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35년에 종업원들에게 주식의 30% 이상을 배분해주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한 인물이 유일한 박사입니다.
3. 이승만 재임 시절에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산업부장관 자리를 수차례 제의받았지만 그런 썩어빠진 곳에 들어갈 수 없다면서 거절했습니다.
4. 박통 시절에 기업들이 정치자금을 제공하는게 당연하던 시절에 유일한 박사는 그런 식의 돈은 절대 내줄 수 없다면서 정치자금을 단 한차례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박정희는 빡쳐서 털어서 먼지하나 나오는게 없겠냐면서 세무조사 등으로 샅샅이 습니다. 심지어 과학 기술처에서 유한양행의 약품성분까지 하나하나 다 조사를 했었는데 정말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박정희는 유일한 박사에게 동탑 상업훈장을 수여합니다.
5. 유일한 박사 사망후 한달뒤에 공개된 유언장에서 그는 미국에 있는 장남에게는 “너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재산을 일절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딸 유재라 여사에게는 오류동 유한중고교 구내이자 그의 묘소가 있는 5000평의 땅을 상속했는데그나마 이 땅도 ‘유한동산’으로 꾸미고 유한중고교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해 ‘젊은 의지’를 죽어서도 보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손녀 유일링 양(당시 7세)이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자금으로 쓰도록 주식의 배당금 가운데서 1만 달러 정도(당시 환율로 약 320만 원)를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이후 유일한 박사의 자녀들은 일체 회사 경영에 관여하지 않은 걸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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