이고 너무도 충격적이며
한편으로는 너무도 고민을 많이하다 쓴 글이라 손이 벌벌 떨리네요..
꼭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핫이슈로 퍼가셔도 되고 어디든 퍼가셔도 됩니다.
망설이고 망설이고 망설이다 글을 써요.
막글게시판이나 친목게시판에 쓰려고 했으나
여자들 중 분명 나 말고도 이런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겠지 싶어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혹시나 나와 같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면 나처럼 하고
비판받아야 할 데가 있다면 비판해주시고..
무엇보다도 어떻게해야할지 저에게 조언을 해주셨으면 싶어서 이곳에 조심스레 글을 남깁니다.
읽으면서 이런 경험이 없으신 분들은 다소 충격을 받고, 경악하고, 제가 불쌍하다 느껴지실수도 있어요.
그 어떤 생각을 하시든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며칠전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단지 웹툰' 아시나요?
여자 작가분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쓴 이야기였는데, 그동안 살아오면서 집에서 받아온
정신적 육체적 모든 학대들과 집에서 받아온 모든 상처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그리신 이야기였었죠.
제가 오늘 할 이야기도 그 이야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더욱 적나라할수도 있습니다.
맞아요.
'우리 부모님'과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우선 저는 지금, 지방이었던 집을 떠나 멀리 떨어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굳이 집 가까운곳에 직장을 구해 편히 다니지 않고? 생각하셨을수도 있지만 잠깐만 생각해보면 눈치채실거에요.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싶어서, 집과 묶이고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어릴때부터 지독하리만큼 이 생각은 계속해서 저를 따라다녔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는 이 집을 나오겠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못산다 하고.
사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저에 대한 언어적 육체적인 폭력이 이루어졌고 그것이 정당화되어 퍼부어지고 있었는지
사실 저도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초등학교 4학년. 그러니까 열한 살 때부터였던것 같네요.
본격적인 언어적 신체적 폭력이 가해졌던건 바로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때쯤이었어요.
처음엔 아주 사소한 손찌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뺨을 때린다던가, 머리통을 세게 갈겨 맞는다던가 하는 거요.
사실 저것도 친한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야 그게 뺨맞고 머리 휘갈겨 맞을일이야? 열한살이?' 하며 경악하지만.
이유는 별거 없었습니다.
숙제 제시간에 하는거 까먹어서.
일기 안 써서.
양치질 늦게 해서.
우습지 않나요 ㅎㅎㅎ.. 쓰면서도 참 자조적인 웃음이 튀어나오네요.
보통의 부모라면 숙제를 제시간에 하는걸 잊거나, 일기를 안 쓰거나 양치질을 늦게 하면 따귀를 때리나요?
제 경우엔 가령 예를들면 이랬어요.
엄마 : 너 일기 쓴거 가져와봐.
나(당시 11살) : 엄마, 맞다. 쓰는 거 까먹었어. 지금 쓸게
엄마 : 뭐? (인상이 완전히 일그러짐)
시간이 몇신데 일기를 아직도 안썼단거야 아까는 도대체 뭐했어
나 : 텔레비전 봤어요.... 텔레비전에 만화 재미있는거 해서 그거 봤어요.
엄마 : 할것도 안해놓은주제에 무슨 텔레비전이야!!!!!!! (곧장 싸대기를 때림)
이런식이었습니다.
처음 따귀를 맞은 날, 너무 놀라고 아파서 그자리에서 굳어버렸습니다. 처음엔 울지도 못했어요.
내가 왜 맞았는지, 지금 내가 정말로 엄마에게 뺨을 맞은게 맞는지 인지하는데도 한참이 걸렸습니다.
상처를 준 사람은 기억을 못해도 받은 사람은 기억한다고 하죠.
십 여년이 지난 그때의 일을 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렇게 뺨을 후려치고 나서, 엄마는 연필과 일기장을 집어던지며 '당장 가서 일기 써' 라고 하셨었죠.
지금 그런식으로 저를 때렸었다는것조차 분명 기억하지 못하실테지만요.
그것이 기폭제가 되었던 것인지, 그때부터 엄마의 폭력은 불시에 날아들었어요.
과학시험을 못 본 날엔 엄마에게 점수를 이야기했다가 세게 얻어맞고선 구석으로 날아가 처박혔습니다.
