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한 번쯤 봤을 법한 이 그림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그리스 로마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을 모아 그린 작품으로 등장 인물로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라파엘로가 존경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모델로 그렸다고 해요)과
손바닥이 땅을 바라보는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열변을 토하고 있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 알키비아데스, 크세노폰, 아이스키네스
그의 말을 무심하게 듣는 알렉산더 대왕(대부분 그림 속 미소년으로 표현됨)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가 자문을 구하자
"햇볕을 가리지 마시오"라고 했던 디오게네스

무언가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는 피타고라스

그리고 화가인 본인 라파엘로까지
이 수 많은 사람들 속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 그림 속 유일한 여성
히파티아(355년 추정~415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라파엘로가 생각했던 주요 인물들은 중앙에 배치되었는데
그의 초기 밑그림에는 히파티아가 그림의 가운데였습니다.
그러나 압박(우리의 사상과 맞지 않는다, 그녀를 크게 그린다면 돈을 주지 않겠다는 둥)으로 인하여 왼쪽으로 옮겨왔지만
우리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으로 인하여 그녀의 존재감이 부각되게 됩니다.
그녀의 업적으로는 철학 분야에서는 신플라톤주의를 완성, 수학 분야에서는 디오판투스의 대수학을 완성했으며
그녀의 아버지(수학자 테온)의 이름으로 발표된 천구의를 제작하기도 했어요.
나는 사실 웜톤이라 다 이해는 못 해요. 모카들도 그렇지?(뜬금 쿨톤 저격)

그녀는 뛰어난 언변과 쉬운 설명, 높은 학식과 덕망으로 많은 이들이 그녀의 강의에 열광했는데
기독교도들은 그녀의 행실이 이교도적이고 기독교에 위협적인 것으로 생각했어요.
여성이 수학을 잘하는 것을 마녀라고 간주하고 추종자들이 많았던 것에도 불만불만 왕불만이었어요.
거기에 당시 주교였던 키릴로스와 정치적 대립이 있었던 오레스테스와 가까이 지냈던 것이 더더욱 불만이었어요.
그리고 415년
베드로라는 기독교인에 의하여(키릴로스의 사주를 받았다고 추정됨)

히파티아의 마차를 습격하여 그녀의 옷을 찢어 나체로 만들고 그녀를 질질 끌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녀를 교회로 데려간 그들은 오스트라코이스(Ostrakois 검색하는데 이상한 거 올린 새끼 하.. 죽여버려..)로 피부를 벗겨냅니다.
오스트라코이스는 칼날처럼 깎은 굴 껍데기를 말해요.
그녀의 피부를 벗겨내는 도중 죽었다고 하는데 그녀가 죽은 후에는 조각난 시체를 거리에 뿌리고 일부는 불태우기에 이릅니다.

찰스 윌리엄 미첼이 그린 히파티아의 마지막 모습.
키릴루스는 히파티아의 죽음에 자신이 연관되지않았다며 극구 부인했으나
약 200년 후 이집트 콥트 교회에 남겨진 기록이 그녀의 죽음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보여줍니다.
당시 히파티아라는 이름을 가진 이교도 여자 철학자가 나타나 사탄의 계략으로 많은 사람들을 홀렸다.
(중략)
그들은 그녀의 옷을 모두 찢고 그녀가 죽을 때까지 그녀를 질질 끌고 다녔다.
그리고는 마침내 키나론이라는 곳에 도달해 그 시신을 불태웠다.
(참고 : https://en.wikipedia.org/wiki/Hypatia)
히파티아는 살해되었고 키릴루스는 권력을 얻었으며 후에 성인이라는 칭호를 얻기까지 이릅니다.
아카데미는 폐쇄되었고 그녀의 제자들은 아테네로 옮기며 철학, 수학, 문화의 중심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아테네로 이동했습니다.
당신이 몰랐던 히파티아,
이제 조금 알게되었다면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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