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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l조회 4095 출처
이 글은 10년 전 (2015/11/05) 게시물이에요







그는 거기에 잘 있다. 나는 여기에 잘 있다. 더 이상 우리가 아닌 우리 | 인스티즈


우리는 짧은 시간에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이야기들은흩어지지도 않고 조금씩 덩어리져 어느새 나를 이루는 일부가 되어있었다. 그 때 남몰래 가슴에 품었던 그 작은 씨앗이 아마도 서로를이해할 수 있는 근거쯤이 된 게 아닌가 싶다. 그저 공감을 구해야 했던 각자의 일상이 마침내 하나로 이지러져 끝내는 누구의 것인지도알 수 없게 되었던 그 해 겨울, 나는 너를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거기에 잘 있다. 나는 여기에 잘 있다. 더 이상 우리가 아닌 우리 | 인스티즈

 

아이러니하게도, ‘익숙해진다’ 라는 것은, 그만큼 ‘변해가고 있다’ 는 것을 의미한다. 지나간 우리의 시간은 그랬다. 조심스럽게 입술 위를 스쳐오는 가벼운 키스만으로도 지나치게 행복하기만 했던 너의 방, 침대 옆 작은 스탠드. 그 아래서 은은한 조명에 취해 있던 사진 속 우리 두 사람. 둘이서 손을 잡고 걸었던 번화가의 조용한 뒷길이라던가, 일이 끝나면 함께 주고받던 건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던 지금은 색이 바래버린 값 싼 도금 반지에도, 사랑- 이라는, 조금은 어렵고 조금은 거룩하기까지 한 감정이 너무도 생생히 묻어나와, 너의 옆에선 언제고 나는 가슴 한 구석이 간지러웠다

그는 거기에 잘 있다. 나는 여기에 잘 있다. 더 이상 우리가 아닌 우리 | 인스티즈

길거리의 연인을 보면, 네가 생각 나.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르겠어.극과 극의 두 갈래가 보인다.네가 바라는 상대의 기준은 정말 세련되고 멋있고 따뜻해야 할 것 같아서.사실 난, 길거리의 연인을 발견하지 않는 날에도, 그냥 길을 가다가도 네가 생각 나.좋은 노래를 들어도. 맘에 드는 예쁜 옷을 봐도. 백목련의 사진을 찍을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신발을 신을 때. 노래할 때. 말할 때.모두 네 생각이 나.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면서, 문득 떠오른 너의 생각을 즐기고 있어.네 노래를 듣고 네 목소리를 듣는 일, 그때의 느낌처럼.내가 지내는 일상과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내 모든 것의 기준은, 어쩌면,감동적인 너일지도 몰라.

