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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두부ll조회 2374l 9
이 글은 7년 전 (2016/5/26) 게시물이에요





      태권도의 뿌리는 가라데인가? | 인스티즈



결론부터 말하자면, 태권도는 가라테를 모태로 만들어졌다. 물론 가라테도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게 정설이고, 중국에서 오키나와를 거쳐 일본에 상륙한 무술이지만, 어쨌거나 대다수의 태권도 원로 사범들이 일본에서 가라테를 배워 온 이상, 태권도의 모태는 가라테라고 봐도 무방하다.

태권도 계의 전통 무술운운하는 역사왜곡은 비유를 하자면, 이미 일본음식화 된 카레를 한국에 들어와서 살짝 재료와 레시피의 변화를 주고 한국식 카레로 변형시키고 이름도 바꾼 후 인도커리나 혹은 일본 카레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영국식 카레로 그 기원을 둔다던지 아니면 일본도 어차피 영국에서 카레를 들여왔으니 "일본식 카레"로부터의 유래를 부정하고 한국식 카레의 독자성을 주장하며 밥에 부어 먹으니 비빔밥에서 시작된 한국의 전통 음식에 살짝 일본이나 영국의 영향이 들어갔음을 주장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가라데는 본래 일본 본토가 아닌 류큐 전통무술로, 중국에서 기원한 무술이다. 17세기 일본 사쓰마번의 침략에 의해 무기를 소유할 수 없게 된 류큐(지금의 오키나와) 무인들이 수련했다는 전설이 널리 전해지고 있다.

1625년에 명나라 사람 진원빈이 류큐에 와서 자국의 권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고 이것은 가라데 역사에서 꼭 다루어지는 사실 중 하나이다. 류쿠말의 '티(手, ティー)'는 ''을 가리키는 말이며 동시에 기술 전반을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무인의 '디'는 '무술'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류쿠에서는 중국에서 전래되었다고 알려진 무술, '토디(唐手, トゥーディー)'. 즉, 당수가 있었다.[9]

1929년, 후나코시 기진이 사범을 맡고 있던 게이오 대학의 가라데 연구회에서는 '가라테'의 가라를 반야심경의 공(空) 사상에써 따와 표기를 '당수(唐手)'에서 '공수(空手)'로 수정한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일본의 다른 무술(검도, 유도 등)이 도(道)라는 표기를 쓰는 것을 받아들여, 가라데에도 도(道)를 붙이게 된다. 따라서 '공수도(空手道)'라는 한자 표기가 생겨났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일본의 군국주의가 심화되는 상황이라, 중국을 연상시키는 당수(唐手)를 공수로 바꾼 것이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선 일본에 비해 당수라는 이름을 꽤나 오래 사용했었다. 60대 이후 분들은 젊은 시절엔 당수라는 이름이 태권도라는 이름보다 익숙했을 정도.

또, 맨손 타격 기술로 특화하기 위해 이나 쌍절곤의 기술 등 무기술을 제거하고, 유도와의 차별화를 위해서 본래 '데'에 있던 유술도 제거했다. 한편 일본무도계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유도의 도복과 급과 단, 각 급수와 단수에 따른 띠 체계를 도입했다. 이렇게 해서 현재와 같은 '가라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라데는 일본에서 그렇게까지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 무술'이었다. 가라데가 일본의 무술로 인정된 것은 1933년에 이르러서야 있었던 일이고, 그나마 '유도/유술'의 일종으로 분류되어 유도가가 가라데의 승급을 심사하는 굴욕적인 대우를 받기도 했다. 당시 인식 또한 유도는 상대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전통무도, 가라데는 단순히 두들겨 패는 하층민들이나 익히는 무술 혹은 싸움질, 이라는 왜곡된 가치관이 만연했다. 소설이나 영화에도 항상 주인공 역은 유도가고, 반대로 악역은 거의 가라데가였다. 이런 면에서 보면 가라데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굳이 '' 무술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필요는 없다. 실제적으로 보자면 당시 식민지 조선인들은 일본에 진출한지 십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같은 식민지인 류큐의 (중국 기원) 무술을 배웠던 것 뿐이다.

기간도장 5대관 관장의 출신에서 보다시피 가라데를 배운 사람이 많으며 도장의 이름도 'XX관'이라는 식으로 가라데, 유도와 유사했다. 전반적으로 가라데의 형식을 빌려온 것이 많다는 것이다. 더구나 청도관(靑館)이나 송무관(武館)은 쇼토칸(松濤館)에서 글자를 따와 이름을 짓기도 했다. 따라서 초기 태권도 형성에 가라데의 영향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태권도는 어느 가라데인 단 한 사람이 창시한 무술이 아니다. 9대관 관장 중 거의 대부분이 쇼토칸 가라데를 직간접적으로 배우긴 했지만, 일부는 안 배운 사람도 있었고, 중국 권법에 능한 사람도 있었다.

