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머니가 두 분 계셨어
친할머니 외할머니 두 분 있는 거 당연한 거 아니냐고? 니은니은
친할머니가 두 분이셨어 외할머니까지 하면 세 분
지금은 그런 일이 드물겠지만
옛날에는 큰 부인과 작은 부인이 한 집에서
오순도순 사는 경우가 간혹 있었어
우리 집도 그랬고
얼마나 오래 전이냐고? 일제 강점기 때 얘기얔ㅋㅋㅋㅋㅋㅋㅋ우리 부모님도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나심ㅋㅋㅋㅋ앜ㅋㅋㅋ앙댘ㅋㅋㅋㅋ내 나이 유추하고 그러지 맠ㅋㅋㅋㅋㅋㅋㅋㅋ
...진정하고
친할머니는 20살에 시집을 오셨는데
할아버지는 그때 18살이셨대
그런데 할아버지는 친할머니에게 별로 정이 없으셨나봐
당시 일본에서 유학 중이셨는데,
키도 훤칠하시고 외모도 호남형이어서
인기가 장난 아니셨대
귀국한 후에 일본 기생이 한국까지 찾아왔었다고 하니까
일본 유학 중에 한국에 몇 번 들어왔을 때
우리 아버지를 낳으셨는데,
몇 년 뒤에 아주 귀국한 뒤에도
할머니랑 데면데면하게 지내셨대
그런데 어느날 작은 할머니를 데리고 오신거야
그때 우리 아부지는 6살인가 7살인가 그랬대
그리고 세 분이서 한 집에서 살기 시작하셨는데,
우리 할머니 쪽으로는 아부지 밖에 없었고
작은 할머니에게서 딸을 셋 얻으셨지
우리 할머니는 워낙 성격이 조용하시고 소심한 편이셨는데
작은 할머니는 성격도 좋고 애교가 장난 아니셔
그래서 세 분이 같은 집에 살면서도 별 문제가 없었대
무엇보다, 당시 시골에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기에
그냥 팔자려니.. 하고 사셨던 거 같애
지루해? 미안해 배경 얘기를 알아야 해서.
좀 더 해야 해..
자, 여기 인내인내 열매 좀 드셔
큰할머니는 일흔을 조금 넘겨서 돌아가셨어
중풍이 와서 쓰러지셨는데 한 2년 정도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셨거든?
그 수발을 작은 할머니가 다 드셨지
돌아가실 때도 작은할머니 손을 꼬옥 잡고 돌아가셨어
나는 할머니 임종을 못했는데,
나중에 시골에 내려가니까 작은 할머니가 얼마나 우셨던지
완전 탈진해 계시더라고
줄초상 치를까봐 걱정될 정도로
우리 시골에는 조상들 묘를 모시는 선산이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젊을 적에 지관을 불러서 묘자리를 봐 두셨었어
그리고 세 분이 나란히 묻히시겠다며 봉분 세 개를
가묘를 해 두셨었어
가묘가 뭐냐면, 나중에 거기 묻히겠다고, 미리 묘를 만들어두는 거야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처럼 본부인, 작은 부인이 있는 경우는
왼쪽부터 /남편/본부인/작은부인/ 이렇게 묘를 써야 하는 거래
지관도 그렇게 잡아줬었고
그런데 할아버지가, 할머니 묘를 맨 왼쪽에 쓰겠다고 하신거야
당신께서 중간에 들어가겠다고
그런 법도는 없다고 집안에서 난리가 났었어
우리가 좀 희귀 성씨라 친척들이 많지는 않은데
가문, 전통 머 이런 거를 까다롭게 따지는 편이라
저때 엄청 말이 많았어
그럼 차라리 합장을 하면 어떠냐고
당시 꼬꼬마였던 내가 말했지만
어르신들은 들은 척도 안 하셨어
사실, 할아버지는 그러고 싶으셨는데,
문중 어른들이 그건 정말 절대 안 된다고 했었대
그게.. 음.. 작은 부인하고 합장을 할 수는 없다는 거야..
할아버지가 중간에 들어가시겠다고 하신 이유는 알겠어??
할아버지는.. 작은 할머니 옆에 묻히고 싶으셨던 거야..
우리 할아버지는, 엄청 무뚝뚝한 분이셨거든?
하루에 말 한 두마디 하면 잘하시는 거고,
같은 말도 야단치듯이 하시고,
화나면 소리도 엄청 크게 지르셔서 문 창호지가 막 징징 울릴 정도였고,
남자는 하늘, 여자는 댓돌 밑에 짱돌 정도로 생각하셨던 분인데,
작은 할머니에게 그렇게 애틋한 줄은 정말 처음 알았어
장례 치르는 동안 막 문중회의 같은거 열리고 막 그랬는데,
결국 할아버지 뜻대로 하기로 했지
우리 할아버지가 문중에서 제일 높은 분이셨거든
큰할머니 소생으로는 우리 아부지 밖에 없다고 했잖아?
그래서 문중 어른들이 우리 아부지가 서운해 할까봐 마음 쓰이셨나봐
나중에 한 분이 우리 아부지를 따로 부르더니
“서운해 하지 마라 원래 그 자리가 네 아버지 몫으로 봐 둔 데라서
이 산의 주인 자리다”
하시더래
이상한 건 우리 선산은 붉은 황토 산이거든?
그런데 할머니 묘를 파는데 조금 파니까 노란 흙이 나오는 거야
황금토라고 하더라고
그거 보면서 집안 어르신들이
“형님, 이래도 여기에 형수님 모실 겁니까?”
라고 했는데 할아버지는 묵묵 부답이셨어
우리 할아부지, 한다면 하는 남자
그리고, 몇 년 뒤에 우리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소원대로 가운데 묻히셨지
우리는 할아버지 묘에도 노란 흙이 나올까? 하고 지켜봤지만
그냥 붉은 흙만 나오더라고
몇 년 뒤에는 작은 할머니도 돌아가셨어
원래라면. 제일 오른 쪽에, 할아버지 옆에 모셔야 하잖아
그런데.. 작은 할머니 발인 전날, 뜨둥~!
일이 터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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