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과도 인정해야 하지만 일부에선 '독재자'라고 평가한다.">
내 질문에 간혹 웃던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이 하얘졌다. 잠시 머뭇거린 뒤 나온 말은 이랬다.
"독재라는 말도 사전적인 의미로 적용하면 맞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쾌재를 불렀다. '이건 제목 감이다!' 물론 겉으로 티를 내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 아버지의 강권통치를 인정하는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으로 정치권에 '무임승차'했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도 "맞는 이야기"라고 했다. 얼씨구! 2001년 2월 15일자톱기사 제목은 이랬다.
"아버지는 사전적 의미론 독재자... 난 그 후광에 '무임승차'했지만">
(중략)
그가 불 지르고 싶은 두 글자 '독재'
현대판 분서갱유.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독재를 기록한 교과서를 불태울 기세다. 하지만 그도 아버지를 독재자로 불렀던 시절이 있었다. 와의 인터뷰에서다. 국회의원회관 545호실에 앉아있던 그는 당시 정치 입문 4년 차였다. 무려 2시간 동안 인터뷰했지만 '각'이 없거나 추상적인 답변뿐이어서 조바심을 냈는데 막판에 대어가 걸렸다.
이날 그의 마지막 말만큼 인상 깊었던 것은 사무실 벽에 걸린 사진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가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었다. 간절하게 닮고 싶다는 뜻이다. 박정희 피가 그의 DNA에 흐르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그는 아버지의 "강권통치는 인정하지만 경제성장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평가했다. 가장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으로 아버지를 꼽았다.
14년이 흐른 뒤 그는 아버지가 있던 청와대에 앉아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다. 다시 권력을 잡았지만 인터뷰에서 어렵사리 인정했던 '독재자 박정희'. 그게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치욕스러웠을 것이다. 아버지 이름 앞에 대못처럼 박혀있는 역사적 평가를 우리 교과서에서 뽑아내려고 그는 기어코 전쟁을 벌였다. 역사 교과서 위에 '좌경용공', 붉은 페인트 통을 쏟아 부었다.
(중략)
반동의 터널, 시작인가 끝인가?
역사를 박정희 시대로 되돌리려는 시도. 이게 그 기나긴 반동의 터널, 시작인지 아니면 끝인지 알 수 없다. 후대 사가들이 지금 시기를 어떻게 기록할지도 아직 알 수 없다. 청와대 권력과 시민 권력이 맞붙고 있다. 역사를 쓰고 있다. 반동의 역사를 막으려는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으려면, 깨어있는 시민 편에 선 는 살아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아래 버튼을 눌러주기 바란다. 부자 매체처럼 자전거를 줄 돈은 없지만, 시민들의 건강한 목소리를 끝까지 지킬 수 있다. 오마이뉴스만의 힘이 아니라 10만인클럽 회원들의 힘으로. 박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포기하고 14년 전에 에게 했듯이 국민들에게 진정으로 이렇게 말할 때까지.
"아버지는 사전적 의미로 독재자였다.">
자세한 내용 http://www.ohmynews.com/NWS_Web/Tenman/report_last.aspx?CNTN_CD=A0002155701
내 질문에 간혹 웃던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이 하얘졌다. 잠시 머뭇거린 뒤 나온 말은 이랬다.
"독재라는 말도 사전적인 의미로 적용하면 맞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쾌재를 불렀다. '이건 제목 감이다!' 물론 겉으로 티를 내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 아버지의 강권통치를 인정하는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으로 정치권에 '무임승차'했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도 "맞는 이야기"라고 했다. 얼씨구! 2001년 2월 15일자톱기사 제목은 이랬다.
"아버지는 사전적 의미론 독재자... 난 그 후광에 '무임승차'했지만">
(중략)
그가 불 지르고 싶은 두 글자 '독재'
현대판 분서갱유.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독재를 기록한 교과서를 불태울 기세다. 하지만 그도 아버지를 독재자로 불렀던 시절이 있었다. 와의 인터뷰에서다. 국회의원회관 545호실에 앉아있던 그는 당시 정치 입문 4년 차였다. 무려 2시간 동안 인터뷰했지만 '각'이 없거나 추상적인 답변뿐이어서 조바심을 냈는데 막판에 대어가 걸렸다.
이날 그의 마지막 말만큼 인상 깊었던 것은 사무실 벽에 걸린 사진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가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었다. 간절하게 닮고 싶다는 뜻이다. 박정희 피가 그의 DNA에 흐르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그는 아버지의 "강권통치는 인정하지만 경제성장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평가했다. 가장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으로 아버지를 꼽았다.
14년이 흐른 뒤 그는 아버지가 있던 청와대에 앉아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다. 다시 권력을 잡았지만 인터뷰에서 어렵사리 인정했던 '독재자 박정희'. 그게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치욕스러웠을 것이다. 아버지 이름 앞에 대못처럼 박혀있는 역사적 평가를 우리 교과서에서 뽑아내려고 그는 기어코 전쟁을 벌였다. 역사 교과서 위에 '좌경용공', 붉은 페인트 통을 쏟아 부었다.
(중략)
반동의 터널, 시작인가 끝인가?
역사를 박정희 시대로 되돌리려는 시도. 이게 그 기나긴 반동의 터널, 시작인지 아니면 끝인지 알 수 없다. 후대 사가들이 지금 시기를 어떻게 기록할지도 아직 알 수 없다. 청와대 권력과 시민 권력이 맞붙고 있다. 역사를 쓰고 있다. 반동의 역사를 막으려는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으려면, 깨어있는 시민 편에 선 는 살아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아래 버튼을 눌러주기 바란다. 부자 매체처럼 자전거를 줄 돈은 없지만, 시민들의 건강한 목소리를 끝까지 지킬 수 있다. 오마이뉴스만의 힘이 아니라 10만인클럽 회원들의 힘으로. 박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포기하고 14년 전에 에게 했듯이 국민들에게 진정으로 이렇게 말할 때까지.
"아버지는 사전적 의미로 독재자였다.">
자세한 내용 http://www.ohmynews.com/NWS_Web/Tenman/report_last.aspx?CNTN_CD=A0002155701

인스티즈앱
왕사남 이 후기가 ㄹㅇ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