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정 시절 로마 군단병의 표준무장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의 로마군의 모습이다.
주로 공화정 말기에서 제정 초기에 로마군의 주력을 형성한 병종으로
한국어로는 보통 군단병이라고 번역한다
(레기온(Legion) = 군단 / 레기오나리(Legionary) = 군단병)
실제로는 예산이나 실용성 문제로 이런 무장의 모습을 갖춘 케이스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글라디우스(Gladius)
글라디우스 히스파니엔시스Gladius Hispaniensis 즉 히스파니아의 검이라고 불리우는 로마군의 검은 60~80cm 전후의 짧은 날에 1.5kg 내외의 가벼운 무게를 자랑하는 검이다.
(히스파니아는 라틴어로 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 지역을 뜻한다)
BC 3세기 경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스키피오에 의해 밀집방진을 펼치는 로마 군에게 히스파니아 종족들의 검을 개량도입하였다는 설이 있다. 베기와 찌르기 다방면으로 사용이 가능한 칼이었으며 군단병은 반드시 오른쪽 허리춤에 글라디우스를 패용해야만 하는데 왼손에 든 스쿠툼(방패) 때문에 글라디우스를 뽑는데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글라디우스는 시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사진은 서기 79년 티투스 황제 시기의 폼페이 유적지에서 발견된 글라디우스로, 길이 60cm, 폭 5cm, 무게 700g으로 후기형에 속한다.

공화정 말기의 스쿠툼

제정 초기의 스쿠툼
스쿠툼(Scutum)
로마군이 사용하는 길이 1.2m, 무게는 5~10kg 내외의 타원형 방패.
라틴어의 "방패"라는 일반명사였지만 차츰 로마군이 사용하는 특이한 모양의 방패를 부르는 단어로 정착되었다. 나무 판을 여러 개 덧대어 만들었으며 그 위에 범포와 송아지 가죽을 씌워 방어력을 보강했다. 스쿠툼의 중앙엔 뾰족하게 튀어나온 철 장식을 달았으며 방패의 안쪽에 홈이 나 있어 밀집방진을 이루기 용이하였다. 스쿠툼은 좌우로 휘어 있는게 특징인데, 그 이유는 빗각을 이뤄 적의 화살을 튕겨내기 위함이었다.
제정 시기에 이르면 스쿠툼은 완전한 개량이 이루어져 사각형의 형태를 띄었다. 밀착했을 시 방패 사이의 틈이 최소화되어 몸을 완전히 가릴 수 있었고, 근접전에서 적을 들이받는 무기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이를 이용해 군단 전체가 빽빽히 밀집해 화살을 막아내는 귀갑진(테스투도)을 사용하는 모습이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의 부조에 묘사되어 있다. 초기의 방패에는 문양이 거의 없었지만 나중엔 삼지창이나 군단 문양 등의 화려한 장식이 들어갔다.


필룸(Pillum)
2m 정도의 길이에 2~5kg의 무게를 가진 로마군의 제식용 투창.
로마가 건국 초창기인 도시 국가 시절 로마의 주변에는 산악 종족인 삼니움인과 에트루리아인이라 불리는 부족들이 살고있었다.
필룸은 삼니움인과 에트루리아인들이 사용하던 투창을 개량한 것으로, 60cm 가량의 창날 부분은 얇고 잘 휘어지는 철로 만들어져 있어, 일단 적의 방패에 박히면 무게 때문에 구부러져 빠지지 않았고, 따라서 적의 방패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필룸은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의 두 가지를 동시에 장비했는데, 로마군은 전투에 돌입하기 전, 적에게 필룸을 던져 적의 방패를 무력화시키는 전법을 사용했다. 근거리에서 접근전용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초기의 로마군은 필룸 대신 하스타라고 불리는 창을 사용하였으나 공화정 말기엔 사용하지 않았다.
제정 시기에도 여전히 필룸은 로마군의 주력 무장으로서 사용되었다. 필룸이 적의 방패에 박혀 더 잘 구부러지게 하기 위해 창날과 손잡이 사이에 무게추가 추가되었고, 사실상 가벼운 필룸과 무거운 필름의 차이가 없어져 결국엔 거의 대부분의 병사가 동일한 필룸을 두 자루씩 휴대하게 되었다. 이후 필룸은 베루툼이라는 신형 투창으로 발전한다.

푸기오(Pugio)
18~28cm 가량의 찌르기용 단검으로, 로마 병사들의 부무장으로 사용되었다. 왼쪽 허리춤에 패용한다.

갈레아(Galea)
켈트족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뼘을 가리는 로마군의 제식 투구. 그 이전까진 그리스와 비슷하게 생긴 코린트식 투구를 사용했다. 현재 남아있는 가장 유명한 견본은 독일의 마인츠 바이제나우 지방의 라인 강 근처에서 발견된 유물이며,
최소한 기원후 61년 부디카 반란 진압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장교용은 화려한 깃털 장식을 투구깃에 꽃는다.

투니카(Tunica)
활동하기 편한 의복으로, 로마 병사들은 토가를 입을 때처럼 군복 아래에 투니카를 받쳐 입었다.

로리카 하마타(Lorica Hamata)
철이나 청동으로 만든 5mm에서 7mm의 사슬 고리을 꿰어 만든 켈트족의 전통 갑옷을 기원전 2세기 경 로마군이 도입한 것이다. 기동성을 중시하여 전신을 둘러싸기보다는 셔츠 형태의 흉갑이 많았으며, 제 2차 포에니 전쟁 시기에 제작된 도미티우스 제단에 로리카 하마타를 입은 군단병이 묘사되어 있다.
이후 기원후 1세기에 판금 갑옷인 로리카 세그멘타타에 대체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전히 군단병들은 로리카 하마타를 입는 경우가 많았고 4세기까지도 이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로리카 세그멘타타(Lorica Segmentata)
강철로 된 두꺼운 판을 이어 만든 판금 갑옷의 일종으로, 라틴어의 "조각" "파편"이란 말에서 비롯되었다.
어깨와 가슴을 보호하는 하프 플레이트 형태의 흉갑으로 기원전 9년에 처음 등장했으나 제정 중기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으며, 기원후 113년에 세워진 트라야누스 원주에 묘사된 로마 군단병들은 로리카 세그멘타타를 입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동시대에 건축된 전승비 등에는 군단병과 보조병들이 모두 비늘 갑옷의 일종인 로리카 스쿼마타(Lorica squamata)를 입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갑옷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굉장히 비싸다)

킨굴룸(cingulum)
라틴어의 허리띠가 어원인 군단병의 벨트로 킨굴룸 밀리타레(cingulum militare)라고 일컫는다. 일종의 고대판 탄띠
금속 장식이 주렁주렁 달려 있으며 양 옆에 글라디우스와 푸기오를 패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레아이(Ocreae)
백부장 이상의 장교들이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각갑脚甲의 일종으로, 공식 석상에서 의전용으로 사용되는 일이 많았다. 공화정 시기, 투창 자세에서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왼발에만 정강이 보호대를 착용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후기에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트라야누스 황제의 다키아 원정 때 롬파이아(다키아 족 특유의 기다란 곡도)를 휘두르는 다키아 군의 공격으로부터 정강이를 보호하기 위해 사병들에게도 착용이 권장되었다.

칼리가(Caliga)
로마군이 사용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군용 샌들로, 적을 걷어차서 공격할 수 있도록 바닥에 철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징이 박혀 있었다. 군단병과 보조병, 백부장을 비롯한 모든 병사들이 사용했다.
크.. 오늘도 로마뽕에 취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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