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현근, 찔레꽃
이제 쉬었다 가요
나무 작대기도 거기 내려놓으시구요
당신이 좋아하시는 찔레꽃도 환하게 피어났어요
찔레꽃 가뭄 들면 하늘만 바라보던
섬진강 웃대꿀 열댓마지기 논배미는
평생을 지고도 다 못진 당신의 등지게였다지요
경운기도 못 다니는 비좁은 논둑길을
등판이 휘도록 혼자 짊어지고 다녔다지요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괜찮다 괜찮다 하며 어깨의 통증
밤새도록 돌아눕곤 했다지요
당신의 헛기침이 다져놓은 신작로를
말표고무신이 까까중 머시마들을 데리고 다녀요
벌써 마을은 지워지고 모판 한 짐이 참방거려요
이제 내려놓으라고 달빛은 졸졸 따라다니구요
무논자락에선 개구리울음소리가
밤새도록들판을 감았다 풀었다 하네요
허기진 하루 돌아설 때
당신이 내려놓은 무거운 등지게는
이제 내가 지고가요

장현수, 삶, 질문을 알지 못해 답도 모르는
보내고 돌아선 자리에
밝힌 그림자는
아주 오랜 시간의 빗금 위에도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기고
가고 없는 날을 안고
꺼이 꺼이 울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날을 잡은 허망의 바다에
삶은 늘 사공 없는 빈 배가 되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알 수 없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름을 찾아 허망의 바다에
바닷물이 마르기 기다리는
뱃전에 철석이는 파도가 된다
빗금 위에 새겨진 길은
어디서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하는지
잊어야 할 지워야 할
그림자는 무엇이었는지
답을 알 수 있다면
삶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지워가며 살 수 있는것은 아닌지
바보 같은 질문을 마음에 걸어 놓는다

박장락, 살아가는 이유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갈 바람 타고 내게 다가오는
그대가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거야
가을 햇살처럼 따스하게 웃어주는
그대를 바라볼 수가 있기 때문이야
그대를 사랑하지 않고는
내가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없을 테니까
그리움이라도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 그대를 생각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거야
가을 향기가 내 몸을 스치면
그대라 생각하고
코스모스 한들거림도
그대라 생각하며
내 맘속에 가득 차 있는 그대가 있기에
내가 살아가는 이유인거야

김선숙, 비가 오는 오늘 같은 날에는
보고 싶다 오늘따라
그대가 더 보고 싶다
창에 맺히는 빗방울들
창을 타고 미끄러지듯이
한 방울 두 방울 도르르
탁자 위 커피한잔을 살며시
두 손으로 감싸본다 스멀스멀
따스한 온기가 오롯이
손끝에 전해진다
오늘따라 커피향이 더욱
그윽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가 와서 일까
오늘 같은 날에는
그대가 더 그립다 나는

김궁원, 비와 술잔
내 그리움이 비처럼 내리는 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이 마음인 듯하여
술잔을 든다
한 잔 술에
마디마디 전해오는 술기운 앞에
내 안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내 모습은
비에 젖어도
한 잔 술로 부르다
두 잔 술에 기다리는 마음이 흔들릴 때면
석 잔 술은 이미 마셔 버렸고
빗소리에
한 잔 술은 내가 마셨는데도
술에 취한 듯
그리움에 취한 듯
빗물은 갈지자로 흐르고 있다
비가 내린다
이 비에
가지마다 파란 싹은 춤을 추겠지
햇살에 미소 지면서
먼 그리움을 모르는 꽃들은
그저 웃으며
한 잔 술에 취해가는 비가 오는 밤
그리움에 사람은 여기에 없다

인스티즈앱
🚨[속보] 윤석열 사형 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