'다른 애들은 몇점이던데 너는 왜 그거밖에 못 받아 왔냐. 누굴 닮아 머리가 그렇게 나쁘냐'
곧장 폭언이 이어졌습니다. 나는 학교다닐 때 공부 잘했는데 속터져 죽겠다. 저건 도대체 누굴 닮았냐.
교과서를 들이밀며 여기 다 나와있는데 왜 점수를 저거밖에 못받냐고 했습니다.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때 역시도 내가 왜 맞았는지 몰랐습니다.
그냥 엄마가 화를 내니까 미안했습니다.
그때 저는 12살이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별나라요정 코미를 보던 제사촌동생이 12살이었어요. 완전히 어린 아이였는데...
그냥 때리니까 내가 잘못했나보다 하고 맞았습니다.
친구를 따라서 문화상품권을 긁어서 세이클럽(당시에 세이클럽이 유행이었어요)
아바타를 돈주고 샀을 때는, 초등학생이 어디 그런 쓸데없는데다 돈 쓰는걸 배웠냐며
머리채를 잡혀서 방안을 질질 끌려다녔습니다.
제가 그때 쓴 돈은 오천원이었어요.
교회에서 친구 따라갔다가 받은 문화상품권이었어요. 제 돈을 주고 산 것도 아니었고
그렇기에 제 돈을 주고 산 게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그때 저한테 물었어요. 다시 그런 짓 할거야 안 할거야.
저는 대답했습니다. 안 할게요 잘못했어요 아파요. 제가 잘못했어요 다신 안 살게요.
하지만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대로 머리채를 잡았다가 놓았다가 머리통을 후려쳤다가.
그렇게 맞고도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아프고 엄마가 무서워서 엉엉 울었습니다.
이 외에도, 자잘한 이유들로 저는 맞고 언어적 폭력을 들어왔습니다.
친구와 다퉜다는 말을 담임선생님한테서 들으시고는 그날 저를 불러서 온몸을 지근지근 밟았습니다.
머리에 똥만 차서는, 희한한 것들이랑 어울려 다니면서(제 친구들은 지극히 정상이었고 얌전했어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쪽팔리게 싸움박질을 하느냐 고 했습니다.
등긁개로 마구 때리다가, 발로 배를 걷어 차기도 하고, 머리를 세게 후려갈겨 휘청거리기도 했습니다.
끝끝내 성이 안 풀렸는지, 머리채를 잡고 질질 화장실로 끌고 가 변기통에 머리를 넣었어요.
우악스럽게 넣어서 변기통에 머리를 부딪혀(변기통이 세라믹재질이었어요. 그래서 더 아팠어요. 아직도 기억해요.)
얼얼했습니다. 나중엔 파랗게 노랗게 빨갛게 멍이 들었어요, 관자놀이랑 광대뼈에.
사실 우습게도 이때까지도 저는 남들은 다 이렇게 혼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날, 친구들이랑 정글짐에 앉아서 얘기할때까지도.
친구들이랑 놀러다니다가 한 친구가 늦게 들어가서 혼났던 얘기였나? 정확힌 무슨얘긴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엄마에게 혼난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친구들이 저마다 자기가 엄마한테 혼날땐
어떻게 혼나는지 엄마가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 얘기하는데,
다들 맞진 않고 옷 홀딱 벗겨서 쫓아내거나, 회초리를 들고서 발바닥을 때리거나, 엉덩이를 회초리로 맞거나.
그렇게 얘길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그냥 얘기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집에서 혼나는지.
분위기가 정말 삽시간에 얼어붙었어요.
왜 혼났는지 자세한 기억이 안나서 여기에 언급하지 않은 맞은 날도 친구들에게 얘기를 했는데,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정말 제가 태어나 생전 처음 보는 표정들을 짓더라구요 ㅎ....
'야 그렇게 혼난다고? 야 그럼 안 아파? 엄마가 그렇게 혼내?'
'어떻게 그렇게 혼나지 야 너네엄마 진짜 무섭다.... 한번도 그렇게 혼나는건 못들어봤는데...'
'야 엄마한테 얘기해 그러다가 죽으면 어떡해???'
그때 저는 바로 입을 다물어버렸습니다.
아, 이게 단단히 잘못된 일이구나. 깨달았어요.
그때 그 말을 꺼냈을때 친구들의 눈빛, 말투, 걱정들.
그게 한번에 다가와 꽂혔습니다.
아. 우리 엄마는 저런 사람이구나. 친구들이 말하는 그런 사람. 무서운 사람.
