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 이전의 시대에는 종교가 세상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소아시아 이오니아 지방의 철학자 탈레스는 이 세상의 궁금증에 대해서 종교가 아닌 나름대로 합리적 논리로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탈레스는 이 세상은 한 가지의 근본물질로부터 만들어 졌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물이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탈레스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는 이 세상의 근본물질은 물이 아닌 아페아라는 물질로 이루어 졌으며 물 역시 이페아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 아낙시메네스는 다시 스승의 이론을 뒤집고 이 세계의 근본물질은 공기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당대에 유명했던 또 다른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본 물질은 물, 아페아, 공기와 같은 구체적인 물질이 아닌 ‘수’라는 추상적인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을 연구한다면 우주만물의 비밀 역시 알아낼 수 있다고 주장 했습니다
한편 이 이후의 철학자들의 주요관심은 근본물질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꽃은 시들고 계절은 바뀌는 것처럼 이 세상은 변화하지만 그 꽃에서 나온 씨앗에서 다시 꽃이 자라고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는 것처럼 변화하는 가운데에서도 불변하는 규칙성은 철학자들의 큰 호기심을 자아냈습니다 파르메니데스는 만물은 불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만물은 불변할 뿐만 아니라 운동도 불가능하며 하나의 일자(한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파르메니데스가 왜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지 논리추론 과정을 찾아보면 아주 골 때립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변화는 무엇이냐는 반론에 파르메니데스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변화는 감각의 착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제자 제논은 제논의 역설을 만들어서 스승의 주장에 힘을 실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런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에 반하여 모든 만물을 흐르고 변하는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모든 만물은 마치 불처럼 끊임없는 변화하며 이것을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로 정의내리기도 하였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세계는 물질이나 현상의 끊임없는 대립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훗날 헤겔의 변증법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엠페도클레스는 “어 그럼 미시세계에서는 파르메니데스의 말처럼 불변하고 거시세계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변화하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엠페도클레스는 이에 만물은 불, 물, 흙, 공기의 4가지의 원소라는 근본물질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소론을 더 발전시켜서 만물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세계는 원자 또는 원자가 없는 빈 공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한마디로 신이나 정신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을 아예 배재해버렸습니다)
그리스의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민주정이 꽃피기 시작하면서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유래 없는 황금기를 맞게 됩니다 민주 정치가 발달하고 시민들의 의식이 중요해지면서 철학의 주요관심이 세계에서 인간에게 초점이 맞춰지게 됩니다 한편 정치 과정에서 더 높은 사회적인 위치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언변술이 요구되었습니다 이에 소피스트라고 불리는 무리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 언변술을 가르치게 되는데 이 대표적인 인물로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를 뽑습니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말로 그의 사상을 함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로타고라스는 ‘어떤 지역에서는 선한 행동이 어떤 지역에서는 악한 행동이 되고는 한다’라고 주장하며 진리라는 것은 인간이 정한 기준이며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 하였습니다 고르기아스는 인간의 능력은 너무 한정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을 펼치기도 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소피스트의 의견에 반대에서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진리란 존재한다고 주장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덕’을 밝혀서 영혼을 정화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를 위해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서 상대방이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되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산파술을 통해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 후에도 산파술을 계속한다면 ‘착함’ ‘아름다움’ ‘좋음’ ‘경건함’ 과 같은 개념을 명료하게 만들어지며 이를 통해 우리가 보편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서양철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뽑히곤 합니다 플라톤은 이 세상은 모든 ‘것’은 모두 궁극적인 형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이데아’라고 불렀으며 이 세상은 이데아의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사람의 영혼은 육체에 깃들기 전에 이런 이데아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영혼이 육체에 깃들면서 이데아의 대부분을 망각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물의 이데아를 흐릿하게나마 인식하기 때문에 다른 사물들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들어 