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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이공계 학생으로 살아남기.
한국에서 이공계 대학원생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일단 그들의 생활을 한번 들여다보자. 내 주변에 있는 대학원 선배들을 보면 보통 아침 9시에 학교에 나온다. 실험실에서 실험을 좀 하다가 수업시간이 되면 수업을 들으러 간다. 본인 수업뿐만 아니라 교수님의 수업에 따라 들어가 조교일 까지 해야 한다. 수업을 끝내고 공부를 좀 하다보면 실험 해야할 것들이 밀린다. 밀린 실험을 하고 퇴근하려고 치면 오후 10시~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다. 주말, 공휴일은 당연히 없는 것이며, 거의 항상 출근해 있다. 2013년 기준 한국 이공계 대학원생의 평균 근무시간은 주당 64.36시간이다. 일 많이 하기로 소문난 우리나라의 평균 근로시간 43.86시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64.36시간을 근로하고 학교 수업까지 듣는 다고 하면 주말도 없이 숨도 안 쉬고 일, 공부만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가? 이들이 받는 돈은 석사는 보통 월평균 80만원, 박사의 경우 월평균 120만원. 등록금을 때고 나면 거의 남는 것이 없는 돈이다. 이렇게 최저시급도 보장받지 못하는데 에다가, 국가에서는 이들을 ‘일을 하고 돈을 받지만 근로자는 아닌 사람’으로 구분한다. 당연히 노조도 없고 4대 보험도 없다. 이런 열악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과학에 대한 열정과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면서 오늘도 자신의 젊은 시절을 바쳐 공부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이공계 대학원생 들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많은 남자 이공계학생들을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게 했던 가장 커다란 유인책 (어떻게 보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이 바로 병역 특례이다. 과학자에게 젊은 시절 2년은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다. 과학자가 가장 창조적일 수 있는 젊은 시절의 2년을 군대에서 보낸다면, 이는 개인에게 굉장한 경력 손실일 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큰 손해이다. 이러한 경력 손실을 막아주고 이공계학생들이 국내에서 연구 활동을 계속하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이 병역 특례 제도이다. 내 주변의 많은 이들도 이공계 병역특례를 생각하고 군대를 다녀오지 않고 대학원으로 진학하였다.
그런데 오늘 뉴스에 2019년까지 박사 전문 연구 요원을 폐지하고, 2023년까지 병역특례 전체 폐지를 계획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 기사가 나오자마자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이제는 빨리 군대 갔다 와서 탈조선 하는 것이 답이다.” 라는 것이다. 병역 특례가 없어진 마당에, 이공계 대우가 아주 열악한 한국에서 굳이 대학원을 갈 필요가 없이, 군대를 갔다 와서 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과연 이렇게 외국 대학원을 진학한 학생들이 과연 다시 한국에 돌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가능성이 그렇게 높지는 않을 것이다.
파스퇴르가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있다.”라는 말을 한지도 100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 슬로건은 이렇게 바뀌었다. “과학자에게도 과학에도, 국경이 없다.” 과학 기술은 현대 사회에서 경제발전의 핵심 요소가 되었고, 모든 국가가 앞 다투어 고급 이공계 인력을 유치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이공계 인력 유치에 힘쓰기는커녕 오히려 남아 있을 이유를 하나 둘씩 더 없애 가고 있다. 개인의 애국심에 호소하여 인력을 잡아둘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국가가 나서서 한국에 있을 이유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우수인력들이 굳이 한국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서강대 전자공학과) 대통령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항상 하는 이야기가 신성장 동력을 찾고, R&D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R&D는 누가 하고, 신성장 동력은 누가 찾는가? 전부 우리나라 이공계학생들이 하는 것 아닌가. 과연 이공계 병역 특례를 폐지하고 4000명의 현역을 늘리는 것이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인가. 대한민국 이공계가 처한 열악한 현실에서 병역 특례까지 폐지 한다면, 아마 더 이상 한국에 남아 있을 인재는 없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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