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종, 엑스트라그냥 지나가야 한다말 걸지 말고뒤돌아 보지 말고모든 필연을우연으로 가장 해야 한다누군가 지나간 것 같지만누구였던가 관심두지 않도록슬쩍 지나가야 한다중요한 것은 그 누구의 기억에도남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그냥 죽어야 한다경우에 따라선몇 번을 죽을 수 있지만처절하거나 장엄하지 않게삶에 미련 두지 말고되도록 짧게 죽어야 한다잊지 말아야 할 것은그 죽음으로살아남은 자의 생이 더욱빛나야 한다는 것이다인생이란 배당받는 것이다주어진 생에 대한 열정과 저주모든 의심과 질문들을 반납하고익명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세상을 한번, 휙사소하게 지나가야 한다다시한번 말하지만 끝끝내우리는 배경으로 남아야 한다이해인, 나를 키우는 말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나도 정말 행복해서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나도 잠시 아름 다운 사람이 되어마음 한자락이 환해지고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나는 말하면서다시알지나희덕, 사흘만양쪽 무릎 뒤 연한 주름살 속에내 귀가 달렸으면그래서 귀뚜라미가 날개를 부벼서 내는저 노래를 들을 수 있었으면귀뚜라미를 들을 수 있었으면꽃들을 맴돌며 절박하게 잉잉거리는저 벌떼의 기도를 들을 수 있었으면주문도 기도도 끌어올릴 수 없는 내 마음에그 소리라도 들어왔으면노래도 사랑도 낙과처럼 저문 가을날과수원에 떨어진 사과 한 알을 들고산누에나방처럼두껍고 단단한 고치를 틀고 앉아한 사흘만 지낼 수 있었으면그 사흘의 어둠을인간계의 삼십 년과 바꿀 수 있었으면배 고프면 잘 익은 쪽부터 사과를 베어 먹고그렇게 사흘만 인간의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었으면내 귀가 내 귀가 아니었으면최석우, 사랑은 끝났다는데사랑은 끝났다는데발길은 떨어지지 않고내 모든 꿈 버리고 바꾼 그대가사랑은 끝났다는데발길은 무슨 미련으로 떨어지지 않고내 가난한 풀밭, 한 송이 반지꽃으로 피었던 그대가내 모든 꿈 버리고 바꾼 그대가사랑은 끝났다는데발길은 무슨 미련으로 장승처럼 떨어지지 않고최병헌, 나직하고 작은 숨소리내 가슴은 언제나반 쯤은 비어 있어문을 열면소리없는 바람이 와찰랑찰랑맑고 투명한 물소리가 되느니물소리가 되어서 고여 넘치느니아련한 그림자로흔들리는 내 마음을그대는 알까?떠나가면 다시 오고오면 다시 떠나듯이그대여나직하고 작은 숨소리로 와반쯤 찬 가슴을 비워주거나반쯤 빈 가슴을 채워주소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