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먼저 현재 다음 인기글 장동민 관련 게시글에 달린
모 남성 카페의 댓글을 보고 작성합니다
아래는 지난번에 올렸던
'장동민으로 보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비겁하기'
글을 그대로 가져온 겁니다
아래 노정태 칼럼의 부분을 꼭 봐주십시오
장동민과 같은 사람이 왜 문제인지,
또 저기서 언급한 약자라는 개념,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언급됩니다
아래는 젊은 남성 논객 노정태님의 칼럼입니다
(지난번 루저녀에 대해 속시원하게 칼럼을 적어주셨던 분)
한때 논란이 일던 야후의 '윤서인' 작가에 대한 비판글로 작성된 것이나
똑같이 만화, 개그의 소재가 주로 약자가 된다는 면에서
장동민을 바라보며 느끼는 불쾌감의 이유를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로 현재 여러 에스엔에스, 남성싸이트 등에서는 장동민을 비판하는 여론을
특정 여성싸이트, 여성단체(이미지가 안좋아진 곳들) 로 묶어 말하며
장동민을 욕하는 사람들 = 여성일베 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있는데
장동민에 대한 불쾌감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 말할 수 있다면
저런 말에 휩쓸리지 않고 여성을 향한 프레임에서의 탈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약자에게 솔직하고 강자에게 비굴하기
노정태
그놈의 '소녀시대 만화'가 도화선이 되었지만, 웹툰 작가 윤서인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는 비단 그 지점에만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워낙 다방면으로 수많은 주제를 다루었고 그 각각에서 용납되기 힘든 어떤 본질을 건드리고 있다. 나는 그 모든 요소를 관통하는 하나의 코드를 말해보고자 한다.
디씨뉴스의 기사로 뜬 "소녀시대 성희롱 논란 작가, 과거 만화까지 논란"을 보자. 이 만화에서 윤서인은 '다니엘'이라는 단어가 과거에는 '다니엘의 집' 등에 모여 있는 장애인들을 지칭하는 뜻으로 많이 쓰였는데, 지금은 다니엘 헤니의 등장으로 인해 미남을 더 빨리 연상시킨다는 내용을 뻔뻔스럽게 그려놓고 있다. 캡처된 리플을 보면 그는 항의하는 독자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다니엘 학교는 정신지체장애인을 위한 시설이었지요.
당연히 정신지체아 이미지를 그려놓은거구요.
정신지체아는 입가에 침흘리게 그려야지 눈부라리고 똑똑하게 그릴순 없죠.
장애는 장애일뿐 그게 비웃을일이라고도 나쁜거라고도 한적없습니다.
스스로 편견에 가두지 마세요. 누구나 오늘부터라도 장애인이 될수있습니다.
장애인은 어디서 장애라는 단어만 보여도 발끈발끈해야하나요?
왜 입가에 침흘리는 다니엘 이미지를 보면 기분이 나빠져야 하는지???
윤서인의 다른 불쾌한 만화들이 가지는 사고 방식이 다 이런 식이다. '그거 사실이잖아, 나는 그냥 만화로 그렸을 뿐이야'라는 편리한 변명을 하는 것이다. 이다해가 성형 많이 했으니까 "여러분 이거 다 성형인 거 아시죠?"라고 썼을 뿐인데 리플에서 남들이 난리를 치니까 대사를 바꾸는 거고, 한국 제품들이 일본거 베낀 거 많으니까 그렇다고 말했을 뿐인데 괜히 열등감에 쩔어있는 한국인들이 지들도 어차피 일본거 좋아하는 주제에 을 하는 거다. 윤서인의 세계관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을 보며 불쾌감을 느낄까? 윤서인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우리가 '도덕'이라고 부르는 어떤 가치에 기반한 행동 체계를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서인은 약자들에게 언제나 '솔직'하게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장애인은 장애인이고 침흘리니까 침흘리는 모습을 그대로 그린다. 와, 솔직하다. 하지만 이런 솔직함이 과연 올바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윤서인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고, 디씨뉴스의 아래 달린 리플들 중에도 그런 생각에 동의하는 이들이 없잖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도덕 체계는 우리에게 사회적, 육체적, 정신적 약자들을 향해 '솔직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친절하게 대하며 부족한 지점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 어떤 불운한 요소로 인해, 혹은 타고난 성향으로 인해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강자들이 지니고 있는 편견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그 자체로 탄압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동성애자나 성적 소수자들이 사회적 입지를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는 특수한 지역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이전에 적극적이고 치열한 '보호'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장애인의 경우도 그렇다. '장애우'라는 단어가 오버스럽다고, 남사스럽다고 불평들이 많지만 그런 억지스러운 노력이 있기 전에는 장애인들이 장애인이라고 불리지도 못했다. 그냥 '바보들'이었을 뿐이다.
윤서인과 같은 저런 식의 '솔직함'은, 세상이 반 발자국 나아졌다는 것을 빌미삼아 자신들의 원초적인 폭력성을 '솔직'하게 드러내버린다는 점에서, 정말이지 반동적이고 부도덕하다. 소녀시대에 대한 만화의 내용도 결국 그것 아닌가. 솔직하게 드러나버린 아저씨의 성욕. 아, 나도 소녀시대와 떡치고 싶구나. 그는 왜 자신의 솔직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큰 반감을 불러일으키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그를 까는 사람들의 대부분도 자신들이 왜 화를 내고 왜 까는지 모르는 것 같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약자에 대한 솔직함은 강자에 대한 비굴함과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윤서인의 경우에는 본인이 강자에게 비굴하다 못해 강자에게 비굴하게 굴었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 치닫고("내가 일제시대에 살았더라면 친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본인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강자들의 무리에 끼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으며("일본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 '짱'에게 노골적인 찬사를 바치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삼성 최고에요"). 인간의 본래적인 도덕심은 이런 식의 비굴함을 보며 분노하고 짜증을 내게 되어 있다.