그는 거기에 잘 있다. 나는 여기에 잘 있다. 더 이상 우리가 아닌 우리 | 인스티즈

오늘은 너와 밤을 지새우고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나. 네가 없는 동안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니었다.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너와 밤을 지새우고, 내일은 또 다시 눈물을 뚝뚝뚝. 너는 여기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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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소리로, 정말 많은 말들을 해줬는데. 다 기억은 못하지만. 그립다. 네 목소리, 나 정말 좋아했다. 그냥 버스 정류장에 멍하니 서있기만 해도, 어디선가 그냥 들려왔다.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친구들과 너는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했는지. 여자애들처럼 말이지. 수다스럽던 너와 네 친구들이었다. 사근사근했던가. 조곤조곤하지는 않았어도, 부드러웠던가. 간지러운 말이지만, 그래, 감미로웠던가. 노래하는 네 목소리가 좋았다. 천천히 흘러가는 냇물 같았다. 그 밑에 깔린 자갈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는 듯한 섬세한 목소리. 고급스러운 원두에서 만든 진한 커피. 네 목소리가 난 좋았다. 그 목소리가, 정말 많은 말들을 해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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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대로 움직일 사람이 아니란 걸 아니까, 더더욱 말을 못 하겠더라. 나는 그러지 말아달라고 말리고 싶었지만, 내 조언이 혹시나 네가 조금이라도 흔들어서 네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면 그 때 나는 어째야 하는가. 내 이런 걱정, 관심. 줄 수 있어서 기쁘긴 한데, 그도 알거라 생각하니 숨이 막힌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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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익숙한 뒷모습. 나는 지독히도 한 곳 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상대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인 빠른 걸음으로 발을 내딛는 상대를 따라, 힘 없는 걸음을 옮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어떤 의문만이, 가슴 속에서 메아리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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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혼자만의 싸움. 마라톤을 하듯, 쉴 새 없이 달리던 감정은, 어느새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어버렸다. 달리는 그리 길지 않은, 그러나 한 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이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여지껏 홀로 달렸던 길의 연장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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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곡예. 문득 내려다 본 아래에는, 위험으로부터 나를 품어줄 그물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깜깜한 절벽 뿐이다. 나는 그 곳에서, 홀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대로 걸음을 옮기면, 그대로 떨어질 것만 같다. 아래로, 아래로, 홀로 미궁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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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걸음을 옮겼을때, 그곳에는 익숙한 그림자가 있었다. 꿈에서라도 잡힐 듯, 멀어져만 가던 그 그림자. 온전한 네가 아닌, 그림자라도 붙잡고 싶어, 나는 닿지 않는 거리에 끝 없이 손을 뻗고, 또, 그 결코 좁혀지지 않는 우리의 거리에, 그저 주저 앉아 울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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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는데, 결국 그 말을 전하지 못하고 끊어져버린 전화는 두 번 다시 울리지를 않아요. 왜 나는 늘 후회 뿐이고,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 외에는 가질 수 없는 걸까. 용기 부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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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지겨우리 만큼 같은 외침 만을 반복하고 있는 심장에 두 손을 얹고, 나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었다. 이제는 지금, 같은 공간에서, 공유하고 있는 시간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하고 있어. 다정하게 오가는 말은 없어도, 우리가 같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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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라는게, 그 변화될 수 없는 일정한 틀에 스스로를 가두고 얼마나 사람을 짓누르는 것인지. 서랍을 열면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특별한 의미가 담긴 물건들에 나는 아직도 손을 멈칫하고. 거리를 걸을 때면 가끔씩 느껴지는 어떤 이질적인 공기에 나도 모르게 한껏 어깨를 움츠리고 말아. 아프고 싶어서, 되새기고 싶어서, 기억을 붙들고, 또, 그 추억들을 한껏 끌어안고서, 버리지도 못하는 게 아니야. 