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천 만관객을 넘으며 공전의 히트를 쳤던 영화, <베테랑> 에서는 '조태오(유아인 분)'라는 인물이 나온다. 뭐.. 이 영화를 안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만, 대충 설명하자면 조태오는 '매우 나쁜놈'이다. 사실 '그냥 나쁜놈'은 무수히 많고, 우리 주변에도 나니같은 놈 한 두명 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단지 '어휴.. 왜 저렇게 살지?' 라며 혀를 쯧쯧차며 지나갈 뿐.. 그런데 어째서 조태오라는 캐릭터가 그냥 나쁘지 않고 '매우 나쁜놈'인지, 왜 가상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두말할 것없이 바로 조태오가 금수저였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거나 패는 건 다른 악당들도 다 하는 짓이다. 근데 재벌 2세인 조태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태어날때부터 대기업 회장 아들.. 그에게 돈 몇 백만원 쯤은 그저 푼 돈 수준이고, 고작 그런 푼 돈 때문에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을 보며 자라왔으니 사람이 우습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돈과 권력으로 사람을 짓밟고,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고..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이런 짓거리들이 조태오에게는 일탈이나 범죄행위가 아닌 '일상'과 '취미'의 범주에 있다는 것이다. 말한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보고있자니 짜증나고, 한 대 때려주려니 빽이 어마어마하다. 그가 재벌 2세로서의 지위를 잃지않는 이상, 조태오라는 인물의 말과 행동을 제지할 사람은 사실상 없다. 예컨대 평범한 동네 나니가 사람을 패면 폭행죄로 감옥에 보내져 죄값을 치루지만, 조태오의 경우 대기업의 우수한 법무능력을 통해 처벌을 교묘히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없거나 평범한 놈이 나쁘면 그냥 화가 나는데, 가진 게 많고 잘난 놈이 나쁘면 매우 화가 난다. 잘난 놈은 나쁜 짓도 태연하고 뻔뻔하게 '잘'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쯤되면 가진놈이나 잘난놈이 아니라 소시오패스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그런 측면에서,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전세계의 팬들에게 사랑받아온 만화 <명탐정 코난>을 '수저계급론'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걸 해결하는 게 일반적인 루틴인 만화에서 웬 수저얘기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핵심은 이 만화가 대체로 '사람의 목숨이 달린 사건'이 연속된다는 부분이다. 실제로 <명탐정 코난>에서는 살인자, 강도, 유괴범 등 정말 수많은 악당들과 나쁜놈들이 등장하지만(20년간 연재됐으니까), 어떤 관점에서는 가장 비판받아 마땅한 인물은 따로 있다. 바로 '남도일(쿠도 신이치)'. 다른 말로 하면 '에도가와 코난' 탐정이다.
<왜 반말이지!?>
3. 에도가와 코난 (아오야마 고쇼) - 명탐정 코난
총평 :: 사상 최흉최악의 금수저. 가진 것과 아는 것을 이용해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는 소시오패스
그냥 미사여구를 더 갖다붙일 필요도 없다. 이놈은 쓰. 코난의 팬들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나 역시 <명탐정 코난>이라는 만화를 오래도록 봐온 팬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코난의 악랄함과 극악무도함을 고발하는 내 심정을 이해해줬으면 한다. 사실 코난은 만화 캐릭터로서 보았을 땐 어마어마한 매력이 있는 캐릭터이고, 실제로 김전일과 함께 추리만화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됐지만, 수저계급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두말할 것없이 최악의 캐릭터 중 하나인 것이다. 단지 만화. 창작물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20년 넘게 가까이 죽창을 회피해왔던 코난. 이제 수저계급론의 지엄한 심판을 받을 때가 왔다. 이를 위해 먼저 코난의 전신인 남도일(쿠도 신이치) 의 성장배경을 분석해보도록 하자.
<어릴 적 우리집에는 먼나라 이웃나라도 없었다>
3-1. 남도일(코난)의 성장환경
작중 남도일의 나이는 17살이다. 키는 설정상 174cm인데, 작품의 배경인 일본의 성인남성(20대)의 평균키가 170cm 정도라는 점, 그리고 아직 고등학생이니 앞으로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라운 스펙이다. 만화이므로 어느정도 미화가 되어있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처음보는 여러 여성이 남도일에게 얼굴을 붉히며 호감을 표시하는 묘사가 자주 나오는데다 대놓고 잘생겼다는 소리를 듣는 걸 보면 외모적인 부분에서도 상당한 미남이라는 것을 어렵지않게 유추해낼 수 있다.