문제는 이런 식의 행태, 약자에게 솔직하고 강자에게 비굴한 이런 모습이 과연 윤서인만의 것이냐 하는 것이다. 굳이 이 떡밥을 물어버린 이유는 디씨뉴스에 달려있는 리플들을 보고 우려의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니까 장애인이라고 하는게 왜 안 되냐고? 그런 식의 솔직함이 과연 도덕적으로 올바른가? 그런 식이라면 피부가 검은 사람들을 지칭해서, '검다'의 어근인 '검-'과 귀엽고 작은 누군가를 뜻할때 쓰는 어미인 '-둥이'를 합쳐서 '검둥이'라고 부르면 안될 이유가 뭐가 있을까? 로니 콜먼에게 가서 당신의 솔직한 마음을 툭 터놓고 전달할 용의가 있는 사람, 손 한 번 들어보자.
도덕은 위선이 아니다. 하지만 일체의 위선을 파괴하고 나면 도덕이 갈 곳이 없다. 우리는 약자에게 겸허하고 강자에게 솔직해야 한다. 그게 올바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솔직함'이라는 칼날이 오직 만만한 자들만을 향하고, '겸허함'이라는 미덕이 오직 자기보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만을 향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시대인 것 같다. 윤서인을 비판할 때 스스로의 모습도 좀 돌아보자는 말이다. 나의 솔직함은 과연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현재 상황에서 정말 다루어야 할 논점은
장동민이라는 여성에 대한 심한 비하 발언을 한 사람이 왜 남성들의 사회에서는 수용되는가
(루저녀 사건에 열을 올리던 위의 같은 남성카페의 전혀 다른 반응만 봐도 단순한 가부장적 지배욕)
그 수용의 여파가 저런 편파적이고 부도덕한 발언, 개그를 빙자한 폭력을 저질렀음에도
그 부분에 대한 진중한 토론과 문제의식 이전에 '쉴드'가 될 수 있는 현실 자체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겁니다
애초에 장동민의 잘잘못을 따질 논제가 아니라는 것
(잘못한 것이 명백하므로)
그것이 '장동민' 이었기 때문에 수용된다는 문제의식이 있어야
장동민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여성일베라 욕먹지 않고
오히려 '쉴드' 치는 사람들이 여성혐오라 욕먹을 수 있는 정당한 분위기가 이루어 집니다
+
다시 이글의 주제로 돌아와서
위의 댓글에도 있듯이 한부모 가정을 굳이 '약자' 로 나누는 시선 자체가
부담이 될 수 도 있고 그래서 불편하다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노정태 칼럼에도 언급되었듯 그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약자로 차별받던 시선에서 보호해주는 '철저한 움직임' 이 있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말인 겁니다
사회가 그들을 약자로 인정하고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편견이라는 시선이 사라진 상태에 이르러
자꾸 '약자'라 언급하는 것도 유난이다 오히려 그것도 차별이다
라는 좀 더 신중하고 깊은 다음 단계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 뿐이지
그렇다고 한 부모 가정이 특정한 개그의 소재로 이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주장을 펼치며 그래서 개그는 개그일 뿐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위의 노정태 칼럼에도 나와 있듯
세상이 반발자국 나아진 것을 핑계로
자신들이 가진 원초적 폭력성을 들어내는 것 뿐입니다
애초에 이 문제는 장동민의 잘못이 명백하므로 장동민이라는 연예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방향의
논제로 진행되어서는 안되는 이야기인데
아주 재밌고 우습게도 그 본질적인 문제, 사회적 도덕의 결함과 이야기에 대한 것보다
장동민을 비난하는 여론은 여성일베다 라고 주장하는,
먼저 칼을 던진 사람보다 그 사람을 향해 비난하는 여론이 더 나쁘다라고 주장하는
아주 이상항 상황에 도달했습니다
장동민이라는 사람이 '여성을 욕하여' 비난 받는 것이 아니었다면
이런 상황이 오지도 않았겠죠
모든 사건, 매 순간의 여성혐오라는 지배와 마초의식에 사로잡혀
여성에 관한 프레임과 틀을 만들어 이중논리가 펼쳐진 것을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봐왔습니다
남녀를 떠나 정상적인 도덕관념을 가진 '인간'이라면
장동민이라는 사람에 대해, 그가 저지른 문제의 본질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파악하고
적어도 그를 '쉴드' 치는 행태는 벌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자신들이 정말 어떤 의도로 장동민을 쉴드치고
그 비난 여론이 무엇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지를 잘 파악해 보시기 바랍니다
장동민이라는 사람이 보호받는다고 하여 그의 잘못이 잊혀지는 것도 아니며
여성들이 아, 저런 발언 정도는 할 수 있구나 용서해야지
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여성에게 가혹하고 남성에게 관대한 가부장적 이중논리는
그저 여성을 지배하기 위한 이기적이고 '못된'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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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광고주고 욕먹어서 광고비 까발린 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