잊지 않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는 두려운 거지. 아름답던 순간들이 나에게서 지워져버린다는게. 네 기억들이, 그 순간들이 잊혀지는게 두려워서, 나는 아직도, 다시 오지 않을 그 순간들을 끌어안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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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다짐했던 목표가 무뎌져가고 있다. 스스로 끝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끝이라는 이름은 단지 미묘한 경계선 사이에만 놓여 있어, 나는 가시에 찔리는 일이 두려워 함부로 다가서지 못하고 늘 뒷걸음만 치고 있었다. 내가 선택하지 못하는 자유, 안녕이라는 이름. 힘겹게 나선 계단을 오르는 내게 끝은 너무나 멀다. 스스로를 바보같다며 비난하기엔, 이미 그것에 한없이 익숙해져서 이제는 나를 변호해야 할 차례. 그것이 용서가 되는 순간. 타고난 성격이 쿨하지 못해 스스로를 보듬어 안아주지 못하는 내가 타인에게 관대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늘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며 아픈 가슴과 무심한 얼굴로 철조망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는 내가 싫었다. 힘이 들더라. 딱히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주제에 너무나 지치더라. 그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긴 인생을 범위로 두고 지금을 바라보았을 때, 지금의 순간은 허무할 정도로 짧은데, 왜 나는 헛된 꿈을 헤매는 그 말에 지나치게 집착을 하고 있던 건지. 철없는 다짐의 반복 위로는 시간이 몇 번이나 산산조각 났다. 그 부서진 조각을 움켜쥐고 가슴을 헤집는 일 따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이제는 그렇게 생각해.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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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아닌 일들이 아주 가끔 못된 감기처럼 못내 가슴에 걸린다. 비가 오고, 새벽이고, 습관처럼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불현듯 알아차린다. 마음의 병. 말하자면 서로가 편의를 봐주고 있는 사이랄까. 무엇이든 진심을 가지고 대하기란 어렵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순간에 불과한 짧은 생각이든. 지나간 시간은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꽤 오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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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기를 즐겼던 날들이 있었지. 억지로 꽁꽁 동여맨 테이프를 뜯어내고 마침내 기억 속 낡은 상자의 문을 열면, 이제는 별다른 감상도 남아있지 않은 무심한 세월을 한결 가깝게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물결처럼 가슴이 일렁였었다. 속절 없이. 다만 벌써 오래 전 까마득히 스쳐지나간 기억이란 언제나 단조롭다. 너무도 평면적인 과거의 그 좁은 공간은 이렇다 할 색감 또한 간직하지 못한다. 과거, 오로지 같은 음계만을 그리는 재미 없는 오선지 위에서 그저 무기력 하기만 했던 나의 지난 날, 외로움 따위 조금도 알지 못한다며 스스로 의기양양하게 떠들어대던 그 때, 끝없이 고독을 느끼면서도 나는 정작 고독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 무엇보다 나 자신을 견뎌낼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뒷걸음을 쳤고 오히려 나의 발자국을 지워내지 못해 안달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입술은 이미 죽어버린 것이나 다름 없다. 나는 죽은 입술로 더듬더듬 그것이 우리의 이별임을 알렸다. 세상에는 너무도 흔한 풍경이었다. 그래, 나와, 또 너의, 그 특별할 것 없는 기억이라는 건 여전히도 무척이나 단조롭고 또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는 것처럼 이렇다 할 색감 또한 간직하지 못하지만, 벌어진 상처로부터 그대로 굳어져버린 피처럼 풀어내지 못한 채 절로 응고되어버린 나의 바람은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유독 추웠던 그 겨울, 그저 서로의 차가운 두 손을 감싸 쥐던 그 때, 손가락 끝으로 소리없이 나누던 그 비밀스러운 언어가 내게는 곧 살아가는 의미가 되었다. 인적이 드문 신사의 사이센 바코처럼 그 멋도 없는 상자에 너의 꿈과 나의 꿈을 나눠담았다. 그 상자 속에서, 너는 언제고 열일곱인 채로, 영원히 나의 아름다운 시드 비셔스로 남아주었다. 언젠가 홀로 추위를 견뎌야했던 두 손을 버릇처럼 허공 속에 내밀었을 때, 손바닥 위로는 자욱히 봄비가 내렸지. 너의 미소를 마주하던 순간 소리 없이 차오르던 카타르시스가 이제는 추억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잘 지내나요,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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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그만큼 많은 사람을 잃어야 했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큰 아픔을 남기고 내게서 떠나간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꼭 그만큼의 아픔을 주고 내가 그에게서 달아나야 했던 적도 있었다. 또, 지금은 그 빛이 바래고 바래어, 소리 없이 내 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 때마다 많이 울어야 했고, 그를 좋아하는 만큼 그를 미워해야 했고, 그를 미워하는 만큼, 그를 좋아하는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사랑했던 친구, 연인, 가족과도 같던 사람들, 이제는 흔적조차 남지 않은 빛바랜 기억들. 가끔씩은 그랬다. 시간의 한 모퉁이를 붙들고, 그래, 지금 이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고 싶다고.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못했다. 그랬다. 언제나 그랬다. 내 상처에는 아랑곳없이, 시간은 꾸준히 흘렀다.

