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에 있었던 일인데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했던 얘긴데
익명이니까 한번 말해보고싶어요. 말해봐야 욕만 먹을거 뻔하지만 너무 답답하니까.
1살 연상의 남자와 2년 연애했고 전 올해 서른 셋입니다.
전남친은.. 그냥 그남자라고 쓸께요. 남친이라고 말하기도 싫고
여튼 그놈은 결혼에 대해 로망? 이 저보다 더 컸고 사귄지 1년이 지났을때부터 결혼결혼
결혼하자 결혼하면 결혼해서 어쩌고 진짜 결혼못해 죽은 귀신 붙은 사람같았고
전 주변에 아는 언니가 최대한 놀고싶은만큼 놀고 혼자서 해보고싶은거 다 하고 해도 늦지 않는다고 누차 말하는걸 들어와서 그렇게 간절하진 않았던 상태였어요.
내인생 책임지며 살기도 벅찬데 결혼생활에 육아까지는 상상도 안해봤고
연애 초기엔 피임약 먹다가 부작용이 피부로 올라와서 안되겠다 싶어서 그후엔 콘돔 사용을 부탁했고 피임부분은 크게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11월에 생리가 없더라구요.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콘돔이 100% 피임이 아니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신테스트기를 했고 생리예정일 일주일 지나서 두줄 확인, 테스터를 3개를 사서 했는데 셋 다 두줄이 뜬거에요.
어버버 하면서 그놈한테 그 사실을 얘기하니까 단박에 자기가 다 책임지겠다고 결혼하자고
일이 이렇게 된거 어쩔수 없지 하면서 마음 좋게 가지라고 잘된거라고하고
그런 모습 보니까 그래 이렇게 된것도 운명이겠지 그렇게 피임해놓고서도 내 애 아닌거 아니냐 의심 안하는것도 고맙고
한편으로는 일부러 그놈이 이런 상황을 만든건 아닐까 의심은 드는데 증거도 없고
어쨌든 언젠가 결혼할때는 그놈이랑 당연히 할걸로 생각해서 그게 앞당겨졌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양쪽 부모님께 인사하고 본격적으로 준비하자고 하길래 혼전임신을 알릴 자신이 없다하니까
그것도 자기가 모두 책임지고 하겠다고 우리 부모님은 그런거 흠잡는 분 아니라며 걱정말래요.
그래서 주말에 남자쪽 집에 먼저 인사 갔고, 갔다가 욕만 엄청 들었어요.
결혼전부터 행실이 참 볼만 하다고, 그말을 그렇게 크게 하시던데 그옆에서 그놈은 그냥 가만히 죄지은사람처럼 무릎꿇고 있고 나도 덩달아 무릎꿇고 죄송하다고 말하고 나왔었고
그 때 그 상황이 아직도 치가 떨릴만큼 부끄럽네요.
다 책임져 주겠다며. 걱정하지 말라며. 그래놓곤 나란히 무릎꿇고 꾸지람이나 듣고
인사드리고 나온 후에 임신했을때라 감정이 격해져서 그랬는진 모르겠는데
차안에서 울면서 소리질렀어요. 이게 뭐냐고. 니가말하는 책임이 이런거냐고.
니네 집에서의 그 태도로 어떻게 우리엄마아빠를 설득할거냐고.
결혼하지 말자고. 애는 수술을 하던 낳아서 내가 키워보던 그건 내가 알아서 결정할테니까
관두자고 지금 너는 믿을수가 없다고
그렇게 서로 뭘 말하다가 그놈이 말실수를 한거에요.
애기만 생기면 다 잘 될줄 알았다. 그런식으로 말했는데 느낌상 이 상황이 다 계획된거같아서
화내고 추궁하고 달래고 했더니
결혼은 하고싶고 나는 너무 요지부동이고
애가 생기면 당연히 결혼하게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콘돔을 몇번 몰래 찢었다고.
그 말을 듣고 미처럼 날뛰었던거같아요.
그까짓 결혼이 뭔데 니가 말하는 결혼이 뭔데
너는 니몸에서 씨뿌린게 고작이겠지만 그걸 키우는것도 나고 낳는것도 나라고
여튼 남자는 신체적으로 변하는게 없으니 니가 뭘 알겠냐며 소리를 질렀었고
남자는 진짜 손이 발이되게 빌면서 자기가 잘할거라고
도대체 뭘 그렇게 잘하겠다는건지 모르겠는데 잘할테니까 자기 믿어보라고
그래서 우리집 가서 인사하는거 보고 결정하겠다고
그리고 다음날 우리집을 갔죠.