그리고 남도일은 만화 시작부터 '소년 탐정'으로서 전국적인 유명인사였다. 언론으로부터 '헤이세이의 홈즈'라는 별명을 받기도 했고, 지나가다 알아보는 사람도 매우 많으며, 수많은 여성팬들에게 러브레터도 받는다. 아직 고등학교 졸업도 안한 상태에서 이정도 인기를 가진 사람을 구태여 우리나라에서 찾아보자면 김유정이나 김소현 정도일 것이다(나이도 같다). 만화 시작부터 김유정급의 명성과 인기를 가진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다. 캐릭터 생성하고 보니까 이미 만렙인 셈이다.
<남도일의 저택. 집이 하나가 아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많은 노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도일. 체포는 원래 경찰이 할 일이다>
또, 애초에 '소년 탐정'으로 유명해진만큼 머리는 비상하다못해 무슨 지성의 신 같은 수준이다. 추리라는 것이 분야를 가리지않고 어마어마한 지적수준을 요구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소년 탐정이라는 칭호 자체가 남도일의 지성을 어느정도 증명해준다고도 볼 수 있다. 고등학생 주제에 남도일이 초월적 지능과 추리력을 가지게된 이유는, 물론 타고난 머리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남도일이 금수저로서 상당히 풍요로운 성장과정을 겪은 덕이 크다. 만화 초반에 묘사되는 것을 보면, 남도일의 집은 그냥 집이 아니라 '저택'이며, 서재에는 코난 도일을 비롯한 수많은 추리소설들이 도서관 수준으로 배치되어있다. 집에서 손뻗으면 있는 게 추리소설인 셈인데, 한 번쯤 읽어봤다면 알 수 있겠지만 추리소설은 독자의 이해력이 꽤 필요한 장르다. 우리가 고등학교시절 MP3같은 걸로 몰래 읽던 판타지 소설, 혹은 인터넷 카페에 올라오던 연예인 팬픽 같은 것과는 그 궤가 다른 것이다. 남도일은 이걸 어렸을 때부터 어마어마하게 읽어댔으니 멍청하기가 더 힘들다. 요즘 조기교육의 중요성이 얼마나 강조되는 지를 생각해보면..
머리가 좋으면 운동이라도 못해야 좀 밸런스가 맞을 것 같은데, 타고난 신체스펙을 바탕으로 운동신경도 좋다. 일단 남고생 운동신경의 척도인 축구를 엄청나게 잘한다는 설정. 주위 사람들로부터 묘사되는 바에 의하면 탐정이 아니었다면 프로축구선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하며, 실제로 프로축구선수가 남도일이 축구공을 다루는 모습을 보더니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는 정도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축구부의 에이스였다고도 하고, 평소에 머리가 복잡할 땐 볼 리프팅으로 머리를 비운다고한다. 거기에 머리가 좋아 상황파악도 잘하고, 킥력도 상당하니 실제로 축구선수가 됐다면 열도의 피를로가 탄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남도일은 이 재능을 마음에 안 드는 놈들 머리 맞추는 데 쓴다. 안타까운 일이다.
<외국에서 살자는 얘기를 웃으며 말하는 남도일의 부모>
<심지어 국제경찰과도 아는 사이다>
무엇보다도, 남도일의 성장환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부모다. 아버지는 '세계적인' 추리 소설가 남건(쿠도 유사쿠)인데, 전 세계의 출판사와 잡지사가 남건의 추리소설 원고를 받으려고 스토킹까지 하는 장면이 나온다. 생각을 해보자. 우리가 아는 '세계적인 소설가'가 얼마나 되는가? 그 돈으로 전세계에 저택과 별장을 사며 평소에는 편안하게 아내와 세계여행이나 다닐 정도라면 어느정도의 레벨인가? J.K.롤링 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는 되는 사람일 것이다. 심지어 매우 똑똑한 인간이기도 하다. 추리소설을 읽는 것도 어느정도의 머리가 있어야하는 일인데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거기에 어머니는 고등학교 시절 데뷔해 왕성한 활동을 하다 돌연 은퇴하고, 영화계의 전설적인 여배우로 평가받는 이하연(쿠도 유키코)이다. 젊고 엄청난 미인인데다 연기력까지 출중하니 배우로서 얻은 인기가 어느정도일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결국 남도일은 아버지에게서 세계적 추리소설가의 명석한 두뇌를, 어머니에게서 전설적 배우의 연기력과 외모를 물려받은 셈이다. 이젠 이걸 금수저라는 말로 표현이 가능한 건지도 난 잘 모르겠다.
