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23세(1881~1963)
1. 교황 선출 이전
세속명은 안젤로 주제페 론칼리 (Angelo Giuseppe Roncalli), 1888년 이탈리아의 소작농의 13자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여, 고향의 사제로 일하였다 고향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활동한 기록이 있으며, 이 탓에 교황청 블랙리스트로 찍혀있었다(교황청 공식기록에 근대주의자 혐의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음)
블랙리스트인 탓에, 한직인 터키 대사, 불가리아 대사(터키는 이슬람, 불가리아는 정교회 중심 국가라 한직에 불과하였다)에 머물렀다 터키에서는 공식문서에 터키어 도입을 추진하여, 터키정부와의 관계가 좋았으며, 불가리아에서도 정교회와의 관계 개선에 힘썼다
1944년 프랑스 대사로 발령나는데, 이는 원래 발령예정자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한직에 머물지만 가는 곳마다 평이 좋았던 론칼리 주교를 대타로 보내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나치 포로에 대한 처우 개선 및 나치에 협력한 사제 퇴출에 힘썼다
1953년 베네치아 총대주교 및 추기경을 맡았는데, 이는 대표적인 한직이었다고 한다 1958년 콘클라베에서 선출되었는데, 당시 언론에서 예상한 추기경 후보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의외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당시에 교황으로 선출된 이유는 유력한 두 개의 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아니하자, 나이 많고 야심없는 사람을 뽑자는 이유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자리만 채우다 갈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1959년부터 공의회 준비를 하면서 교회 개혁을 시작하였다 1963년에 공의회 개최를 하려고하자 보수파를 중심으로 반대를 하였다 그러자 1962년 10월 11일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실시하였다 현대 카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카톨릭에 전반적인 개혁을 가져왔으며,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기존에 라틴어로 진행되는 의례를 자국어로 진행할 수 있게 하였다
- 1054년 제1차 교회분열 이후의 정교회를 하나의 형제로 인정하였다
- 1571년 제2차 교회분열 이후의 개신교를 하나의 형제로 인정하였다
- 유대인은 예수의 죽음에 책임이 없음을 인정하고 교회는 반유대주의를 억제할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 카톨릭 교회는 사회적 불의에 하느님의 말씀으로 저항할 책임을 가진다라고 하여, 과거 왕권 또는 권위주의에 협력하였던 과거를 극복하려고 하였다.
- 교회를 믿지않는 자의 구원을 인정하였다
(선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고, 선한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을 가진 자다)
또한 자유의사로 신을 거부한 자의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는 신앙인도 어느정도 책임이 있다라고 하였다
(카톨릭은 신앙이 독실하면 자연스럽게 윤리적 행동을 취하며, 윤리적이지 아니한 사람은 독실한 사람이 아니다는 교리를 가지기에 신자가 독실하면 자연스럽게 윤리적 행동을 취해 타인을 교화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 예수가 유일한 구원자라는 교리는 포기하지 아니하나, 타 종교도 인정할 필요는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카톨릭의 권위를 내려놓은 개혁으로 평가되나, 카톨릭 보수주의에서는 교회의 권위를 떨어뜨렸다며, 많은 비판을 받고 있으며, 개신교에서도 신앙의 경건성을 해쳤다는 이유로 현재까지 비판이 있다.
3. 에피소드
과거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사회활동을 한 탓에 근대주의자로 성무성성(과거의 이단심문소)의 감시를 받은 적이 있으며, 교황이 된 이후, 교황청 공식 기록에 “본 교황 요한 23세는 근대주의자가 아님을 선언한다” “본 교황은 성무성성의 감시를 받는 자도 교황이 될 수 있다는 예이다”라고 직접 주석을 달았다고 한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교황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상류층 사람들에게 노골적인 무시와 푸대접을 당하곤 했다 한 번은 어느 고급 파티에서 누군가 성직자인 그에게 여자의 나체 사진을 보여주며 "무슨 생각이 드시는지요??" >하고 물었다 요한 23세는 자신을 조롱하는 것을 알아채고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아, 네 어머님이신가 보군요 참 잘생기셨습니다”
- 이 에피소드는 교황의 패드립이라는 제목으로 알싸에서 언급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반대가 많자, 오히려 개회일을 1년 앞당기는 무리수를 뒀는데, 이는 오히려 신의 한수였다(교황은 다음해인 1963년 6월 3일에 선종한다) 또한 공의회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위암이 걸린 사실을 숨겼고, 이는 1차 회기 이후 알려진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주교자격으로 참여하여 활약을 한 바 있으며, 이때 능력을 인정받아 추후 교황의 자리에 오른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요한 23세를 복자(성인 아래 등급)으로 시복하였으며, 현 교황 프란치스코 1세는 그를 성인으로 시성하였다.
참고: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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