그때 알았어요. 연애할때는 '여친'에 대한 책임감은 있었을지 몰라도
아무 생각없이 일만 저지르고보는 애랑 다를게 없다는걸.
무책임하고 대책도 없고 난 2년동안 이놈의 뭘 봤던건지
아빠는 날 쳐다보다가 담배피러 나가시고 엄마는 말도 없으시고
그러면 나한테 했던 입발린 말이라도 읊었으면 되는데
결혼하고싶습니다.. 저희 결혼시켜주세요 이런 소리를 했어요.
엄마는 그뒤로도 말없이 상차리시고 그놈 밥한끼 든든히 먹여서 집에 보냈고
아빠랑 나란히 앉아서 애기좀 하자고
사람이 참 철이 없어보인다 뭐하는 사람이냐 몇살이냐 그집은 뭐하시는 분들이시냐
그놈한테 물었어야 했을걸 저한테 물어보시더라구요.
연애할땐 서로의 집에 가지 말자고 약속이 되어있던때라 우리부모님도 그놈 처음 보셨을때였는데
내년이면 애아빠가 되야할 사람이 믿을 구석이 없어보인다 그렇게 첫인상을 내리셨대요.
그래도 사람일은 모른다고 결혼하고 애도 손에 안아보면 철이 들지도 모른다고
딸자식 미혼모 되는 꼴은 못보겠고 더더군다나 수술로 몸에 흠남는건 더 싫으니
잘 살아볼 수 있겠다 싶으면 결혼하라 하셨어요.
그래서 머릿속으론 갈등하면서도 이미 이렇게 됐으니 어쩔수 없지않나...
저도 그런 마음으로 결혼으로 마음이 기울었고 결혼날짜를 먼저 잡아놓고 식장 예약하고 그다음에 상견례를 진행했어요.
상견례도 참 가관이었어요
그쪽 부모님은 오기 싫은자리 일부러 앉아있는 티내고 우리 부모님은 여전히 말이 없으시고
우리엄마가 그래도 이렇게 됐으니 기분좋게 애들 새 길 열어주자고 말도 거시는데
말끝마다 혼전임신이 자랑이냐느니 결혼전부터 애들 행실이 좋지가 않다느니
내키지는 않지만 그집에 남는 방이 있어 들어와 살았으면 하는데 또 애보는건 자기 몫이 될거같아 싫다느니 그런데 그놈은 그옆에서 또 꿀먹은 벙어리마냥 고개나 끄덕거리고 눈치나 보고있고
차차 마무리 하자는 식으로 상견례 마무리되고 집에 가려는데
우리 엄마는 화장실에서 우셨어요.
부모님들 다 배웅해드리고 자리에 서있는데 눈물이 막 쏟아져서 식당 앞에서 엉엉 울었죠.
그 추운곳에서 엉엉 울고있으니까 식당 이모님이 안으로 들어오라시는데
그놈은 또 바보같이 서서 미안해 내가 잘할께 이말만 되풀이 합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슬슬 드는 생각이 대체 이게 무슨짓인가 싶은거에요.
상견례날 엄마 우시는거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왜? 내가 왜 저놈의 결혼타령에 장단을 맞춰야 하며 바보같은 저 빌빌 기는 를 봐야하며
왜 우리가족이 죄인이 된거같은 기분이 들어야 하고 왜 나는 이 장단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지
거기서 혼자 택시 잡아타고 집에 가서 엄마랑 같이 울었고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한데 결혼하기 싫다
애 지우고싶다 이런식으로 어영부영 계획없이 결혼하는것도 싫고
남자친구가 책임감도없이 무조건 결혼하고싶다 잘해줄께 잘해줄께 하는것도 싫다
정말 미안한데 난 엄마가 될 준비도 안됐고 아무것도 준비 안됐다
엄마도 예비사돈 맘에 안들었다고 고압적인 태도로 내딸만 깎아내리는데 생각같아선 상이라도 엎어버리고 싶었는데 당장은 해줄수 있는게 없어서 참았다고 집한채만 내줄 수 있었어도 물을 끼얹고싶으셨대요.
아빠는 그냥 말없이 내 등만 토닥여주셨고
선택은 알아서 하라고 뭘 선택하든 니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그놈한테선 톡 전화 불나게 오고있었지만 휴대폰 다 꺼버렸고
엄마 손잡고 그 주에 병원가서 중절수술 하고 왔어요.