<일반인 애인에게 영어를 번역해주는 코난>
그리고, 부모의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어릴 때부터 상당한 영재교육을 받아왔다. 일단 영어를 엄청나게 잘한다. 근본적으로 일본인이라 발음은 영 안좋지만, 영어를 듣고 읽고 말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도 느끼지 못한다. 고등학생 주제에 2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셈이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인 영어와 그 다음가는 일본어.. 이미 영어가 유창한데다 머리도 명석하고, 무엇보다 고등학생이라 시간도 많으니 영어에서 뻗어나가는 불어나 이탈리아어 등을 마스터하는 것 역시 본인의 생각만 있다면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절대음감이다. 비록 노래는 엄청난 음치라는 설정이지만, 음의 높이를 들으면 어떤 음인지 순식간에 판단이 가능하며, 보다보면 악기 연주도 한다. 특히 하와이에서는 별의 별 것을 다 배웠다. 대부분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한 설정이긴 하지만, 하와이에 있는 별장에서 아버지에게 권총 사격과 자동차 운전, 모터보트 운전 및 경비행기 조종법까지 배웠다. 하와이에서 무슨 델타포스 훈련이라도 받은 모양이다. 중동 왕족 자손이나 받을 것 같은 이런 영재교육들을 어린 자식에게 실시한 아버지 남건의 선견지명과 경제적 능력이 놀라운 부분이다.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부모에게 소리나 지르는 코난. 부모가 그에게 해준 것들을 생각하면 매일 108배를 올려도 모자라다>
꽤 길고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남도일의 성장환경과 가진 것들을 정리해보면
- 17살의 젊은 나이에 전국적인 유명인사(소년 탐정)
- 처음보는 여자들도 첫눈에 반할 수준의 미남
- 특급 유망주로 평가받을 정도의 축구실력 및 운동신경
- 엄청난 양의 추리소설을 읽으며 다듬어진 초월적 지능
- 세계적인 소설가 아버지와 일본의 전설적 배우였던 어머니
- 자국의 저택을 비롯해 전세계에 별장이 있는 재력가의 아들
- 타고난 명석한 두뇌에 어릴적부터 영재교육을 받음
- 절대음감, 악기연주, 어학능력 등의 부가적 재능
돈많고 키크고 잘생기고 똑똑하며 집에는 돈도많은데 전국적 인기까지 있는 17살 남고생. 어느날 등교하다 불시에 죽창을 맞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스펙이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부모가 남도일에게 부유한 생활환경과 영재교육 그리고 수많은 재능을 주긴 했지만, 하나 뿐인 자식을 나몰라라하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통에 옆에서 제대로된 인성교육을 해주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마치 테티스가 스틱스강에 아들 아킬레우스를 씻겨 무적의 전사로 키우려했지만, 미처 씻기지못한 발목이 유일한 약점이 되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과 흡사하다 할 수 있겠다.
<죽창을 맞는 남도일>
3-2. 소시오패스로의 진화
하여튼 그렇게 부족한 것 하나없이 잘난 남도일. 그의 앞에는 사회적 성공을 향한 탄탄대로만이 있을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남도일의 인생에 갑작스럽게 문제가 생겼다. 여자친구 유미란(모리 란)과 함께 단 둘이 놀이공원으로 데이트를 갔다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죽창을 맞은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쇠파이프였지만.. 핵심은 금수저 남도일이 드디어 통렬한 일격을 당했다는 것이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 즉 만화에 등장하는 검은 조직이 뭐하는 조직인지는 21년이 지난 지금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사람많은 놀이공원에서 금수저 남도일이 거사를 훔쳐보는 걸 적발하고 파이프로 갈겨버린 걸 보면 아마 공산주의자들인 것 같다.