……시간 속에 우리들은 인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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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는 걸 안다. 그저 하루하루 봄을 세고 있던 내게도 행복이란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이어서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만 있다면 사실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걸. 괜한 또 옛날 생각 나잖아. 때로는 그리워. 그 때의 고민과 한숨과 환희들이, 지금은 비록 아무것도 아닌게 되었지만 그래 나도 알아, 너 없이도 살아진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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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사랑이란 곧 잊혀진다고들 한다. 정말로 그랬다. 내게는 아직껏 단 하나뿐인 사람이라서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 길다면 긴 시간을 떠나온 지금까지도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그토록 괴롭기만 했었는데, 오늘도 하루만큼 지난 시간으로부터 멀어져왔다. 너 없이도 살아진다는 걸 알았고 네가 아니어도 다른 이를 가슴에 품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사랑이 미움이 되고 그것이 다시 그리움이 되는 것도 결국은 이별 앞에 다 부질없음을 또 한 번 깨닫는다.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후회가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어도 미련만은 남기지 않기로 했던 내 지난날들과 그 시간 속의 내게 어쩐 일인지 자꾸만 미련이 남아서였다. 있을 때 잘하고 싶다. 더 이상 등가교환식의 애정을 바라지도 않을 거고 괜한 자존심을 재지도 않을 거고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처럼 상대로 하여금 조금은 안도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거다. 앞으로의 내게도 새로운 사랑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리고 또 이별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된다면, 그래도 할 만큼 했다고, 이별에 슬퍼도 내가 준 사랑에만은 부끄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기를, 그렇게 빌었다. 이제는 영 남이 쓴 것만 같은 글 속에, 사실은 유독 뭉클해지는 가슴을 끌어안고 내가 직접 썼던 문장이 있었다.

