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근데 박수를 칠 만한 이유는 좀체 떠오르지 않았어요소포를 부치고빈 마음 한 줄 동봉하고돌아서 뜻모르게 뚝떨어지는 누운물 저녁무렵 지는 해를 붙잡고 가슴 허허다가 끊어버린 손목여러갈래 짓이겨져 쏟던 피 한줄손수건으로 꼭꼭 묶어 흐르는 피를 접어 매고그렇게도 막막히도 바라보던 세상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 홀로라도 넉넉히 아름다운 그대지금도 손목의 통증이 채 가시질 않고한밤의 남도는 또 눈물겨웁고 살고 싶습니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뒷모습 가득 푸른 그리움 출렁이는그대 모습이 지금 참으로 넉넉히도 그립습니다 내게선 늘 저만치 물러서 저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여풀빛 푸른 노래 한 줄 목청에 묻고나는 그대 생각 하나로 눈물겨웁니다신현림, 이별한 자가 아는 진실담배불을 끄듯 너를 꺼버릴 거야 다 마시고 나 맥주 캔처럼 나를 구겨버렸듯너를 벗고 말거야그만 너를 잊는다고 다짐해도북소리처럼 다시 쿵쿵 울린다 오랜 상처를 회복하는 데 십년 걸렸는데너를 뛰어넘는 건 얼마나 걸릴까그래 너는 나의 휴일이었고희망의 트럼펫이었다지독한 사랑에 나를 걸었다뭐든 걸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다네 생각 없이 아무일도 할 수 없었다너는 어디에나 있었다해질녘 풍경과 비와 눈보라바라보는 곳마다 귀신처럼 일렁거렸다온몸 휘감던 칡넝쿨의 사랑그래 널 여태 집착한 거야 사랑했다는 진실이 공허히 느껴질 때너를 버리고 나는 다시 시작할거야윤중호, 죽지 않기 위하여춥다곱은 손을 비비며 아침을 맞는다성에 낀 유리창에 손톱으로나는 오늘 아침에도 숨을 쉰다라고 쓴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죽지 않기 위하여몇 번 부대끼며 거리로 나서면한 번 더 우스워지는 꿈생각할 줄 안다는 가장 빛나는 선물로우리는 이만큼 슬펐잖은가 삶의 이유를 죽음에서만 찾아야 하는우리들의마른하늘을 위하여마른기침과 변신을 필요로 하는또 다른 나와 내일을 위하여입김으로 곱은 손을 녹이며 쓴다살아야지 살아야지이종인, 너에게로 가는 비창 밖에는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비가고집스럽게 내리는데이제는 가야 한다고떠나야 한다고 수없이 뇌어보지만있어야 할 곳도떠나야 할 곳도지우지 못한 이야기로 남아손에 든 사랑은 비에 젖어 부풀어 오르는데약속도 없이 기다리는 당신의 땅에도당신이 들고 있는 사랑에도하루종일 비가 오는가요오늘 버려야 할 것에도 정은 남는 것정처없이 길을 걷다가그 길 끝에서 당신을 만나지 못해다시 새 길을 내어 보지만당신 눈동자 같은 새 길을 내어 보지만멈추지 않는 비는가슴에 수많은 추억만 찔러놓고새로 난 길을 차지하고 앉아포기할 수 없는 그리움싸늘히 지우는데김종목, 그런 사랑으로 살다 가고 싶다깊은 강물이 아니라얕은 강가를 흐르는 맑은 물처럼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눈도 맑게 마음도 깨끗하게얕은 강물처럼 흐르고 싶다 흐르는 강물을 거스리지 않듯흐르는 세월에 몸을 맡겨 둔 채 하루의 노동만큼 먹고 마시고주어진 시간만큼 평안을 누리고그러다 오라하면 가면 그만인 인생 굳이 깊은강물처럼 많은 것을 거느리고많은 것을 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저 졸졸졸흐르는 얕은 강가에서누구든 손발을 씻을 수 있고 새와 짐승들도마음 놓고 목을 축일 수 있는그런 사랑으로 살다 가고 싶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