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럴 때가 있다.
늘 하듯이 사람들과 만나 웃고 떠들어도 혼자가 되는 시간이 오면 더없이 공허해지는 시기. 마음이 포근하던 건 대체 언제였나 싶어지는 때가.
나는 타고난 게 그다지 많지 않지만 그 중 가장 좋은 하나를 꼽자면 역시 사랑스러운 사람이 주변에 많다는 거다. 곁에 좋은 사람들만 모이는 복을 묘하게도 타고난 것 같다. 늘 떠올라 감탄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도, 어찌 보면 흔한 말 한 마디 작은 행동 하나로 이토록 몽글몽글한 밤이 되다니. 괜스레 손톱달조차 가득 차 보이는, 예쁜 밤이다. 다만 조금 더워서 그렇지!
/ 열매달
그녀가 여름마다 더위를 피해 가던 옛날 집에는 서랍이 잔뜩 달린 가구가 하나 있었다. 그것의 반도 채 안되는 몸으로 그녀는 매양 이 서랍 저 서랍을 열어보느라 낑낑댔다. 점점 머리가 굵어지고 가구와 키가 엇비슷해질 때쯤 그녀는 가구의 이름이 '장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집보다는 다른 어딘가로 떠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그녀는 손주 노릇을 하려 장롱이 딸린 그 옛날 집에 들어섰다. 저녁쯤 되었을 때 부른 배를 통통거리며 집 안을 돌아다니던 그녀는 서랍이 잔뜩 달린 장롱 앞에 멈추었다. 이제 그녀는 장롱과 키가 엇비슷해서 거의 모든 서랍을 열어 쉽게 안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묘한 기시감이 그녀를 덮쳤다. 언제든 꼭 이렇게 되었을 것만 같은.
하얀, 각진 곳 없이 동그란 그것은 바싹 말라있기는 해도 분명 누군가의 시력을 담당하던 그 무엇이었다.
/ 열매달
대략 5년 내지는 6년 전에 꾼 꿈 이야기다. 여중-여고로 이어지는 다소 폐쇄적인 환경에 있던 나로서는 꽤 야시시한? 꿈이었다. 심지어 꿈에 나온 이가 이후로도 두 번이나 더 나왔으므로, 선명하게 기억나는 얼마 안되는 꿈들 중 하나다.
첫 꿈은 전체적으로 늦잠을 잘 수 있는 주말의 한낮같은 느낌을 주었다. 무의식에서 눈을 떴을 때 언제나 거기 있었던 것처럼 어떤 남자가 보였다. 그의 이목구비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다지 크지 않은 키에 청량한 분위기를 풍겼다. 나는 그의 품 안에 있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눈을 마주보고 눈꼬리를 무너뜨리며 웃었다. 일어날 생각은 하지도 않고 한참 동안 서로 장난을 쳤다. 유독 간지럼을 잘 타는 나를 그가 간지럽히고, 나는 그것을 피하느라 그의 원룸을 굴러다녔다. 그러다 그에게 잡히면 아가새의 부리를 닮은 그의 입이 다소 민망한 마찰음을 내며 나의 입술에 닿곤 했다. 가벼운 입맞춤을 셀 수 없이 나누며 굴러다니는 와중 얼굴에 닿는 햇빛이 유독 따뜻했다.
/ 열매달
제 글 예뻐해주시고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댓글들 언제나 소중히 읽고있어요😁
개인적인 사용은 모두 환영합니다!
다만 필명을 꼭꼭 붙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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