그런데 이 공산주의자들은 한가지 큰 실수를 했다. 이미 머리를 쳐맞고 기절한 빈사상태의 남도일에게 막타를 때리지않고 이상한 약을 먹여버린 것이다. 시체에서 독이 검출되지 않고 깔끔하게 사람을 죽여버리는 약.. 얘들은 개발중인 신약을 실험해보자는 의도였지만, 지금 와서보면 엄청난 실수였다. 죽이려면 파이프로 확실하게 조져놓거나, 뭘 먹여서 죽일 거라면 차라리 그라목손을 먹이는 게 나았을 것이다(먹지말자. 죽는다). 하여튼 집안도 빵빵하고 머리도 명석해서 나중에 가장 큰 적이될 인물을 처리할 기회였는데, 그걸 놓쳤다. 남도일은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의 몸으로..
<코난이 원래 나이로 쳐도 자신보다 3배는 나이가 많은 분에게 폭언을 퍼붓는 모습>
비상한 머리회전과 옆집에 사는 브라운 박사(아가사 히로시)의 도움을 받아 '코난'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그렇게 잘나가던 인생과 삶을 놓친 남도일의 정신상태가 온전할리 없었다. 부모님은 해외에 있고, 본인은 의심을 받을 것이 두려워 살던 저택에도 함부로 못들어가는 상황. 남도일.. 아니 코난은, 본인의 인생에 죽창을 놓은 공산주의 빨갱이놈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당분간 정체를 숨기고 정보를 모으면서 암약하기로 결정한다.
<돈없고 멍청하다고 사람을 하는 코난>
<가장 먼저 생각해낸 방법이 때려서 기절시키는 것이다.. 그냥 말을 하라고>
<사실상 살인미수나 다름없다>
사실 복수귀가 되기 전의 원래 남도일 시절에도 버르장머리라곤 없는 인간이었지만, 남도일과 다른 제 2의 인물이 된 코난은 더더욱 막나가기 시작했다. 남도일은 원래 사람을 무시하고 다니는 게 일상이었던 인간.. 그런 인간이 갑자기 초등학생이 되서 역지사지로 무시를 받으니 성격장애가 생겨서, 본인과 본인이 인정하는 인물들을 빼면 죄다 자기 아래의 인간으로 보는 쓰레기가 됐다. 잘난놈이 사회에 경멸을 갖게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가장 큰 피해자는 여자친구의 부친인 유명한(모리 코고로) 탐정인데, 돈도 돈이지만 오갈데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꼬맹이인 코난을 거둬 키워준 은인이다. 비록 술을 좋아하고 행동거지에 무게가 없는 사람이지만 딸을 사랑하는 마음과 본인의 직업(형사에서 탐정으로 전직했다)에 대한 프로의식을 보면 상당한 호인임을 알 수 있는데, 코난은 자신보다 멍청하다는 이유로 유명한을 한다. 유명한의 탐정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짓밟아버리는 한편, 매번 사건이 있을 때마다 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줘서 기절시키거나 함부로 마취를 시켜 자신의 꼭두각시로 이용했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하면.. 재떨이를 걷어차 유명한의 머리에 맞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재떨이는 민간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살인사건에서 흔히 흉기로 쓰이는 물건이다. 잘못하면 기절은 커녕 즉사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마취라는 것은 의학을 전공한 의사조차 사용에 신중을 기하는 방법인데, 지가 더 똑똑하다는 이유로 불시에 마취총을 쏴서 기절시킨다. 비윤리적이고 매우 위험한 방법이다.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수시로 마취를 당했다 깨어나는 기분이 어떨까? 유명한이 매우 넓은 그릇을 가진 호인이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코난을 죽을 때까지 흠씬 패줘도 마땅찮을 것이다. 코난 덕분에 유명한은 명탐정으로 알려질 수 있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코난의 비윤리적인 행동을 합리화해주지는 않는다. 적어도 사회적 성공보다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생명윤리가 더욱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냥 또 다른 범죄자였다>
거기에, 코난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 브라운 박사를 설득해 시중에 나오지않은 수많은 불법무기들을 생산, 개인목적으로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근육 강화신발'이다. 걷어차서 누구 맞추는 데 엄청난 재능이 있는 코난을 위해 만들어진 무기인데, 극 초반에 묘사된 바를 보면 근육 강화신발을 신고 평범한 축구공을 찼더니 그걸 맞은 아름드리 나무가 힘없이 쓰러지기도 한다. 이걸 사람한테 맞춘다고 생각하면.. 본인 말로는 힘을 조절한다고 하지만 그게 그거다. 본인은 맞는 입장이 아니니 모른다. 실상은 거의 항상 살상무기를 발에 차고 다니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코난이 이런 불법도구들을 그야말로 함부로, 막 쓴다는 것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있다. 핵폭탄은 정말 끔찍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 무기지만, 각국 정상들이 핵무기의 사용에 매우 조심스러운 이유가 따로있는 것이 아니다. 코난은 최소한 그 엄청난 위력의 무기와 도구들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 나름의 원칙이라도 있어야했다. 근데 아니다. 그냥 나쁜놈같은데 등을 보이며 도망치면 바로 무기를 써서 기절을 시켜버린다. 말이 기절이지 위 사례에서 피를 흘리며 반죽어가는 피해자를 보면 그냥 살인미수에 가깝다. 살인자를 그렇게 면전에서 비난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척하면서, 본인이 휘두르는 폭력과 살인미수같은 범죄들은 착한 범죄로 둔갑시키는 코난의 이중잣대는 놀랍기까지 하다.