「내게서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던 오스카는 내가 붙들 수도 없이 아주 조금씩 흩어져가고 있었고, 우리의 인연도 언젠가는 끝이 날 일만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 우연처럼 너를 만나 일생을 걸 각오를 했듯이 우연의 이름을 가장한 이별 역시도 예고가 없을 것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영원함’이라는 가치는 단지 세상에 없는 것을 인간이 억지로 만들어낸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것이겠지. 오늘 내가 가진 기회를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것처럼 여기는 것도 그저 어수룩한 짓이라고는 말 못 해. 어쩌면 가장 현명한 거니까. 좋아해. 사랑해. 잘할게. 내 모든 걸 다 줄게. 후회 없도록.」

이제는 그 때처럼 그저 순수하게 나 아닌 남을 사랑할 수도 없을 테고 섣불리 영원함을 믿을 정도로 어리지도 않지만, 어제가 있어 오늘이 있고 마찬가지로 두 번 다시 누군가를 좋아할 수 없을 것이라 몇 번이고 무너졌던 내 헤진 가슴도 그 때가 있음으로써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허나 언제고 사심 없이 깨끗이 웃어주는 지금의 내 사람을 마주하고 있으면 아무런 교차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정표현에도 서툴고 그저 무뚝뚝하기만 했던 과거의 그 사람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내게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는 것처럼 구는 지금의 애인과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고 덕분에 행복하다 느끼면서도 아직껏 그 때를 털어내지 못했음을 안다. 과거, 내가 사랑했던 단 한 명의 사람은 감히 첫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전부 그랬다. 첫사랑, 너무도 진부하지만 지나치게 가슴이 설레어버리는 그 이름. ‘첫 번째’의 의미를 품은 모든 것들은 지나치도록 애틋한 감정을 간직하고 있다. 추억이라면 용서 받을 수 있는 기분이다. 마땅히 그리워해야 할 대상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니까. 그는 내게 ‘다시’ 시작되는 것이 아닌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의 처음 내딛은 발과 다름없는 마냥 서툰 ‘첫’ 사람이었다.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저 처음이라서. 너무나 긴 시간을 허망하게 보내고 나서야 알겠다. 과거를 상실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삶이라면, 과거의 기억은 단지 극복하고 치유해야 할 대상에 불과하겠지만 사사로운 추억들마저 전부 고갈되어버릴 정도로 인생은 잔인하지 않다는 걸. 그래, 너는 나의 등불이었고, 동반해오는 미소는 추억의 그림자다. 줄곧 다음 세상에서라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과거의 이름 앞에 네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그걸로 좋아, 라니 웃기지만, 조금은 불행해져도 좋을 텐데 그건 또 마음 아파서 싫으니까. 내가 없는 곳에서라도 차라리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에게 네가 그렇듯이 너에게 나도 꼭 이만큼의 의미를 갖고 있어 사사로운 것에 한 번쯤 나를 돌이켜 생각해준다면 그걸로 족하다. 나도 그렇게 널 가슴에 묻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잘할게. 너보다 더 사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노력은 해볼게. 나 너를 보내고 조금은 어른이 되었을까. 평생 어린 아이인 채로 네 곁에 살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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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비누냄새가 섞여있어 좋아했던 샤넬의 향수를 뿌리고, 오늘은 평소보다 가볍게 화장을 했다. 특별할 것도 없이 비싸기만 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의 6천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어제 술에 취해 결국 스스로를 못 이기고 비싸다고 욕을 하면서도 사 버린 담배를 3개비 정도 피웠어. 그리고는 평소 좋아하던 영화를 떠올렸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다가 괜히 무료해져서 가방 속에 넣고 다니던 책을 펼쳤지. 어젠가 엊그젠가는 비가 내렸는데 오늘은 비도 내리지 않았어. 좋아하지도 않는 프로이트의 저서를 몇 페이지인가 읽다가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았던거 같아. 그리고 이어폰 속에서 우리가 처음 같이 공연을 보러갔던 가수가 계속 노래하고 있었어. 슬픈 일들도 좋은 추억도 이 눈물과 함께 담아 날려버리고 이제는 나도 나를 찾아 떠나가겠어. 이제는 너를 지우려고 해.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믿는 척 이해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있으면 회현에서 한 번, 명동에서 한 번, 동대문에서 혜화에서 문이 열리고 닫혔어. 그 땐 그랬어. 그리고 지금 또한 그래. 