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승완 감독이 외로운 전쟁을 시작했다. 그는 신작 '군함도' 투자를 놓고 오프닝 크레딧에 투자자 이름이 감독과 제작자, 주연배우보다 먼저 나오는 한국적인 관행을 바꿔보겠다며 현재 대기업과 밀고 당기기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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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영화 감독들과 제작자,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영화 오프닝 크레딧에 투자자 이름이 먼저 올라가는 관행에 분통을 터트렸었다. 정작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보다 돈을 댄 사람들이 먼저 이름을 올리는 건, 돈이 결국 영화의 주인이란 뜻이기 때문. 마치 집문서에 대출해준 은행장과 상담직원 이름이 주인보다 먼저 적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관행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어느 나라 영화에도 오프닝 크레딧에 감독과 제작자보다 투자자 이름이 먼저 올라가지 않는다. 한국영화감독조합 대표이기도 한 이준익 감독은 "자본이 영화의 주인이라는 낙인이나 다를 바 없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로선 힘이 빠질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 개탄했다.
이렇게 불만이 팽배 한데도 그동안 이 한국적인 관행이 바뀌지 않은 데는 감독과 제작자들이 투자자 눈치를 보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투자자 심기를 거슬려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염려해 입을 닫아왔다. 불만을 토로할지라도 관행인데, 좋은 게 좋은 건데, 왜 당신만 튀려고 그래, 라는 말로 입막음을 당해왔다.
하지만 한국적인 관행이라고 해봤자, 한국영화 오프닝 크레딧에 투자자 이름이 먼저 올라간 지는 불과 10여년에 밖에 되지 않았다.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한국영화에 투자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오프닝 크레딧에 투자회사 이름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랬다가 어느 순간부터 메인 투자사 대표 이름이 오프닝 크레딧에 올랐다. 그랬더니 그 뒤론 부분 투자 회사도 회사 이름 대신 대표 이름이 같이 오르기 시작했다. 메인 투자사로선 부분 투자자에게 생색내기 딱 좋은 일이었기에, 좋은 게 좋은 일이라며 제공자 명단이라고 올리기 시작했다.
2006년을 정점으로 한국영화 거품이 최고조에 달한 뒤 7~8년 동안 침체기를 겪는 동안 이런 일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제작사가 잇따라 문을 닫고,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몰리던 시절, 슬그머니 돈이 영화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오프닝 크레딧에 투자자 이름이 길게 나열되는 건 단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만 힘을 빼는 게 아니다. 오프닝 크레딧에 투자자 이름이 나열되면 대략 영화 러닝타임 중 20초 가량을 잡아먹는다. 단지 20초라지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몰입해야 할 관객들에게는 몰입을 방해하는 큰 요소다. 일찍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영화가 줄 수 있는 놀람과 재미는 첫 장면에서 거의 결정된다"고 갈파했다. 그 소중한 첫 장면에 몰입을, 돈 댄 사람들 이름으로 허비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관행은 K-필름이라며 한국영화 알리기에 앞장서겠다는 정부 당국 방침에도 먹칠하는 일이다. 한국에만 있는 유일한 관행이기에, 한국영화를 보는 해외 관객들에게, 한국은 (대중)예술가보다 돈을 더 중요시하는 나라구나,라는 인식을 주기 십상이다.
류승완 감독은 기자에게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오프닝 크레딧 투자자 명단을 엔딩 크레딧으로 돌리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며 "창작자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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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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