체계적인 면에서 보자면, 태권도는 단과 띠 체계, 도복 등에서 가라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가라데 역시 일본에 진출할 무렵에 유도단급제도, 유도복[10]을 받아들이는 등 '유도화'를 통해 일본에 정착하려 했다. 그래서 사실 가라데도 체계화 쪽으로는 원조라고 내세울 게 못 된다. 당시 유도/가라데의 '체계'는 초기의 태권도인들이 보기에는 현대화한 무술 체계로 보여서 이를 수용했던 것 같다. 여기에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해방 되고도 꽤 오랫동안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본이 근대화의 모델로 여겨졌던 영향이 있다. 하지만 그 밖에도 태권도 발전을 위한 고민과 시행착오, 연구와 개량이 끊이지 않았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태권도의 품세가 훗날 창조한 것이고, 품세는 가라테 카타(型)식 수행체계에서 왔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사실 카타를 통한 학습체계도 중국에서 온 것이다.[11] 무술을 늘 2명이서 수련할 수는 없는 것이고 "올바른 자세"를 잡기 위해서 특정한 동작을 반복하는 수행법은 중국과 일본의 전통 무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품세를 통한 교육 시스템은 중국의 투로가 원조지만, 초기 태권도의 품세에는 가라데의 영향이 어느 정도 컸다.[12][13]하지만 현재 태권도의 중심인 태권도 경기와 품세가 따로 노는 상황이라 품세에 남아 있는 영향도 현재로선 사람의 꼬리뼈 비슷한 상황이다.[14]

가라테와 차별화를 위해 카타의 재배열->품새, 발기술 위주의 겨루기로 변경등 노력의 결과, 기술의 70% 이상이 가라데와 다르다. 지금에 와선 무술간 교류와 장단점 분석이 이미 끝난 이른바 종합격투기의 시대인지라 인지하기 어렵지만 태권도의 찍기, 뒤돌려차기, 뒤후리기 등은 90년대 이전엔 허를 찌르는 비밀기술 정도의 취급이었다.[15] 일단 80년대 쯤 물건으로 보이는 쇼토칸 가라테 강좌 동영상에서도 뒤차기 뒤후리기 내려찍기 등의 발기술이 나오긴 한다.[16] 게다가 일본에서 무려 1958년도에 제작한 영상에도 뒷차기 정도는 정식 기술로 등록되어 있다. 시합에서 안 쓴다고 태권도의 손 기술이 없는게 아니듯이 시합에서 안 나온다고 쇼토칸에 발 기술이 없는게 아니다. 다만 시합에서 사용하는 것이 어렵다보니 실용적으로 발전된 흔적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딱딱했다. 하지만 80년대 일본 쇼토칸 가라테 발차기에 찍기 뒤차기 등이 나온다고는 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라테는 과거부터 해외 무술들과의 교류가 있었다. 지금 일본 가라테 사범들도 찍기나 뒤후리기등의 발차기는 태권도 기원이라고 말한다. 가라테카들의 로우킥은 그들의 주요 기술이지만 이 역시 1960년대 무에타이와의 교류로 새로 받아들인 기술이며, 실제로도 부정하지 않는다.

ITF에 한정 짓는다면, 육체 단련과 직선적인 공격 위주로 발전한 가라데와 달리, 체중을 실어 파괴력을 극대화하는 사인웨이브 이론에서 파생된 동작 등 기술의 원리도 차이가 나게 되었다. 단, 이는 ITF 태권도에 한정된 이야기이며, WTF 태권도와는 관계가 없다.

196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발차기 기술 중심의 대련을 통한 경기가 태권도의 중심에 자리잡았다. 처음에는 풀컨택트 형식으로 호구도 대나무를 쪼개 만들고, 발차기 뿐 아니라 주먹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호구도 개량되고, 발차기에 초점을 맞추는 등, 이때부터 태권도는 더욱 가라데와는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하게 되었다.

가라데 계에서도 슨도메의 한계를 고민하여 다른 지향점을 모색하기는 했는데, 태권도와는 달리 국가적인 단일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사범 개인의 다른 무술 철학에 따라 발전 방향을 모색하다보니 부작용으로 지나친 조직 분열을 겪게 된다. 크게 경기 방식에 따라 흔히 전통 공수도로 불리는 송도관으로 대표되는 슨도메 계열, 글러브를 끼고 하는 킥복싱 계열, 극진공수도로 대표되는 안면 이외의 타격만 허용하는 풀컨택트 계열, 극진 계열에서 보다 더 나가서 종합격투기의 영향을 받아들인 계열, 본토와는 별개로 오키나와의 공수를 보존하려는 오키나와 테 계열로 분열되었다. 대충 크게 봐서 이 정도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뭐 이리 많나 싶을 정도. (...) 자세한 사항은 가라테 유파 항목 참조.

