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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l조회 466 출처
이 글은 9년 전 (2016/4/18) 게시물이에요

고래

엄마, 이제 어둠이 무서울 시기는 다 지났나봐요. 빛을 보았던 기억이 흐릿해지는 만큼, 저는 저를 둘러싼 어둠이 안락하게 느껴져요, 엄마. 저는 고운 피부에 허리까지 내려오던 검은 머리카락을 가졌던 아이였죠, 엄마. 저는 높은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가졌던 아이 성악가의 꿈을 가졌던 아이. 더 보태지거나 빠진 것 없는 평범한 열여덟의 삶을 가졌던 아이었어요, 엄마. 고래의 산성강한 위액은 꿈의 일부인 것 마냥 그것을 녹여 냈어요. 존재했었다, 라는 기억 이외엔 어떤 흔적도 남겨두지 않고요, 엄마, 하지만 저는 흐르지 않을 영원한 시간과 어둠을 얻었어요. 고래가 준 영원 속에서 저는 어둠을 관찰해요, 엄마. 그거 알아요? 어둠에도 빛과 같은 색이 있다는 걸요. 어둠이 그 기분에 따라 짙은 남색으로, 백설공주의 머리카락 같은 깊은 검정색으로, 때론 흑갈색으로 표정을 바꾸기도 한다는 걸요. 제가 무슨 카멜레온도 아니고, 웃기지 않아요? 엄마. 그게 어둠의 언어라는 것을 제게 가르쳐 준 것은 고래였어요, 엄마. 저는 고래에게 어둠의 언어를 배워요. 그건 리미트나 함수 같은 것들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이에요, 엄마. 남색은 인사하는 것, 흑갈색은 추억을 이야기 하는 것, 검정색은 위로 하는 것.
어둠의 언어를 배운 이후 저는 종종 어둠과 이야기를 나누곤 해요. 영원 속에서 우리는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어둠은 제게 먼 바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어둠을 무서워 하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어둠속에서도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엄마. 하지만 어둠은 어떻게 해서 제가 이곳, 고래 뱃속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아요, 엄마. 온갖 말로 회유를 해도요. 그럴 땐 저는 토라져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아요 치사하잖아요. 가끔 고래까지 껴서 셋이서 이야기를 할 때면 고래의 뱃속은 사뭇 소란스러워 지기도 해요. 우리의 소음이 커질 때면 고래는 이따금씩 말을 멈추고 방귀를 껴요. 그럼 어둠과 저는 신이나서 고래를 놀려요. 고래는 우리가 놀리는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시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해요, 엄마. 영원 속에서 저는 이렇게 살고 있어요, 엄마. 엄마는 엄마의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살고 있나요?
가끔 엄마 생각을 해요.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걱정이 동반되는 생각을요, 엄마. 시간을 알 도리가 없으니 걱정이 가져오는 답답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저는 가진 게 많았지만 엄마에겐 저뿐이었잖아요. 아빠를 묻고 돌아왔던날 좁게만 생각했던 집이 운동장 만큼이나 크게 느껴졌던 것을 기억해요. 이제 겨우 그 크기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 가끔 저는요, 아빠한테 그랬던 것처럼 엄마가 저를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저는 고래에게 화풀이를 해요, 엄마. 왜 나를 잡아먹은거냐고, 왜 엄마에게서 나를 빼앗았냐고요. 그럴 때마다 고래는 내가 너를 잡아먹은게 아니라 네가 스스로 흘러 들어온거야, 라고 말해요. 그렇게 말하는 고래의 목소리가 참 슬프게 느껴져 저는 더 이상 고래에게 하를 내지 못해요.
고래도 나 만큼이나 불쌍하다고 언젠가 어둠이 말해준 적이 있어요, 엄마. 대양을 헤엄쳐 나가는게 고래의 꿈이었대요. 그러나 고래는 대양의 입구도 채 보지 못하고 여기로 가라앉았대요, 엄마. 그때 고래의 속은 이미 잔뜩 병들어 있었다고 말해준 것도 어둠이었어요.
얼마 전 어둠이 제게 말했어요, 엄마. 사람들이 곧 고래를 들어올릴지도 모른다고요. 이렇게나 늦게? 고래를 들어올리는 일은 역시 힘든 일이구나, 무거우니까. 제가 말하자 어둠은 고개를 저으며 고래를 병들게 한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라고 한숨처럼 말했어요, 엄마. 그거 들었어요? 곧 노란 은행나무 숲이 생긴대요. 고래가 육지로 들어올려지면, 저는 엄마 곁으로 갈 수 있대요, 엄마. 환한 햇살이 짓는 웃음도, 푸른 하늘의 냄새도 다시 느낄 수 있대요. 엄마의 얼굴도요, 엄마. 그 때가 되면 우리 같이 은행나무 숲을 걸어요. 그 날이 가을이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엄마가 저를 보지 못하더라도, 제가 계속 엄마 손을 잡고 있을게요. 함께 걸어요.

http://cafe.daum.net/mpj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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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sing pavements  노래 좋아요
슬픈 일을 정말 예쁜 말들로 잘 풀어낸 것 같아요
9년 전
대표 사진
메카트로닉스
너무 끔찍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안지워질 상처가 될거같다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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