진짜 웃긴 건 코난은 사실 정식 탐정도 아니고 경찰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막말로, 지가 뭔데 범죄자를 함부로 팬단 말인가? 심지어 경찰이라도 범죄자를 함부로 패선 안 된다. 잘못하다간 과잉폭력 진압이나 직권남용으로 고소나 처벌, 더 가면 직위해제까지 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탐정은 더더욱 패서는 안 된다. 사실 일본에서 탐정이라는 존재는 그냥 우리나라의 심부름센터 같은 존재라서, 당연히 범죄자를 체포할 권리 같은 건 없다. 아무리 살인사건이더라도 탐정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살인자를 밝혀내고 여러 심증과 물증으로 범죄를 입증하는 선 정도지, 살인자라고 해서 기절하거나 빈사상태가 될 정도로 팰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체포와 심문, 처벌은 경찰과 법의 몫이기 때문이다. 코난이 금수저라고 해서 사람을 함부로 패버릴 수 있는 초법적인 권한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작품 내에서 이러한 코난의 불법적 행동을 상당부분 용인하고 있는 경찰들 역시 공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인의 사적인 목적을 위해 여권위조를 조장하는 코난>
무엇보다도 코난의 경우, 자신이 휘두르는 초법적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뿐만아니라 법을 준수해야한다는 의식 자체도 별로 없어보인다. 나름 명목이나마 범죄자들을 밝혀서 법의 심판을 받게하는 게 목적인 놈이, 불법 도청이나 여권 위조같은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를 아무렇지 않게 내비친다. 거기다 경찰들이 조사하고 있는 사건현장에 아무렇지않게 들이닥쳐 휘젓고 다니는 것 까지.. 공권력이나 사회법도에 대한 존중 자체가 없다. 무조건 내가 똑똑하고 내가 명탐정이니까 내가 짱이라는 식. 문자그대로 안하무인이다.
<애초부터 코난에게 탐정이란 그저 취미이자 놀이였을 뿐이다>
<똑같은 놈들끼리 살인사건을 주제로 내기를 하는 모습..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그리고 탐정이라는 직업에 대한 프로의식이나 직업윤리 역시 코난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코난에게 사람이 죽는 살인사건이란 그저 놀이나 레저처럼 보인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상황에서 아무렇지않게 웃어대며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흥미로워하고, 같은 소년 탐정이라는 친구와 살인 사건을 누가 먼저, 누가 더 많이 해결하는지 내기를 하기도 한다. 아무리 17살이고, 철없는 고딩이라지만 이건 용인될 수 없는 짓이다. 사람 죽는 게 장난도 아니고.. 유명한이 비록 머리는 코난보다 못할지 몰라도, 살인에 대한 윤리의식이 확실하게 있다는 것을 보면 확실하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유명한은 지가 탐정이랍시고 사람 패고다니지도 않는다.
어쩌면 코난, 즉 남도일이 탐정 놀이를 시작한 것 역시 진지한 직업적 고찰을 통해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추리소설을 읽으며 탐정에 대한 로망이 생긴 나머지 치기어린 심정으로 하게 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셜록 홈즈 같은 걸 보면 탐정이라는 직업은 너무나 지적이고 멋진 이미지로 등장하므로, '탐정이 되어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해'가 아니라 '단순히 탐정이 멋있어보여서' 시작했다는 게 더 신빙성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남도일은 17살이다. 아직 중2병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맥락없이 추리소설에 나오는 명대사 같은 걸 멋진 표정을 지으며 얘기하는 것이나, 딴 놈은 다 바보이고 내가 짱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그리고 불법무기를 들고다니며 슈퍼히어로 흉내를 낸다는 것은 코난이 중2병 환자라는 것을 방증하는 훌륭한 증거들이다. 그냥 중2병 환자와 코난의 차이는 단지 그걸 실제로 하느냐 마느냐, 그럴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일 뿐이다. 코난은 본인이 하는 중2병적 생각을 실제로 실행했고, 그럴 능력과 제반환경이 충분했다.
