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https://instiz.net/pt/3384822주소 복사
   
 
로고
인기글
공지가 닫혀있어요 l 열기
필터링
전체 게시물 알림
유머·감동 이슈·소식 정보·기타 고르기·테스트 팁·추천 할인·특가 뮤직(국내)
이슈 오싹공포
혹시 미국에서 여행 중이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l조회 5131 출처
이 글은 10년 전 (2015/11/18) 게시물이에요

 http://www.buzzfeed.com/jpbrammer/when-my-anti-gay-bully-hit-me-up-on-a-gay-dating-app#.obB233aNy

번역: 여성시대 떠나고 싶어


어린 시절 날 왕따시켰던 아이가 온라인 데이팅 어플에서 내게 말을 걸었다 | 인스티즈

오클라호마의 시골 마을에 있게 된 게이 남자는 무얼 할까?

동성애자였던 내 인생 내내, 나는 단 한 번도 고향에서 누군가와 엮인 일이 없다. 우리 마을은 동성애에 굉장히 불친절한 보수적인 마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고향을 찾아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난 고향을 찾는 것을 좋아한다. 워싱턴 D.C.에서 벗어나 야생 속에서 물소를 구경하는 것과, 부모님 집의 헛간에 있는 당나귀를 보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높은 빌딩과 굴뚝 하나 안 보이는 탁트인 하늘을 좋아한다.

하지만, 젠장. 고향에서 남자를 찾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산이 보이고 드넓은 노란 평야의 경치가 끝내주는 나의 옛 방에 갈 때마다 나는 누군가와 실제로 만나지 않고 어떻게든 나의 성욕을 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해소해 줄 최고의 어플은 스크러프(Scruff)였다.

스크러프는 악명 높은 그라인더(번역한 여시의 역주: Grindr 유명한 게이 온라인 데이팅 어플인데 데이트보다는 원나잇으로 유명)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첫째로, 스크러프가 훨씬 부담이 없다. 스크러프에서는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짖을' 수 있는데,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딱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거리를 기반으로 둔 다른 데이팅 어플과는 달리 스크러프에서는 거리에 상관 없이 전 세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있는 곳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남자는 나와 13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원나잇을 원하는 53세 백인 남성"이었다. 그의 프로필 사진은 박제된 가젤 머리 옆에 사람 머리가 걸려 있는 끔찍한 사진이었다.

..내 타입 아니다.

딱히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러 갈 생각이 없으면 나는 보통 브라질의 남자들과 채팅을 한다. 브라질 남자들은 내게 포르투갈어로 다른 곳에선 배울 수 없는 못된 말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번엔 조금 이상한 일이 생겼다. 나와 1마일 정도 떨어져 있다는, 사진을 걸어두지 않은 빈 프로필이 내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한밤중이었던 만큼 나는 창문의 블라인드를 올려 들판 너머에 혹시 불빛을 볼 수 있는지 살펴 보았다. 이 시골 동네에선 안심하기엔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혹시 집 안의 사람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안녕" 빈 프로필이 말을 걸었다.

누굴까 궁금해하며 대답했다. "안녕?"

몇 분이 흘렀다.

"너 나 아는 듯 ㅋㅋㅋ"

상황이 흥미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보았다. 이 근처에 내가 아는 게이는 고등학교 때 내 단짝이었던 친구 한 명인데, 그 친구는 데이팅 어플에 굉장히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는 신나하며 이 빈 프로필이 나의 옛 선생님일 거라 확신했다. 바로 그 선생님일 거야. 분명해!

"우리 같이 학교 다녔잖아" 빈 프로필이 이어 말했다.

"그랬어? 너 누구야?" 나는 긴장한 채로 대답했다.

"너 아마 나 싫어할걸... 하하. 내가 좀 못되게 굴었거든."

익숙한 감정이 내 배를 채워 왔다. 공포였다.

그가 어떤 학교를 말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 근처에 학교는 딱 하나뿐이다. 게이라는 이유로 다니는 내내 잔인하게 괴롭힘을 당했던 나의 옛 중학교. 졸업을 하고 어른이 된 이후에도 내 몸은 여전히 그 학교를 지나갈 때마다 어김없이 반응을 보였다. 그 근처를 지날 때면 손이 떨리고 배 속이 꼬여온다. 온 몸이 위험하단 신호를 보내온다.