그 이후로, 어디가서 절대 엄마에게 어떻게 혼났는지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몸으로 맞는것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얻어맞는것까지 시작됐습니다.
10대시절. 한창 외모에 관심도 많고 고민도 많을 때잖아요.
2차성징도 다들 시작한 나이일테고, 몸에 급격한 변화도 찾아올거고. 변하는게 무섭기도 할거고.
그때 무엇보다 중요한게 같은 여자인 엄마와의 교감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우습게도 그런게 없었어요.
정말 없었어요. 엄마는 '외모에 관심 많은 10대인 저'를 비웃었습니다.
가령 거울을 보고 있으면
'야 조그만게 뭔 벌써부터 거울을 그렇게 들여다봐'
'어휴 에 똥만 차가지고'
'멋 부리는건 어디서 배워서. 미 어유.'
'니가 다방레지냐 하루종일 거울보게? 그럼 이뻐지니?'
'야. 거울 그렇게 봐도 안 이뻐지거든. 그만 봐라'
'공부나 하지 거울이나 쳐 보고 앉았네.'
등의 말을 서슴없이 했습니다. 빼먹은것도 있을수 있어요.
저게 다 제가 실제로 '엄마'에게 들은 말이에요.
믿어지시나요......ㅎㅎ.. 보통 딸한테 저렇게들 말 하나요?
저 어디가서 못생겼단 얘기 들은 적 없고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자랑이 아니라 엄마가 저런 얘기를 하는 게 저를 고의적으로 깎아내리고 비하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단
말씀을 드리려고 언급하는거에요.
다방레지. 미. 똥만 찬 년.
엄마가 딸한테 절대로 할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서도 안되는 말이라고 생각하구요..
그 말을 가감없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하루는 참다참다
'엄마 내 친구들도 다 이렇게 거울 보고 그래. 거울보는게 왜?'
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뭐였는지 아시나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친구들도 어디서 지같이 똥찬것들만 만났나보지'
외모에 대한 고민도 많고 엄마에게 묻고 싶은것도 많았던 저 때, 저는 철저하게 엄마로부터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처음 들을땐 콱콱 가슴에 와 박히더니 나중엔 무뎌져서 그게 심한 말인지 아닌지
분간도 잘 안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창 꿈 많고 외모에 관심 많던 10대 소녀가
엄마의 폭언과 비웃음에 노출되어 점점 소심하고 남의 눈치 많이 보고 나를 돌보지 않는
어둡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해갔어요.
친한 친구들 앞이 아니면 저는 그저 하릴없이 어두운 애일 뿐이었습니다.
역시나 육체적인 폭력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성적이 나오기 시작하는 중학교 때라서인지,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날아와 박혔어요.
성적이 엄마가 원하는대로 나오지 않으면 그날은 그냥 맞는 날이었습니다.
'미 돈 들여서 학원까지 쳐 보내줘놨더니 내내 똥만 차서 허영심이나 부리고 있고'
'허영심만 가득 차서는 지 꾸밀줄이나 알지 공부는 하지도 않네'
'공부나 쳐하지 나이도 어린년이 벌써부터 저렇게 년 행세해서 어쩌려고 저러지?'
'야 그따위로 할거면 밥 축내지말고 집구석에서 기어나가'
....
정말 엄마 말을 듣고 흘린 눈물, 받은 상처를 세자면 끝도 없습니다.
성적 좀 안나왔다고 저렇게 말하는게 정당화가 되나요?
차라리 왜이렇게 성적이 저조하냐. 공부좀 더 열심히 해라. 조금만 더 노력하자.
이렇게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거기다 제 성적은 중상위권은 되었고 크게 뒤쳐지는 성적도 아니었을 뿐더러,
제가 정말 공부 말고 하고싶은건 따로 있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순수 미술이든 만화든 어느쪽이든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결국 끊임없는 설득을 통해 고3때부터 입시미술을(늦죠..) 시작하고 미대에 진학하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쪽으로 용돈을 받아서 책이라도 사 모을라 치면,
매번 엄마가 성질 부리느라 집어던지고 찢어버려서 망가지는 책이 불쌍해서 그것도 선뜻 마음대로 못했어요.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들 중 몇개나 집어던져지고 찢기고 구겨졌었는지도 세기 힘듭니다.
늘 들어온 말들을 꼽자면 끝도 없어요
엄마가 딸에게 한 말들이.