사람들이 여러 종류의 개를 보고 그것을 ‘개’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을 플라톤은 사람들이 개의 이데아를 인지해서라고 주장했습니다 모든 이데아 중 가장 궁극의 이데아, 즉 이데아 of 이데아는 ‘선’의 이데아라고 보았으며 플라톤은 우리가 이성의 활동을 통해 이러한 이데아들을 상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주장했던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를 이데아론으로 승화시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플라톤은 인간이 지혜, 용기, 욕망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국가도 그에 대응하는 지배자(지혜), 전사(용기), 시민(욕망)의 계급으로 귀성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배우자와 자녀를 소유해서는 안 되며 결혼은 금지되고 자녀는 국가에서 데리고 가서 양육을 하게 되어집니다 국가에서 자녀를 교육시키게 되는데 그 아이들의 역량에 따라서 계급이 정해지게 되며 가장 뛰어난 아이들만이 선발 되서 철학을 배우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사람 소수 특히 이데아를 가장 잘 직관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플라톤은 아무리 여자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가장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다면 마땅히 통치자가 되어서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로서는 엄청 진보한 생각이었습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 못지않게 서양철학에 큰 영향을 준 철학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가지의 가위에는 한개의 가위 이데아가 존재한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반론을 제기하고 각각 가위마다 질료와 형상(플라톤의 이데아와 흡사합니다)이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모래성을 예로 들면 모래가 질료면 성의 형태가 형상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이론을 좀 더 심화시켜서 각 사물마다 질료인, 형상인, 목적인(그 사물이 존재하는 목적), 작용인(그 사물을 만든 것)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사람이 어떤 사물을 인식하는 것은 사람이 각 사물의 이데아를 인식해서가 아니라 범주의 과정을 통해서 인식한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이 개를 개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개를 보면서 동물의 범주를 인식하고 그 다음에 포유류의 범주를 인식하며 그 다음으로 개의 범주를 인식하게 되면서 저것이 개라고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플라톤이 이성을 강조하고 경험을 부정적으로 본 것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뿐만 아니라 경험(범주에 대한 지식을 가지려면 경험을 통해서 알아야하므로)도 중시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범주에 대해서 연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논리학의 체계 역시 발전시키게 되는데 삼단논법 역시 이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창시한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위에서 언급한 목적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모든 사물에 존재하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사람 역시 목적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의 목적인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덕을 따르는 능동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위해서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중용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 소심-용기-만용, 이때 중용은 용기)
아리스토텔레스는 벌이나 양이 군집을 이루려는 습성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 역시 사회적으로 모이려는 본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국가는 이러한 사람들의 본성 때문에 생겼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이런 국가 안에 속할 때 인간은 덕을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긍정적인 정치체제로 군주정, 귀족정, 혼합정 부정적인 정치체제로 참주정, 과두정, 빈민정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부정적인 정치체제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지도자는 충분한 자격을 가져야 하며, 지도자와 시민들 모두 합의한 법을 따라야 하고, 마지막으로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을 바람직한 인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철학을 이어받되 플라톤과 상당히 다른 모습의 철학적 체계를 구축하게 됩니다 이 둘의 철학을 비교하자면 플라톤의 철학이 직관적이고 형이상학적 면모가 강하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의 철학은 분석적이고 과학자의 면모가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의 철학은 훗날 서양철학의 양대 주류가 되게 됩니다 플라톤의 철학은 중세철학에서는 교부철학, 근대철학에서는 합리론, 현대철학에서는 대륙철학으로 계승되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중세철학에서는 스콜라 철학, 근대철학에서는 경험론, 현대철학에서는 영미철학으로 계승되게 됩니다
그 이후 알렉산더 대왕의 집권과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게 되면서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가 출현하게 됩니다 스토아 학파는 금욕적인 삶을 중시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점심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주의를 주장했는데 이때 쾌락은 방탕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혼란으로부터 해방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헬레니즘 말기에는 플라톤의 이론을 재해석한 신플라톤학파가 나타났습니다 신플라톤학파 중 가장 유명한 철학자 플로티누스는 선의 이데아론을 재해석한 유출론을 주장하였습니다( 모든 만물은 완벽한 일자로부터 흘러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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