거기다 범죄자처럼 보여지는 놈을 죄다 패고다니는 걸 보면 그냥 사람 때리고 고통받는 걸 좋아하는 새디즘이 탐정놀이의 기저에 깔려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때려도 상대방은 어차피 살인자. 나중에 추궁받으면 그저 사회정의구현을 위해 그랬다고 변명하면 된다. 코난에게 범죄자들이란 사회가 용인하는 범위에 있는.. 훌륭한 샌드백인 것이다. 탐정놀이를 하며 저지르는 수많은 폭력과 불법적 행위들은 그저 금수저 남도일의 고상한 취미생활이다. 이렇게 보면 남도일-코난은 그냥 양아치다. 그 수법과 형태가 매우 교묘하고 지능적일 뿐. 결국 탐정놀이를 통해 인기와 명성을 얻고, 사람도 패고 다니고, 자신의 지적허영심도 채우는 것이다. 사회와 다른 개인들을 오로지 자신의 욕구를 위해 이용해먹는 코난. 보통은 이런 놈을 소시오패스라고 부른다.
<음성변조기로 태연하게 사람을 속이는 코난>
사람들을 자신의 탐정놀이를 위해 이용하는 것은 이제 일상인 수준이다. 음성변조기를 통해 사람들을 속여 상황을 만들고, 그 와중에 멋지게 대사를 치며 등장하는 패턴은 중2병 코난의 대표적인 소시오패스적 행동양상이다. 사람이 스포트라이트와 인기에 맛을 들이면 어떻게 인격이 망가져가는 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어차피 코난은 금수저.. 돈을 벌기위해 탐정을 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냥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인기를 얻는 것. 1화에서 나왔듯 '20세기 홈즈'가 되어서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게 목적일 뿐이다. 하긴.. 만화 연재하는 동안 21세기가 되어버려서 이미 실패하긴 했다.
<급하면 소리지르지말고 본인이 가면 될텐데...>
코난의 안하무인적 성격장애는 여성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나는데, 아버지한테 배운 것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가부장적인 사고를 지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여자에게 도움을 받았다며 자존심상해하는 모습이나, 좀 다급하거나 화나는 상황이라고 여자에게 아무렇지않게 고함을 치는 코난의 모습은 여성을 무시하는 권위적 남성상 그 자체다. 여자에게 도움받는 게 뭐 어떤가? 사람이 사람을 호의로 도와주는데 여자 남자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좀 급하다고 주위 여자(소꿉친구)에게 다그치며 뭘 시키는 것도 웃기다. 그렇게 급하면 본인이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여러모로 문제가 있는 놈이다.
<웃어른에게 비아냥대며 조롱하는 코난의 모습. 먹는 것 가지곤 개도 안 건드린다>
결국 코난(남도일)은 가진 재능과 경제적 능력이 탁월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위험한 소시오패스로 만들어준 케이스다. 단순히 금수저인게 문제가 아니다. 많이 가졌고 잘났기 때문에 욕을 먹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으로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니까 욕을 먹는 것이다. 만일 검은 양복의 공산주의자들이 일찌감치 남도일을 방법해놓지 않았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물려준 재능과 권력으로 사회적 지위를 세습한 남도일이, 어느새 사회지도층이 되어 사회전체를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해먹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할테니까.
결론 : <수저계급론>의 관점에서 봤을 때, 코난(남도일)은 금수저로서 부모에게 수많은 재능과 경제적 지위들을 세습받았으나, 인성교육에 무관심한 부모로 인하여 매우 위험한 소시오패스가 돼버린 인물이다. 곱씹어볼수록 참 안타까운 일이다. 코난이 타고난 수많은 재능으로 미루어봤을 때, 만일 코난이 제대로된 윤리의식을 갖도록 교육받았다면 인류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위인으로 거듭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어떤 측면에서 사람의 재능은 가치중립적이다. 사람의 가치관에 의해 선하거나 악한 용도로 모두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명탐정 코난>을 정주행하면서, 권력 세습과 인격적 완성도의 연관성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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