랜덤으로 재생시켜둔 MP3 플레이어 에서는 어느새 때지난 유행가가 울려나왔고 나는 그 식상하기 짝이 없는 가사에 아직도 남몰래 울곤해. 네가 좋아했던 옷, 신발, 향수, 화장법, 아, 미안해, 지하철이 막혀서 늦어버렸어, 뻔뻔한 농담을 하며 울상을 지으면 그저 피식 웃던 네 얼굴. 네가 좋아했던 영화, 음악, 책, 몇 없는 공통의 관심사. 우리가 처음 만났던 카페, 그리고 처음 데이트를 했고, 헤어졌던 사직공원 앞 놀이터 벤치. 사직공원, 앞, 놀이터, 벤. 치. 오늘 서울 날씨는 그냥 그저 그랬어. 겨울이 다가와. 우리가 좋아했던 그 계절이 다가와. 겨울이 되면 유독 네 생각이 많이 나. 고작 1년 째지만, 그냥 앞으로도 계속 그럴거 같아. 기억나? 우리가 헤어졌던 날. 그 날 눈이 내렸잖아. 나 네게 이별을 건네 받곤 그냥 새하얀 빛으로 뒤덮인 거리를 목적도 없이 걸었어. 이유 같은 건 없었어. 마치 신의 장난처럼 처음부터 삶의 길에 정해진 목적 따위는 없다듯 숨을 내쉴 때 마다 내뿜어지는 입김은 찬 겨울의 바람에 금새 흩어지고 말더라. 걸음은 생각보다 가벼웠어. 가뿐하게 옮기는 걸음의 끝마다 또 한 번의 찬 바람이 이고, 습관처럼 내뱉고 마는 것은 그저 한숨과 네 이름뿐이었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가슴이 먹먹해져서 그제서야 나는 버스에서 펑펑 울었어. 그리고 한 동안은 간절한 내 기분이 네게 닿아서 또 인연의 끈이 주어진다면 좋겠다 생각했어. 다시금 욱신거리며 통증을 호소하는 가슴에 손을 얹고, 너를, 그토록 사랑했던 너를 바래보아도, 그것이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눈은 계속 내렸어. 허망한 미련까지도, 전부 집어삼키려는 듯이. 오늘 서울 날씨는 나쁘지 않았어. 그런데 아직 내 맘에 안개가 자욱해. 누군가가 조금만 멀리서 손을 흔들면 알아보지도 못할 것 같이. 너는 어때? 질문이 우습나? 네가 잘 지낸다고 해도, 못 지낸다고 해도 내가 해 줄 수 있는게 딱히 없는데 말이야. 아, 그리고 이건 전혀 상관 없는 얘긴데 아직도 난 사파이어보다는 루비야. 요새는 얼그레이 대신 다즐링이 더 좋아. 아까부터 혀가 녹아버릴 정도로 달디 단 초코케이크가 먹고 싶은데 언제부터 단 걸 좋아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 인간은 그로테스크한 모든 것들에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고 고통의 박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네가 그랬잖아. 그리고 비극이야말로 인간카타르시스의 정수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면서. 잠시 고민 좀 해볼까 했더니 내릴 문은 오른쪽이래. 오늘은 날씨가 그리 나쁘지 않아 다행이야, 그렇지. 다 끝났어. 사요나라, 제이. 사요나라, 나의 오스카. 미미는 이제 아리스토텔레서 버리고 라캉이랑 연애하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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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우리가 꿈 꾸던 그 풍경이 지금 내가 가장 소망하고 있는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기만 한데, 한 발 물러섰다면 조금은 현실과 가까워질 수도 있었던 그 얘기가 이제는 너무도 먼 곳에, 정말 ‘꿈 같은’ 풍경이 되어버렸어. 그만 코끝이 간지러워질 정도로 달기만 한 바람이었지. 분명 낯설어야 할 이곳이 어젯밤 꿈에 만난 것처럼 익숙하기만 해. 한 번도 마음에서 놓아본 일이 없으니까. 가슴 한 켠은 아직도 그 때 그곳에 머문 채로, 늘 그랬으니까. 하지만 후회하진 않아. 세상이 우리를 바꿨을 뿐이야.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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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언젠가 끝이나지만 사랑해서 기뻤던 순간은 그보다 더 오래 빛난다. 슬픔보다 기쁨의 유효기간이 더 길다. 그러니 세상에 우리 둘 밖에 없었던것 같던, 서로의 존재만으로 우주를 꽉 채울 것 같았던, 그 빛나는 순간에게 난 안녕이라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애인과 이별했다고 사진을 찢고 불태우고 흔적을 없애려하는걸 우습게 생각한다. 다 소중한 인생의 한 부분인데.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이 그래도 나의 열정이고, 그래도 나의 퍼스넬리티였고, 중요한 한 부분인데. 세상은 만만치 않다, 아주 어릴적부터 깨닫은 것이다. 그래서 난 의외로 삶이 힘들다고 울지는 않는다. 그런다고 달라질 것이 없으니. 하지만 그 때의 사랑과 열정은 소중했지 않은가. 그 사람을 잃고 울던 밤은 이제 희미하지만 사랑으로 빛나던 그 시간은 내 안에 오래 남았다. 그 기억이 어쩌면 앞으로 쭉 힘겨울지 모르는 시간을 위로해 주겠지. 이별은 아무리 해도 훈련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지난 날, 감히 행복했다 말할 수 있던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미움과 자책은 차곡차곡 개어 마음의 구석진 서랍에 집어넣게 되었다. 그렇게 몇개의 반짝이던 순간을 또렷히 되새김하며, 아마 이별은 이렇게 하는거겠지. 세상의 모든 이별은아픔을 남긴다.

 

과거의 나와, 혹은 현재의 나와 비슷한 상황의 게녀들이 있다면 힘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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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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