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미 완결난 작품의 주관적인 추측과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 새로운 견해가 생겨나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원작자 다카하시 루미코의 실제 의도와는 무관합니다.
또한 이 작품에 대한 인물분석은 모두 상대적인 평가입니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접하고 싶은 분들은 이 점을 숙지해주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소원이라고? 그래… 내가 원했던 건 오직 금강의 마음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저 세상에 가도 금강과 함께할 수는 없을 것 같구나.”/죽기 직전 나라쿠의 독백
오니구모; 불완전한 악(惡), 마음에 균열이 생기다.
나라쿠가 완전한 악(惡)을 은유했던 것에 반해 오니구모는 불완전한 악(惡)을 은유한다. 오니구모는 선도 악도 아닌 <이누야샤>의 세계관에 속한 평범한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키쿄우와 나라쿠가 <이누야샤>의 스토리텔링을 위해 의무적으로 선과 악의 위치에 선 것과 달리 그에게는 어떤 페르소나도 작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선과 악 또한 그에게 모두 절대적으로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속성을 머금은 오니구모의 악하고 약한 내면은 키쿄우의 지고지순한 보살핌(선의 의지)에 의해 서서히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악을 비집고 들어오는 키쿄우를 애써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나라쿠보다 더 솔직한 마음으로 키쿄우를 욕망한다. 그것을 꿈꾸는 수단이 그 어떤 더러운 짓일지라도 그에게는 키쿄우만을 손에 넣으면 되는 것이다.
죽음을 품고 태어난 나라쿠; 가련한 악(惡)
요괴들이 인간의 혼을 먹어치워 만들어낸 집합체인 나라쿠는 하나의 완전한 존재로 설명할 수 없는 캐릭터다. 나라쿠는 <이누야샤>의 세계관 속에 등장하는 그 어떤 인물보다 복잡한 메타포를 품고 있다. 그에 맞게 캐릭터 자체도 작 중 내내 심화된 내면 안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그것은 나라쿠라는 캐릭터가 가진 모종의 운명이다.
요괴들은 오니구모를 흡수하자마자 그를 깊고 어두운 곳에 가둬둔다. 나라쿠의 내면에는 오니구모의 염원이 그대로 잔존하지만 그의 의식은 집합된 요괴들의 그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어난 나라쿠가 키쿄우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흠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오니구모의 타는 듯한 질투심은 나라쿠의 절대적 악(惡)과 만나 금강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오니구모는 선(善)을 얻기 위해서 완전한 악(惡)으로 변했다. 비록 그 변화를 오니구모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가 키쿄우를 얻고자 선택한 행동은 가장 최악의 형태로 그녀와 멀어지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나라쿠의 그러한 탄생배경은 그에게 악(惡)의 메타포를 짊어지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라는 사혼의 구슬의 속성과 일치하는 정체성을 가진 반요라는 운명에서 태어났어도 나라쿠는 그 핸디캡에 그다지 구애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여러 가지 패널티를 부여받은 이누야샤와 달리 나라쿠에게 그 핸디캡은 유리한 쪽으로만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쿠가 반요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완전한 요괴가 되는 것을 꿈꾸는 이유는 그의 마음에 작용하는 인간의 마음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악(惡)에 위치한 나라쿠에게 있어 반역자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인간의 마음은 나라쿠의 탄생을 가능케한 생(生)의 근본이다. 애초에 선(善)을 좇기 위해 태어난 악(惡)은 선을 추종하는 마음을 버리고서는 선과 제대로 된 대결구도를 벌일 수 없다. 때문에 작중에서 나라쿠는 이미 자신이 버렸던 인간의 마음을 도로 흡수하는 수를 써 키쿄우를 다시 한 번 죽여버린다. 그러나…….
또 다른 사혼의 구슬
(이누야샤)
(나라쿠)
<이누야샤>에서 나라쿠는 이누야샤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혼의 구슬을 은유한다. 이누야샤가 사혼의 구슬 속에 깃든 선의 의지, 미도리코를 계승한다면 나라쿠는 사혼의 구슬 안에서 미도리코와 대적하는 악(惡)의 의식을 계승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각각 정화된 사혼의 구슬과, 더럽혀진 사혼의 구슬을 인격화한다. 나라쿠의 이러한 인격은 극 후반 ‘정화된 마지막 한 조각’을 놔둔 채 완성된 사혼의 구슬의 형상으로서 표현된다.
코하쿠의 마지막 구슬 조각에는 키쿄우가 심어둔 ‘정화의 빛’이 존재한다. 나라쿠가 그걸 성급하게 흡수한다면 빛의 힘이 순식간에 나라쿠의 혼을 정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라쿠는 자신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선(키쿄우의 마음을 얻고 싶다는 소망) 어떻게든 사혼의 구슬을 완성시켜야 하는 딜레마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스토리텔링의 한 방편으로서 위치한 나라쿠의 메타포와 묘하게 일치한다.