똥찬년
허영심만 가득한년
년
미
한심한년
밥만 축내는 기생충같
더러운년
저건 도대체 누구 밑에서 났냐
누굴 닮아서 가 저렇게 나쁘냐
돌
한심한 똥통
발라당 까진 년
술집 년
엄마가 딸한테 한 말입니다. 저희 엄마가 저한테요.
저거 말고도 빠진 말들이 많지만 저것만 적어도 충분하다고 생각되네요, 얼마나 심한 말들이었는지.
한번은 제가 무슨 잘못을 했었는지 부엌에 꽂힌 칼을 들고 와서는 제 머리를 부서져라 밟으며
죽어! 죽어! 하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 정말 엄마가 미친 줄 알았어요.
울면서 싹싹 빌었습니다. 미안하다고 바닥에 계속해서 고개를 숙여서 사과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해서까지도 그 폭언은 끊이지 않았고 폭행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저지경이 될때까지 저희 아버지는 뭐 하셨냐구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떄리는건 보지 못했을 지언정, 저렇게 심한 폭언을 퍼붓는건 아빠도 옆에서 다 보고있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번도 엄마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어요. 담배 가지고 집 나가버리고,
한숨 푹푹 쉬면서 엄마 말 좀 잘 들어라.
아니.. 아빠. 내가 도대체 엄마한테 저정도로 맞고 폭언들을정도로 잘못한게 있었나요...
아빠한테 하루는 너무도 마음이 힘들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했습니다.
'아빠, 나 너무 힘들어. 엄마가 너무 무서운데 엄마랑 잘 지내고싶어.
엄마는 나한테 왜 그러는거야. 내 엄마잖아.. 나 엄마 딸이잖아. 그런데 왜 그래?
엄마가 나한테 말할때마다 상처받아서 힘들어. 때리는것도 무서워. 엄마 무서운거 싫어. 아빠가 좀 어떻게 해봐...'
그때 아빠가 저한테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인데 어쩌냐.'
ㅎㅎㅎㅎㅎㅎㅎ
지금 쓰면서도 우습네요.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동안도 손놓고 가만히 계셨는데 아빠가
크게 무언가를 바꾸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저를 안아주시면서, 손을 잡아주시면서
'상처 많이 받았구나. 아빠가 좀 더 적극적으로 엄마 말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우리 딸 많이 힘들었지'
이런 말이라도 해줬으면 싶었어요. 그게 큰 건가요... 나는 아빠 딸이고 아빠는 내 아빠인데.
그런데 아빠는 저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아빠는 그거 몇십년동안 참고 살았어...'
'아빠도 엄마가 가끔 이해 안될때 있어'
'그치만 넌 엄마 딸이잖아. 어쩌겠어 참고 살아야지'
'니가 조금만 엄마를 이해해라'
저런 폭언을 듣고도
저렇게 맞고도
엄마를
제가 이해하라고 하셨습니다. 이해하라고.. 여지껏 늘 이해하려고 애써왔는데 또 이해하라고..
얼마나 더 이해해야 하나.
그때 저는 아빠에게도 한줄기 희망조차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실망했어요. 포기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냥 엄마의 폭언과 폭행을 묵묵히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루라도 빨리 집에서 나가고싶다고 생각했어요.
더더욱 무서운 건, 우리 집이 기독교라는 점입니다.
엄마 아빠는 교회에 다니세요. 남동생도. 저는 잘 나가지 않습니다. 이유라면 짐작하실 수 있겠지만
'교회를 다니며 예수님에 대해 찬미하고 독실한 믿음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딸은 갖은 폭력과 폭언에 노출시키고 반성조차 하지 않으며 그것을 방관한다' 는 점이 너무도
치떨리게 싫고 모순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가서는 선량한 사람인 척 웃으며 누군가를 동정하고 가여워하고
사랑하고 아껴주고 그런 모습은 다 보이면서, 집에서 제게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도 딴판이니까요.
교회에서 제가 마치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고 착한 딸인것처럼 대할 때마다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리고 대학교에 진학하고 자취를 시작하면서, 집에서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정말로 뛸 듯이 기뻤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엄마나 아빠의 저에 대한 간섭은 끊이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묻고 싶어요.
도대체 내가 당신들의 소유물인가요. 나는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가요.
내 인격은 존중받을 수 없나요.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나한테 왜 그랬나요. 나한테 그리고 지금까지도 왜 이래요...
