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7단이 간곡하게 요청해서 받아들이긴 했지만조훈현은 제자를 둘만큼 여유로운 입장이 아니었다.서로 집도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에 고작 10살짜리인 제자를 두려면 아예 집에 들여앉혀놓고 내제자로 삼는 수밖에 없었다.그러려면 방이 부족해서 새로 이사까지 해야했다.언론에서는 이창호의 부모로부터 거액의 뒷돈을 받은것이 아니냐고 입방아를 찧어댔다.하지만 조훈현의 동기는 단순했다.자신 역시 한푼도 들이지 않고 일본의 스승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기에이번엔 자기 차례라고 생각했을 뿐이다.막상 제자로 이창호를 받아들였지만,생각보다 천재형은 아니었다.조훈현 자신은 천재형 바둑기사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보았고그의 주변에서도 소위 말하는 천재들을 많이 보았지만이 아이에게는 그런것이 느껴지지 않았다.오히려 속이 답답해 죽을 정도로 이 아이는과묵했다.제자의 의견을 듣고 나서"그렇게 두는것도 나쁘지 않네. 그런데 이 길이 더 간명하지 않니?"돌아오는 것은 말은 없고 제자의 손가락만으로 표현되는 수화스승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판단을 접고 싶지 않았던 이창호결국 이창호는 입단에 성공하게 되고기어이 초딩때(13살) 우승컵을 하나 들어올리는가 하면역사상 유례가 없는 치열한 사제간의 공방이 시작된다.처음으로 스승을 넘어서고자 했던 29기 최고위전제29기 최고위전 최종 5국제한시간: 5시간초읽기: 60초 5회덤: 5집 반흑 이창호 4단(중딩) / 백 조훈현 9단<해설>너무 빨리 커버린 제자이미 이무렵쯤 이창호는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었다.축구로 치면 프리미어리그에서 스승과 제자가 FA컵과 칼링컵 결승에서 만난 것이다.어린 창호가 한 기전에서 도전자가 된 것만으로도 ‘바둑계가 혼절할 일(당시 바둑잡지의 표현)’인데 양기전에서 도전자로 나서다니…. 결국 창호의 쿠데타는 3:1(최고위전), 3:0(패왕전)으로 진압되었느나 아무리 후하게 잡아주어도 5년이상 빨리 다가온 제자의 도전에 스승은 적잖이 당혹스러워 했다.<흑> 스승님 조금 지나치신것 아닙니까<해설> 흑이 은근히 백 세력을 견제함<백> 어딜 스승님 안방을 넘보느냐 내가 좀 거칠게 대해줄게^^<해설> 백의 세력 속에서 자리를 잡으려는 흑<해설> 적 돌을 공격하는 이유는 꼭 적을 사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다.부수적 이득을 통해 바둑을 이길 수 있다면 목숨을 살려주고 다른 이익을 취한다.<흑> 스승님 너무하시지 말입니다.<해설> 백이 세력을 만드려고 자세만 잡으면 절묘한 타이밍에 침입하는 흑<해설> 5시방향에 침입을 성공한 대신 중앙 흑은 공격을 당함<해설> 스승의 현란한 발놀림<해설> 흑이 갖혀버렸지만 백의 포위망이 허술하다.스승은 일부러 무리를 하면서 혼전을 유도하고 있다.수비력 하면 이창호지만 공격력 하면 당대에 스승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해설> 스승의 현란한 발걸음과 달리 한칸한칸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흑평소에도 이창호 바둑을 해설하는 많은 프로기사가 이창호의 수에 의문을 나타낸다"저건 너무 느리잖아?" 하지만 느림이야 말로 이창호 바둑의 미학."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지 않는다"느리면서 안정을 추구하는 이창호를 두고 한 말이다<참고도> 백 입장에서는 1로 차단하고 싶다. 세력이 엄청나다<참고도> 그러나 백이 약점이 많아 버틸수가 없다. 따라서 백은 1로 두지는 않는다.<해설> 공격당하던 흑돌이 어느정도 안정을 찾고 세력 vs 실리의 구도로 계속 이어진다<백> 창호야 방심하면 안되다잉~<해설> 한방 얻어맞았다. 일반적으로는 백의 무리이지만 지금은-<해설> 3:7의 상황이 6:4로 바뀌었다. 이래서는 백이 편하다<해설> 백이 미세하게 우세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뒤에서 턱밑까지 뒤쫓아오는 적이 두렵다.두려움은 무리수를 만든다. 바둑은 초반에 유리했던 사람이 지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해설> 흑이 오히려 잡혀버렸다. 하지만 흑은 일부러 잡힌것이다. 흑이 부수적인 이득을 얻었다.<해설> 최후의 승부 포인트. 1,2,3 중 한곳을 선택해야 한다. 당신은 빌딩의 꼭대기에 있고 눈은 가려져있는 상황이다.이 상황에서 다리를 최대한 뻗어야 한다면 당신은 얼마나 뻗을 것인가?너무 뻗으면 빌딩 아래로 추락하고 말것이다.그렇다고 소심하게 다리를 뻗다가는 바둑을 지게 된다.당신은 어디를 선택하겠는가? <참고도> 백집을 부수고 싶은 마음에 너무 멀리간 특공대는 살아돌아오지 못한다.<해설> 이번엔 너무 소심하게 다리를 벌렸다. <흑> 이것이 저의 선택입니다.<해설> 분명 중반에 백이 유리했지만 지금은 누가 유리한지 알수가 없다<해설> "묘한 바둑이야. 계산이 아주 뛰어나거든. 어쩌면 마무리는 나보다 강한 지도 몰라."제자가 입단할 무렵 스승이 내린 평가이다. 결국 이 바둑에서 거북이 제자는 한걸음 한걸음 추월을 하더니 결국엔 스승에게 1집도 아니고 0.5집을 이기게 된다. 이후 조훈현 World는 급격하게 무너져갔다.90년 2월 최고위(3-2 승)로 봇물을 튼 이창호는 이 해 국수전(3-0 승) 하나를 더 접수해 단숨에 2관왕에 오른 데 이어 91년 최고위전(3-2 승, 이번엔 2연패 후 3연승 쇼였고 첫 타이틀 방어 기록이었다)을 방어한 후 대왕전(3-1 승), 왕위전(4-3 승), 명인전(3-0 승) 등 3개의 타이틀을 또다시 접수, 그때까지 갖고 있던 제왕전, 박카스배와 함께 순식간에 7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피곤했던 바둑을 끝내고 패자 조훈현은 지친 걸음으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승자 이창호가 큰 죄를 지은양 뒤를 따랐다. 조 국수의 사모였던 부인 정미화씨는 제자의 승리를 축하해줘야할지, 남편의 패배를 위로해야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스승과 제자가 계속 동거하기가 어색해지고 결국 이창호는 중학교 졸업과 함께 독립을 하게 되며 기묘한 동거는 막을 내린다.이긴 자도 진 자도 침울한 대국현장. 22기 명인전 도전3국. 3-0으로 이창호가 이겼다. 스승은 종반에 들어서면 속수무책으로 급격히 무너지곤 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