날 괴롭혔던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몇몇 아이들이 있었다. 따라서 이 빈 프로필이 누군지 금방 알아내긴 어려웠다. 나는 머릿속으로 정신없이 이름과 얼굴들을 떠올렸다.

"누구?" 다시 물었다.

그는 사진 하나를 보냈다.

나는 바로 그를 알아봤다. 날 심하게 괴롭혔던 주요인물 중 한 명은 아니었다. 그건 다행이었다. 하지만 내 인생 최악의 시절을 만들었던 주요인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내가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하는 얼굴 중 하나였다.

난 아직까지도 이 사람에 대한 악몽을 꾼다. 다시 중학생이 되는 꿈. 악몽 속 나의 미션은 사물함 뒤에 숨어가며 화장실까지 눈에 띄지 않고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 매번 눈에 띈다. 그 때마다 괴물에게 붙잡힌 기분이다. 나는 땀에 젖어 일어나고, 쿵쾅대는 심장에 손을 갖다댄다.

아무렇지도 않게 날 괴롭히는 것에 동참했던 그의 모습이 싫었던 것 같다. 누군가 날 "호모새끼"라고 부르면 앵무새처럼 따라했던 그의 모습이, 그들의 편을 드는 모습이, 나를 이용해 그들 사이의 우정을 결속시키며 소속감을 느끼던 모습이 싫었다.

그의 모습은 내게 일어난 일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는 방관하며 괴롭힘을 멈춰주지 않은 사람 중 하나다. 나를 도와줬을 수 있었을 사람 중 하나다.

나는 몇 년간 그의 목소리를 어깨에 지고 살았다. 그는 모르겠지만, 그는 내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언쟁이나 비판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커갔다. 누군가 내 의견에 반대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얼굴 속에서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렸을 적 괴롭힘을 받던 기분을 다시 느꼈다. 그때마다 나는 방어막을 굳게 치고 거세게 사람들을 내쳤다.

그럼 사람들은 내게 "아이고, 진정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난 더욱 화가 났다. 난 항상 화가 나 있었다. 어떻게 화를 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방어막을 거두면 누군가가 또 나를 해칠 텐데. 나는 마치 궁지에 몰린 동물 같았다. 내 몸은 항상 내게 소리친다. 공격해! 공격해! 공격해!

"아" 마침내 나는 그 사진에 대답한다. "그래. 나 너 기억해."

공포심이 가라앉자 부끄러움이 밀려 들어왔다.

예전에 내가 살던 아파트 앞엔 이상한 모양으로 잔뜩 휘어진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나무 주변에 방해물이 있어 나무가 똑바로 자라지 못하고 그 주변을 감으며 자라서 그렇다고 했다. 그 방해물은 나중에 치워졌지만 여전히 나무는 휜 모양으로 자랐다. 내가 바로 그 나무였다. 이상한 모양의 다 큰 나무. 방해물이 없어지고 난 뒤에도 여전히 휘어 있는 나무. 이 경험은 날 바꿔 놓았다.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 나무를 나 자신에게 비유하는 것은 꽤나 그럴 듯해 보였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되도록 내버려 뒀을까? 나는 왜 그가 내게 이렇게나 큰 영향을 끼치게 내버려 둔 걸까?

"화났어?" 프로필이 내게 묻는다.

"응" 난 대답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내게 한 짓이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아니 ㅋㅋㅋ 그래도 그때 나 진짜 나쁜놈이었지."

이게 전부였다. 내가 이 사람을 기억하고, 또 그 기억을 짊어지고 견디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이 사람은 나에 대해 단 한번도 생각한 적 없었겠지.

좀 더 괜찮은 나무 비유가 머리에 떠올랐다. '찍은 도끼는 잊지만 찍힌 나무는 기억한다.'