이 캐릭터가 가지는 그런 아이러니함은 독자는 물론이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손색이 없다. 이누야샤 일행은 물론이거니와 나라쿠의 분신마저도 그의 진정한 목적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나라쿠의 운명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나라쿠의 진정한 숙적인 키쿄우 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선을 좇는 악
키쿄우에 대한 나라쿠의 사랑은 기형적이면서도 필연적이다. 사혼의 구슬을 정화하는 자를 증오하는 마음과 사혼의 구슬 그 자체로서 선을 추종하는 마음 모두 나라쿠의 원초아에 내포되어 키쿄우를 향한 애증의 한 면모로 구현되는 것이다.
나라쿠는 작중 내내 원초아(키쿄우를 추종하는 마음, 선(善)의 의지)와 초자아(요괴의 의식)사이에서 혼란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가 자신이 위치한 메타포를 외면하고 본능에 서게 된다면 <이누야샤>에서의 자신의 존재는 사라지게 되는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라쿠에겐 ‘자아’라는 중립적 개념이 설립될 수가 없고 그것이 나라쿠로 하여금 키쿄우를 죽이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그러나 나라쿠는 그 자신이 가진 메타포 안에서 이미 패배를 예견하게 한다. 그것은 선을 추종하기 위해 태어난 악이라는 탄생배경이 가진 어마어마한 위력 때문이다.
다음의 대사를 읽어보자.
나라쿠와 카고메의 대사
“사혼의 구슬은 절대 소멸하지 않는다. 설령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뭐? 나락! 당신이… 진짜 원했던 게 뭐였어? 당신은 지금까지 우리와 싸워왔지만 그러면서 한 일은 하나밖에 없어. 이누야샤와 금강 사이를 갈라놓고 산고와 코하쿠 남매를 싸우게 만들고 법사님과 산고의 마음을 이용해 궁지로 몰아넣었어. 동료들 사이의 인연을 조롱하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저주하며 갈라놓으려고만 했지. 이유가 뭐야? 당신이 바라던 게 그거야?”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그 모두가 인간의 마음을 모르고는 할 수 없는 일이야.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에 그걸 잃는 괴로움도 아는 거야. 사혼의 구슬은 당신이 바랐던 진정한 소원은 들어주지 않았지?”
‘이 여자…….’
“혹시 망설였던 것 아니야? 사혼의 구슬은 그걸 흡수한 자의 몸과 마음을 진짜 괴물로 바꾸고 말아.”
‘내가 망설였던 걸…….’
“그래서 완전한 사혼의 구슬을 얻고서도 지금 이 순간까지 그걸 흡수하지 않았던 거야.”
“그게 어쨌단 거지? 이제 와서 그따위 알량한 말로 이 나락의 마음을 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나라쿠는 극의 막바지에 가서야 겨우 사혼의 구슬을 완성시키지만 그것을 흡수할 마음은 좀처럼 내보이지 않는다. 카고메가 지적했듯 나라쿠는 자신이 진짜 괴물이 되는 것을 망설였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어설픈 자기애 때문이 아니라 선을 추종하는 마음을 끝까지 버릴 수가 없었던 그의 가련한 정체성 때문이다. 그는 선(善)을 얻기 위해 태어났다. 그가 원하는 키쿄우를 얻지 못하면 그에게 세계란 무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염원하는 선을 품게 된다면 더 이상 악(惡)이라는 존재 이유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탄생하면서부터 죽음을 예고하게 하는 나라쿠의 운명이다.
카고메와의 대사를 묵묵히 듣고 있던 이누야샤가 나라쿠를 향해 날리는 대사
“너와 나는 비록 다르게 태어났지만 같은 반요다! 인간의 마음과 요괴의 마음, 두 가지의 마음을 가진 반요라고! 그래서 더 용서할 수 없어! 우린 어느 쪽이건 선택할 수 있었다. 인간의 마음이건 요괴의 마음이건! 그런데 넌 인간의 마음을 가졌으면서 요괴로 사는 걸 택했어. 남에게 상처주고 저주하며 인간의 마음에 등을 돌리고! 그런 녀석이 내 동료를 해치는 건 더 이상 볼 수 없어!”
이누야샤의 이 대사는 나라쿠에 비해 비교적 편한 운명을 타고난 행운아의 기만적 희롱에 지나지 않는다. 미도리코의 의지를 계승하는 이누야샤는 나라쿠를 이해할 필요도 이해할 능력도 가지지 못한다. 나라쿠에게 그런 이누야샤는 자신의 필생을 걸어서라도 얻고자 했던 선(善)의 의지를 그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가로채간 불구대천의 원수인 것이다.
나라쿠에게 이누야샤란 단순한 연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평생의 라이벌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거기서 비롯된 질투심은 분노의 화살이 되어 키쿄우를 관통해 이누야샤를 향한다. 그러한 나라쿠의 심리가 바로 만화 <이누야샤>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진동하는 연민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누야샤>의 진주인공이 키쿄우였고 주인공 이누야샤가 히로인의 성격을 지녔다면 나라쿠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꿋꿋이 악역의 기품을 지켜냈다. 그는 진주인공과 진히로인 모두를 연정과 동경으로 상대한 숭고한 악역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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