24살인 지금까지도 엄마는 제 머리모양, 화장, 옷차림을 엄마의 방식대로 강요하며
'다른사람들이 너를 뒤에서 뭐라고 수근대는지 아느냐'
'밤무대 뛰는년도 아니고 화장이 그게 뭐냐. 옷은 왜 그따위로 입느냐'
'업소 나가는 년도 아니고 도대체.'
24살인 제가, 엄마에게 저런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지금은 멀리 떨어져서 덜하지만, 정말로 죽고싶었던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다행히 혼자 멀리떨어져 직장생활을 하고, 제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많다 보니
자존감도 정말 눈부실만큼 높아지고 자긍심도 생겼어요.
위축되고 어둠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제 자신이 너무도 가여워
너는 너무 예뻐. 사랑받아 마땅해. 매력 있어. 너를 사랑해줄 사람은 많아. 너는 소중해.
제 자신에게 끊임없이 속삭여주고 상처를 어루만져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거짓말처럼 자신감도 되살아나고, 내 스스로가 예쁘다 생각하고 사랑스럽다 생각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데도 자신감이 붙고
예전의 저라고는 생각할수도 없을만큼 딴판이 되었어요.
누구를 만나도 자신있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사람들과도 원만하게 잘 지내고
밝은 성격이라고 칭찬도 많이 듣습니다. 옛날 얘기를 하면 아마 다들 기절해서 넘어지겠지만요.
그런 환경속에서도 이렇게 커준 제 자신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지금의 저는 저를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하지만, 집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할때마다 마음이 찢어지듯 아파요.
학대를 당하기만 하며 살았던 게 아니라 더 가슴이 아픕니다.
엄마가 저에게 뛰어나게 헌신적인 엄마였던건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를 때리고 폭언을 퍼붓지 않을때는 잘 해줄때도 있었고, 입히고 먹이고 키워주고
대학도 보내줬으니까요. 경제적인 지원도 어쨌든 해 줬고.
기본적인 의무는 저에게 다 했지만, 이제와 그런 것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태어나고싶어서 태어난 세상이 아니었잖아요...
'그래도 부모님이 너 낳아줬잖아. 키워줬잖아' 하면 도무지 할말이 없습니다.
낳아주고 키워줬으면 폭언과 폭력까지도 정당화가 되고 참아야 하나요.
저런식으로 폭언과 폭력을 듣고 제대로 된 사과를 받은적은 단언코 한번도 없습니다.
그냥 자기 기분 풀리면 갑자기 와서 말 걸고. 그게 풀린거라고 생각했나봅니다. 제 상처는 썩어 문드러지는데.
부모라면 자식에게 할만큼 해야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태어난 자식에게만 부모에 대한 부양의 책임과 효도의 책임이 돌아가야하는게 아니잖아요..
낳아줬으니 당연히 키워야 하는거고, 입혀야 하는거고, 먹여야 하는거고. 가르쳐야 하는거고.
세상 부모라면 그것들은 당연히 해야할 일이잖아요.
그런데 저에 대한, 그 훈육을 빙자한 학대와 폭언들은... 글쎄요.
지금도 부모님은 제게 무슨짓을 했는지 아마 평생 모르실겁니다.
저는 그래서 이 생각을 할때마다 너무도 머리가 아파요.
언젠가는 부모님이 아셔야 할 문젠데.. 풀어야 할 문젠데. 응어리를 없애야 하는데.
모르시게 하고서 평생 살기에는 제가 받은 상처가 너무도 큽니다.
한번이라도 좋으니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싶어요...
지금의 나는 나를 너무도 사랑하고 빛나는 내가 자랑스럽지만
과거의 나는 너무도 안쓰럽고 가엾습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 그때의 나를 안아주고싶어요.
달래면서 같이 울어주고 말해주고싶습니다.
니가 나쁜 게 아니야 괜찮아. 예뻐. 사랑스러워. 너는 소중해.
너를 많이 사랑해 줄 사람들이 나타날거야.....
정말 혹시나 제 엄마나 아빠처럼 폭력을 휘두르거나 혹은 방관하고 있는 집이 있다면
절대 그러지 마세요. 절대로.. 지금이라도 고치세요.
아이는, 저처럼 평생 마음의 상처로 남습니다.. 정말이에요..............
부모님과 쌓인 이 응어리를 풀려면,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하나요.
개선의 여지가 있을까요..
부모님도 아셨으면 좋겠는데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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