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운동가의 후손과 민족반역자의 후손이 나란히 기념촬영
우당 이회영*의 손자 : 이종걸
* 조선 중기 문신 이항복의 후손으로, 1907년 일제의 고종 강제퇴위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헤이그특사 파견을 주도했고, 명동 일대에만 1만여평의 땅을 보유했던 그는 경술국치 이후 현재 가치로 약 600억에 전 재산을 처분-당시 급매로 내놓아 헐값에 처분했으나, 제대로 거래했다면 현재 시가 약 2조원의 재산-하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1932년 11월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65세의 나이로 사망한 독립운동가
(유명한 일화) 1910년 12월 가족, 일꾼 등 60여명의 일가족 전체가 만주로 망명하였다. 당시 압록강을 건너면서도 이회영은 나룻배의 사공에게 후한 돈을 지불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나라를 잃었으니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강을 건너 중국으로 망명을 올 것이요. 그때 행여 배삯이 없어 강을 못 건너는 사람들의 배삯을 미리 지불하니 그들도 모두 강을 건너 주시오”라고 부탁
천황에 대한 충성의 증표로 혈서를 쓴 만주군 장교이자 해방 이후 남로당에서 활동한 분의 자제 :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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