태권도도 WTF와 ITF가 다른 조직이긴 하지만, 국가의 지원을 받고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도 채택된 WTF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수련인구를 가지고 통일된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세계 전파에 매우 긍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가라데 계열에서는 극진회관이 세계화 되었고 그 중에서 가장 큰 조직을 가지고 있으나, 세계 수련인구는 1천 400만 정도로 7천만에 달하는 WTF와 비교하면 훨씬 적다.[17]

결국 오늘날 '경기 태권도'는 가라데와는 다른 무술로 변화했다. 기술 70%가 발차기이며 상당수가 기존 무술에 없던 독특한 것이며, 태권도의 발차기는 다른 무술들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태권도에서 연구를 덜 한 손기술. 특히 정권 지르기와 막기, 관수 지르기 등의 기술은 지금도 쇼토칸 가라데 기술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는 가라데 기술을 도입한 다음, 대련에 쓰이지 않다보니 기술의 발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 오직 동작만 따라하는 '신체단련용 기술'인 채로 남겨진 것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논란이 됐던 이종우 전 국기원 부원장이 충격고백이라는 신동아 기사가 있었으나, 국기원측에서는 이를 공식 부정하고 있다.[18] 신동아 기사 이후, 이종우씨도 본래 인터뷰 내용과 다르다는 항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 기사 이후 이종우씨는 더 이상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당시 해당 기사를 작성한 신동아 기자 육성철 기자는 당시 외부 기고자로 확인 결과 더 이상 신동아에 재직하지 않으며 (신동아에 직접 전화해서 확인) 인터뷰가 왜곡되었다는 주장도 있어 사실관계를 확인할려고 했으나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 신동아측에 전화 문의 결과, 신동아는 해당 기사의 진실성을 보증할 수 없다고 하였으며[19]

이종우씨의 다른 인터뷰 기사, 오마이 뉴스 인터뷰 내용은 다른데, 태권도는 부분적으로 가라데의 영향을 받았고 가라데는 중국 무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도 하였으며, 중국의 우슈가 나오기 이전에 우리나라의 고유 무술이 있었다고 하였다.

<인용>"지금이 태권도는 부분적이나마 가라데에서 유래해 왔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가라데가 어디에서부터 나왔냐가 중요하다. 일본의 가라데가 일본이 독창적으로 만든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동양 문화권은 중국으로부터 많이 나왔다.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조상들이 무조건 외국의 무술만 모방한 게 아니다. 손발을 움직이면서 하나의 무술을 완성시킨 것이 일본가라데 인데, 또 이전에 중국의 우슈가 나오기 이전에 우리나라에도 고유의 무술이 많이 있었다"



이 인터뷰 내용은 태권도가 전적으로 가라데다라고 주장한 신동아 육성철 기자가 만든 그와의 인터뷰 내용과 배치된다. 신동아 기사 하나만 이상한 거다.[20]

상기 인용문 상에 "부분적이나마"라는 표현 조차도 왜곡 그 자체이다. 태권도 창작의 주된 재료가된 무술이 가라테다. 차라리 가라테 기반으로 재창작했지만 차별화를 위해 발차기 기술과 겨루기 형태를 새롭게 발전시켰다고 하는게 정확한 표현이다. 그리고 조상님들 타령을 계속하는데 일제 시대 이전에는 조상님들이 외국 무술을 민간에서까지 널리 익히고 즐겨 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우리 고유무술 뭐가 남았는지 증거나 제대로 내놓고 저런 소리를 하면 이해하는데 내 놓는 증거가 거의 없다. 택견은 완전 딴판인 무술이라 증거로 써먹기엔 부족하고, 태권도랑 유사한 형태의 전통 무술이 없으니 내놓을 자료가 부실하고, 그러니 계속 만 하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이런 논란은 한국의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것과 전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근대, 현대에 들면서 중국, 일본의 영향을 아예 무시하는 것 때문일 것이다. 결국 태권도는 쇼토칸 가라데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현대창작무술이다.

요약

1. 태권도가 고구려 시대의 수박에서 계승되어 왔다는 건 조작이 맞음

2. 태권도는 6.25전쟁 이후 최홍의 장군이 가라데와 일부 무술을 섞어서 만든 창작 무술

3. 태권도의 도복, 품세, 띠 문화 역시 쇼토칸 가라데에서 전승되었음, 실제로 태극 1장과 쇼토칸 카타 1장은 80프로 이상이 유사함

4. 그 후 태권도는 가라데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 발차기를 특화시킴, 오히려 훗날 가라데가 태권도에서 이런 발차기에 영향을 받기도 함

5. 하지만 주짓수가 일본 유도에서 왔다고 폄하하는 사람이 없듯이 태권도 역시 전혀 폄하할 필요가 없음, 실제로 전세계적으로 수련인구는 태권도가 가라데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성공한 무술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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