난 잠시 산책을 해야 했다. 오클라호마 시골이 산책에는 정말 좋다. 특히 상쾌하고 맑은 가을 밤 공기 속에서는 더더욱. 나는 얼굴을 손에 묻고 생각을 정리하려 자갈길을 걸었다.

산책 끝에 진정이 된 나는 예상치 못했던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일차원적인 악당에 불과하지는 않았다. 이제껏 그도 결국 옷장 속에 숨어있지 않았는가.(역주: 옷장 속에 숨어있다=정체성을 숨기고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는 뜻) 꼭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물론 그는 나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도 피해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자란 마을에서 게이로 자란다는 것은 정말 최악이다. 사람 취급도 못 받으니까.

나는 운 좋게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시는 좋은 부모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못했다.

아이들이 날 밀치거나 내 책을 뺏거나 내게 욕을 했을 때, 자기는 나와 같은 처지가 아니라는 것에 속으로 얼마나 안도를 했을까.

용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해는 한다.

우리 둘 다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남자다움을 증명하거나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으니까. 그도 두려웠겠지. 불행했을 것이다. 나는 그의 고통이 어땠을지 가늠할 수 있다.

당시엔 몰랐지만 결국 그와 나는 같은 폭력의 굴레 속의 피해자였다. 사람을 피해자로도 악당으로도 만드는 영원히 지속되는 폭력의 굴레. 그는 스스로를 미워했다. 그는 내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나를 미워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의 원인을 캐다 보면 결국 그 뿌리는 나나 그 아이 훨씬 이상의 것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날 주눅들게 만드는 그것. 입을 옷을 고를 때마다 너무 여성스러운가 고민하게 만드는 그것. 나의 몇몇 특징을 싫어하게 만드는 그것.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남자답게' 행동하라 배웠다. '남자다움'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평생이 걸렸다. 사실 난 아직까지도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난 아직도 내재된 혐오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게 바로 잔인한 현실이다.

하지만 '남자다움'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동안 나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만큼의 자유로움을 얻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서 벗어나 진정한 내가 될 수 있었다. 나 자신의 모습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괴롭혔던 아이들마저도 말이다.

이런 생각에 곰곰이 빠져있는데 메시지가 하나 또 왔다.

"놀래?" 그가 물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생각지도 못했던 악몽이었다. 이 일을 완전히 잊는데 몇 주는 걸릴 것이다. 날 트라우마에 빠지게 한 사람과 '놀다니'.

"아니." 나는 말했다. "잘 살아라."

진심이었다.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이런 글은 어떠세요?

전체 HOT댓글없는글
의사가 말하는 고기 먹을 때 권장 사항
23:23 l 조회 331
커피맛의 9할을 차지하는 거
23:11 l 조회 1576 l 추천 1
55년생 할아버지의 리즈 시절
23:06 l 조회 970 l 추천 1
연출 기획 편집 모두 본인이 한 아이돌 직장인 ASMR
22:57 l 조회 304
새해 덕담에 반응하는 울 엄빠 차이.jpg
22:57 l 조회 1207
보람찬 주말 계획
22:55 l 조회 315
베트남 직원이 근무 중 자꾸 스마트폰을 봐요1
22:51 l 조회 2523
만들다 실수한 볶음밥을 내준 식당
22:47 l 조회 5296
차은우라면 여자들이 1000번째 아내라도 될 거라 할거 같다
22:45 l 조회 525
삶이 야구고 야구가 삶인 남돌 ⚾️
22:37 l 조회 84
고기 샌드위치
22:28 l 조회 812
뭔가 타기 고민되는 버스
22:27 l 조회 573
사직서까지 냈는데
22:19 l 조회 1365
좁은 집이라 고양이 영역이 걱정된다구?
22:17 l 조회 3942 l 추천 1
무조건 쟤보단 예쁘게 해주세요
22:16 l 조회 2752
화났을 때 쓰는 머리핀.JPG2
22:14 l 조회 3915
오냥오
22:11 l 조회 63
문자로 온 오징어게임
22:09 l 조회 411
10억보다 가치가 있는건?
22:09 l 조회 308
25년전 에버랜드 티켓을 발견한 사람
22:06 l 조회 7139


12345678910다음
이슈
일상
연예
드영배
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