불효녀도 이런 불효녀가 없겠지만.. 낙태라는 말이 싫어서 중절이라고 쓰고있지만
결국 전 나쁜년 맞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수술하고 한 이틀인가 휴가내서 좀 쉬고 그놈 퇴근할때 그놈 회사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만났어요. 주제가 주제인만큼 어디 크게 들리는게 싫어서 룸타입?? 호프집에서 얘기했어요.
너한테 동의없이 애 지웠다. 미안하지만 결혼 관두자고. 그리고 헤어지자고 하니까 갑자기 눈을 뒤집고 삿대질을 하면서 미 무슨년 욕을 막 하더라구요. 니가 뭔데 내 애를 지우냐느니 이거 순 미 이상한 사람년 아니냐 하여튼 욕을 엄청 하는데 놀라서 준비해간 말들도 다 못하고 눈에 눈물이 핑 돌아서 앉아있었어요
그러다가 제 분에 못이겨 씩씩대고 앉아서 결혼은 왜 못하겠다는거냐고 묻는데
사람 마음이 싹 식는거 있잖아요? 차라리 흥분하고 욕하고 삿대질할땐 그나마 좀 인간같아보였는데 결혼을 왜 못하겠냐니, 이사람이 내가 좋아했던 그 사람 맞나 아닌거같다 그런 생각이 드는거에요. 이상하다 이사람, 말이 안통하고 이상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데
얘기는 했죠. 애초부터 너 혼자서 계획해서 니가 날 임신시킨거 아니었냐부터 시작해서
내가 봤던 모습, 믿음직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거, 니네 부모님, 이게 내 대답이라고
너도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당장 나하나도 온전하게 지켜주지 못했으면서
니가 잘한다는게 대체 뭐냐 도대체 너는 결혼의 목적이 뭐냐
그렇게 물으니까
독립이래요. 부모님으로부터의 독립은 결혼밖에 방법이 없다면서.
그 싸납고 시크하고 까칠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결혼을 해야했고
내가 결혼생각이 없으니 몰래 임신시켜놓고
죽은듯이 네네 하면 어떻게든 진행 될테니까 그 후에 잘 살아보려고 한거랍니다.
그때도 말문이 막혔는데 지금도 쓰다가 손을 잠깐 멈출정도로
저 말은 떠올릴때마다 충격적이네요.
그럼 결혼할 여자를 만나라고 난 아니라고 싫다고 하니까
혼자서 차분해져서는 생각해보니까 괜찮답니다. 애는 다시 가지면 되고
상견례도 했으니 결혼하는덴 문제가 없다는데 얘는 미쳤어, 이건 미이야
제가 흥분해서 막 뭐라고 했어요.
너 미친거 아니냐고 너야말로 미친거같다고
상식적으로 독립이 하고싶으면 돈을 모아서 방을 구하던지 가출이라도 하던지
무슨 이상한 사람같은 소리를 하고있냐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거기서부터 개싸움이 된거죠.
뭐 이상한 사람! 너 지금 나한테 이상한 사람라그랬냐
그래그랬다 너 이상한 사람 아니냐
또 이상한 사람라그랬어 낙태한 xx년이 누구더러 이상한 사람래
사람의 끝을 봤던거같습니다 그날.
들을 수 있는 욕이란 욕은 다 들어봤어요.
미련한점 안남기고 정 훌훌 다떼고 욕만하다가
두번다시 연락하지마라 연락하면 죽여버린다 소리 하고 그놈이 먼저 나갔고요
나는 15년의 마무리를 이제 연애하지말아야겠다, 결혼도 하지 말아야겠다
독신으로나 평생 살아야겠다 그렇게 마음 먹으며 끝냈어요.
엄마 아빠밖에 모르는 사실이고
엄마아빠는 그때일은 입밖에도 꺼내지 않으시고 지금도 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시지만
저는 죄책감에 가슴이 먹먹해지거나 자다가 깨거나 애기들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그래요.
어디가서 말할 수 있는 얘기도 아니고 자랑도 아니고요.
글로 쓰다보니까 이것 덧붙이고 저것 덧붙이고 해서 글이 좀 길어지긴 했는데
진짜로 저런 상황이 있었고 거짓으로 갖다붙인건 없어요.
아. 그리고 올해 나이 서른세살에 목적도 미래도 없이 그냥 '결혼하고싶다'라는 말만 하는 사람 조심하세요. 연애할땐 저도 저렇게 이상한 사람인줄 몰랐어요.
베플


너무 안타까움 진짜.. 여자들이 임신하는게 죄지.. 게녀들도 관계후 물풍선으로 확인하는거 꼭꼭꼭 잊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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