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의도적으로 무시하지만 김영삼은 60년대 70년대 내내 야당인 신민당의 지도자(총재)였다. 박정희 말기 때는 외국 언론에 대놓고 박정희 지지하지 말라는 폭탄선언을 했고,이외에도 하야해야 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노동자 데모(YH사건)를 당사로 받아들여 경찰과는 수시로 마찰했으며 전두환 때는 단식농성을 벌이고 바로 외신에 연락해서 전두환을 당황하게 했다고.


1976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일어난 폭력사건이다.
1974년 당수 유진산이 사망하였다. 그리고 그 해 8월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김영삼이 총재로 선출되었다. 김영삼은 박정희 유신 정권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는 선명 노선을 내세웠다. 그러나 1975년 5월 박정희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이후 선명 노선이 약화되고 김옥선의 관제데모 발언 파동 당시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서 당 내부에서 그에 대한 반대가 커졌다.
이에 따라 1976년 5월 신민당의 새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해 전당대회가 열렸다. 이 때,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은 참여 하의 개혁이라는 온건 노선을 내세운 이철승 국회의원이 당수로 선출되기를 바라고 정치공작을 수행하였다.
1976년에는 이철승 의원의 사주를 받고 신민당 총재 선출에 개입했다. 휘하 조직들을 이끌고 김영삼이 총재로 있던 신민당 당사를 공격했다. 의원들은 김영삼과 함께 총재실로 대피시켜 바리케이트를 치고 버텼고, 김태촌은 김영삼에게 항복하라고 소리쳤지만 김영삼은 항복하지 않고 버텼다.폭력배들이 도끼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김영삼과 몇몇 의원들은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쳤다.
김태촌은 신민당 대의원 명단을 불태우고, 직인을 강탈했다. 얼마 뒤에 열린 전당대회에서는 다시 김태촌의 무리가 전당대회장에 난입하여 각목을 휘둘러 김영삼 측 대의원을 전당대회장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막은 다음 이철승 의원을 대표로 선출했다.
그리하여 국민들에게 야당이 정치싸움이나 일삼는 집단임을 보여 주려는 박정희 정권의 의도는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이철승 대표는 참여 하의 개혁이라는 노선을 주장하여 사쿠라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김태촌은 신민당 노동국 차장이 되었으며 국회의원 공천 약속까지 받아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때 김태촌의 나이 고작 25세. 아무튼 이것으로 김태촌은 정계진출까지 꿈꾸게 된다.

저때 김영삼은
"깡패놈들에게 맞아 죽어? 나는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 도망 안 간다, 같이 죽겠다. 내 기어이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철승 의원을 매장하고야 말겠다." >며 버티지만 다른 의원이 붙잡고 뛰어내렸다. 그때 김영삼의 다리가 부러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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