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의사> < 친일파 xxx>
1909년 12월 22일 서울명동성당에 열린 벨기에 황제 레오폴드 2세 추도식에서 이재명 의사는 식장에서
나와 인력거를 타고 지나갈 때 가지고 있던 칼로 을사오적 이완용의 복부와 어깨 등을 찌른다.
이재명 의사는 모여든 구경꾼들에게 담배를 얻어 피웠고
조금도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고 한다. 일본 경찰에 잡혀간 뒤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서울 지방 재판소에서는 방청석을 향해 열렬한 언변으로 "몸을 바쳐 나라를 구하라"라고 연설을 했는가 하면,
일본인 재판장이 "피고와 같이 흉행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라고 묻자 눈을 부릅뜨고
"야만 섬나라의 불학무식한 놈아! 너는 흉자만 알았지 의자는 모르느냐! 나는 흉행이 아니고 당당한 의행을 한 것이다!."
라고 고함을 쳤다고 한다.
재판이 계속되어 재판장이 " 그러면 피고의 일에 찬성한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라고 묻자 "2000만 우리 민족이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러자 창밖에서 "옳다!"라는 소리들과 함께 흥분한 방청객들이 유리창을 부쉈다고 한다.
또 재판장에 호령하며 " 야만 왜종들을 퇴청시켜라. 그리고 창밖에 있는 한국인들을 모두 입장시켜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심문에 답하지 않겠다."라며 노하셨다고 한다.
이재명 의사에게 사형이 확정되자 재판장을 꾸짖어 " 왜법이 불공평하여 나의 생명을 빼앗기기는 하나, 나의 충혼은 빼앗지
못할것이다."라고 말했다.
1910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셨는데 형이 집행되기 전
"나는 죽어 수십만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기어이 일본을 망하게 하고 말겠다!" 라는 말을 남기시고 순국...
그때 이재명 의사의 나이는 불과 20살 꽃다운 나이...
이완용은 출혈 과다로 사경을 헤매다가 일제당국의 각별한 치료 덕분에 이듬해 2월 퇴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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