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이민호랑 닮은 듯

맨 앞줄 오른족에서 두번째 키 큰 남자







앞줄 왼쪽 남자 김난도
뒷줄 왼쪽에서 3번째 여자 나경원

맨 앞줄 오른쪽 김난도
김난도 옆옆이 나경원
조국 교수에 대해서는 나 의원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깜짝 놀랐죠. 조국이 그럴 줄은.(웃음) 대학 때 ‘입 큰 개구리’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나이도 또래보다 어려서 놀려먹는 분위기였는데…. 그땐 정말 ‘아기’로 생각했어요.”(웃음)
[집단연구] 정·관·재계의 ‘신주류’ 서울대 82학번 大해부
―서울대 법대 82학번이다. 원희룡, 김난도, 조국, 나경원이 동기라고 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남편 김재호 판사도 동기였고.
“남편과 나, 김난도는 ‘303번파’였다. 303번 버스를 타고 등교했고 스터디도 함께했다. 김난도 교수는 스페셜올림픽에도 힘이 돼주었다.”
―학창 시절 조국 교수의 별명이 ‘입 큰 개구리’였다고 폭로한 게 나경원 의원이다.
“자기 말만 열심히 한 뒤 다른 사람들 말하려고 하면 바쁘다며 가버려서, 하하! 시장 선거 때 박원순 후보 지지한 조국이 자기 책에 나를 실명으로 비판해서 섭섭했는데, 그 말이 귀에 들어갔는지 ‘본뜻이 아니었다’며 문자를 보냈더라. ‘이해해. 괜찮아’ 하고 답했더니 ‘역시 대인이야’ 그러더라(웃음).”
[Why] [김윤덕의 사람人]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성공 이끈 나경원… 그녀의 인생을 말하다
동기들이 말하는 김난도 교수는 학창 시절 행사가 있을 때면 사회를 도맡았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분위기를 이끌던 법대 MC였다. ‘서울내기’였던 그는 서울대 앞 녹두거리가 번화하지 않았던 시절, 친구들을 이끌고 신촌에서 술을 마신 뒤 연희동 자신의 집에서 같이 밤을 지새우곤 했다.
김 교수와 함께 술을 마시던 벗 중에는 두 살 어린 ‘최연소 입학생’ 조국 교수도 있었다. 1학년 때 같은 반(3반)이었던 두 사람은 학부 시절 ‘절친’이었다. 1학년 여름방학, 김 교수가 전국 일주에 나섰을 때 부산에선 조 교수의 집에서 묵었다. 김 교수는 “조국의 아버님이 훨씬 더 멋있고 호남이셨다”고 회상했다. 조 교수는 법대 편집부 ‘피데스(Fides·고대 로마에서 신앙·신의를 의인화한 여신)’와 학생회에서 활동하던 운동권 청년이었다. 김 교수는 “당시에도 경상도 사투리가 강했던 조국의 잘생긴 외모는 이대 등 다른 여학교에까지 알려질 정도였지만 본인은 정작 별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학부 졸업 후 헤어진 두 사람은 90년대 초반 미국 유학 시절 다시 만났다. 김 교수는 LA에 살았고 조 교수는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다. 두 사람은 차로 7시간 거리를 오가며 가족들과 함께 어울렸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서로의 칼럼을 읽고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주는 조언자였다.

인스티즈앱
윈터 타투 따라한 팬들 심정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