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면우, 봄 밤
늦은 밤 아이가 현관 자물통을 거듭 확인한다
가져갈 게 없으니 우리 집엔 도둑이 오지 않는다고 말해주자
아이 눈 동그래지며, 엄마가 계시잖아요 한다
그래 그렇구나, 하는 데까지 삼 초 쯤 뒤 아이 엄마를 보니
얼굴에 붉은 꽃, 소리없이 지나가는 중이다

류동하, 나는 나쁜 연인이었다
나는 비극을 꿈꾸었다
몹쓸 불행을 꿈꾸었다
네가 불치의 병에 걸리기를
네가 어찌하지 못할 슬픔을 당하기를
이 세상 그 누구도 돌보려 않는
커다란 고통이 너를 찾기를
나는 이 아픔, 이 슬픔을
달콤하게 꿈꾸었다
나는 희극을 꿈꾸었다
내가 죽고 네가 살아날
내가 아프고 네가 기뻐할
내 꿈의 무덤 위에 별장미 떨어질
내 비극적 꿈의 드라마를
극적으로 뒤집어 버리는 결말을
아, 이렇게 사랑을 증명코자 한
난 정말 나쁜 연인이었다

김용택, 그리운 우리
저문 데로 둘이 저물어 갔다가
저문 데로 저물어 둘이 돌아와
저문 강물에
발목을 담그면
아픔없이 함께 지워지며
꽃잎 두송이로 떠가는
그리운 우리 둘

조정권, 목숨
마음의 어디를 동여맨 체 살아가는 이를
사랑한 것이 무섭다고 너는 말했다
두 팔을 아래로 내린 채 눈을 감고
오늘 죽은 이는 내일 더 죽어 있고
모레엔 더욱 죽어 있을 거라고 너는 말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 틈에서 마음껏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
이 세상 여자면 누구나 바라는 아주 평범한 일
아무것도 원하지는 않으나 다만
보호받으며 살아가는, 그런
눈부신 일이 차례가 올 리 없다고 너는 말했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오늘 오늘 오늘의 연속
이제까지 어렵게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길이 쉬운거라고 너는 말했다
잊혀져 가는 거라고 했다
세상 모든 이들로부터 잊혀져가는거라고 너는 말했다
잊혀진 내일은 내일이면 더 잊혀져있고
그것은 세상일과 가장 많이 닿아 있는 일이라고
너는 말했다

최승자, 내 청춘의 영원한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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