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윤 휴소 (董允 休昭)
(??? - 246년)
촉의 4상중 나머지 3명과 다르게 주로 황실 내부의 일을 담당하였으며 대쪽같은 강직한 성품을 가져 황제였던 유선에게도 직언을 서슴치 않아 유선이 동윤을 어려워했었고
촉이 망하는데 많은 일조를 하였던 환관 황호조차도 동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
243년 보국장군, 뒤이어 244년 시중수상서령까지 벼슬이 올라가 당시 대장군이었던 비의의 차관이 되나
246년에 세상을 떠났다.

비의 문위 (費禕 文偉)
(??? - 253년)
강직한 성품을 가진 동윤과 다르게 비의는 평소 성품이 호방하고 온화해 다른 사람들과 두루 친하였다.
(제갈량은 동윤과 비의와의 성격차이로 인한 충돌을 막기위헤 곽유지를 같이 중용하여 그 중간에 위치시켜 조율하게하였다.)
1) 대장군, 2) 녹상서사에 임명되고 장완이 죽은후 촉의 군사적, 정치적 2인자로 올랐으며
244년 위의 조상(曹爽)이 촉으로 쳐들어 왔을때 후방에서 지원 공격하여 큰 승리를 이끌어 냈으며 (일명 낙곡대전) 뒤이어 성향후와 익주자사에도 봉해진다.
251년 겨울 북쪽에 있는 한수에 주둔하였다가
252년 유선의 부름을 받아 대장군부를 개부(開府, 중국 한나라에서 삼공이상 지위를 가진자가 속관을 두는일인데 자신이 맡은 관직이나 부서를 설치하기 때문에 대장군부를 설치했다고 봐야한다.)하여 북벌의 의지를 보이는듯 하였으나
어처구니 없게도 253년 새해 맞이 행사 중 위에서 귀순한 곽순이라는 자가 술에 취한 비의를 암살하여 죽임을 당한다.
1) 대장군 : 중국 후한 시대에 무관으로서 최고 계급.
2) 녹상서사 : 상서의 최고 우두머리, 조정의 총수로서 모든 관리들을 관리하는 현대의 내각총리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제갈량, 장완, 비의, 강유 이들 모두 다른 관직과 함께 녹상서사를 겸하였다.

장완 공염 (蔣琬 公琰)
(??? - 246년)
제갈량 사후 익주자사, 대장군, 녹상서사에 임명되며 촉의 군사적, 정치적 2인자가 되었으며 차분한 성품으로 제갈량이 죽은 후 동요하지 않고 혼란스러웠던 촉의 정세를 바로 잡았고 다른 신하들도 장완을 믿고 복종하였다.
238년, 유선이 장완에게 조서를 내려 오와 협동하여 위를 칠 준비를 하라 명을 받았고 장완에게 그에 관련한 부서를 개설하도록 하였으며 이듬해에 대사마로 승진시킨다.
이에 장완은 제갈량의 북벌의 실패의 원인(육로를 통한 수송의 어려움)을 거울 삼아 한수와 면수로부터 배로 급류를 타고 위흥과 상용을 습격하려고 하였으나 평소의 지병으로 인해 지체되었다.
그러다가 244년 유선에게 상소를 올려 (당연히 오의 협공을 고려하고) 강유를 양주자사에 임명하여 강족과 호응해 북쪽으로 나아가게 하고 자신은 부현에서 육지 혹은 물길을 통해 후방에서 호응하려는 계책을 세우나
이마저도 장완의 병이 심해져 실행하지 못하고 246년에 세상을 떠난다.

제갈량 공명 (諸葛亮 孔明)
(181년 - 234년)
설명 생략
화양국지(華陽國志)에 이르길 촉나라 사람들은 제갈량, 장완, 비의, 동윤을
사상(四相, 4명의 재상)으로 삼고 사영(四英)이라고 칭했다.
- 촉서 동윤전 中 배송지의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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