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덕준 / 별자리
당신을 생각하며 한참 뭇별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손가락으로 별들을 잇고 보니
당신 이름 석 자가 하늘을 덮었다.
원태연 / 익사
자살이라뇨 저는 그럴 용기 낼 주제도 못되는 걸요 그저 생각이 좀 넘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뿐이에요.
정현종 / 하늘을 깨물었더니
하늘을 깨물었더니 비가 내리더라 비를 깨물었더니
내가 젖더라
천양희 / 밥
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네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서덕준 / 멍
맑은 하늘이 서서히 잿빛 구름으로 멍드는 걸 보니 그는 마음이 울적해진다고 했다.
하늘은 흐리다가도 개면 그만이건만 온통 너로 멍든 내 하늘은 울적하단 말로 표현이 되려나.
천양희 / 하루
오늘 하루가 너무 길어서 나는 잠시 나를 내려놓았다. 어디서 너마저도 너를 내려놓았느냐. 그렇게 했느냐. 귀뚜라미처럼 찌르륵대는 밤 아무도 그립지 않다고 거짓말하면서 그 거짓말로 나는 나를 지킨다.
이정하 / 사랑
마음과 마음 사이에 무지개 하나가 놓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육춘기 / 창
자꾸만 서리는 입김에창을 열었더니네가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용혜원 / 밀려드는 그리움
밀려드는 그리움을 어찌할 수 없어명치 끝이 아파올 때면가슴이 온통 그대로 가득 차감당할 수가 없다 아무 것도 위로가 되지 않고보고 싶다는 생각에온몸이 눈물로 젖는다 사랑하지 말 걸 그랬다그대 나에게 올 때외면할 걸 그랬다 그대 단 한번만이라도꼭 안으면이 모든 아픔은 사라질 것만 같다.
김혜순 / 명왕성 中
명왕성에 자원 근무를 나간 그에게서e-mail이 왔다. 올 겨울방학, 폭설에 교통 두절되면 꼭 놀러와
장이지 /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
안녕,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여기 하늘엔 네가 어릴 때 바닷가에서 주웠던소라 껍데기가 떠 있어 거기선 네가 좋아하는 슬픈 노래가먹치마처럼 밤 푸른빛으로 너울대 그리고 여기 하늘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날마다 너를 찾아와 안부를 물어 있잖아, 잘 있어? 너를 기다린다고, 네가 그립다고, 누군가는 너를 다정하다 하고누군가는 네가 매정하다고 해 날마다 하늘 해안 저편엔 콜라병에 담긴너를 향한 음성 메일들이 밀려와 여기 하늘엔 스크랩된 네 사진도 있는 걸너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어그런데 누가 넌지 모르겠어. 누가 너니?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려다 지운 메일들이오로라를 타고 이곳 하늘을 지나가누군가 열없이 너에게 고백하던 날이 지나가너의 포옹이 지나가 겁이 난다는 너의 말이 지나가너의 사진이 지나가 너는 파티용 동물 모자를 쓰고 눈물을 씻고 있더라눈 밑이 검어져서는 야윈 그늘로 웃고 있더라 네 웃음에 나는 부레를 잃은 인어처럼 숨 막혀이제 네가 누군지 알겠어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다 지운 울음 자국들이 오로라로 빛나는, 바보야,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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