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한 거 불교까지 해볼까 했다가 후회했긔. ㅠㅠ
한자의 압박 ㅠㅠ 양의 방대함 ㅠㅠ
너무 방대해서 불교만 편수 나누어서 쓰겠긔
불교를 더 좋아해서도 아니고
불교가 더 휼륭해서도 아니긔.
이해하는 데 걸린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라긔.
간신히 이해한 수준이라 어딜 내치고 어딜 살려야하는지 감이 안 생기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 무교긔.
종교에 대한 세세한 용어는 틀릴 수 있음 주의.
큰 흐름만 읽고 넘기시라긔.
1. 부처가 등장하기 전 인도
불교를 알기위해선 당시 인도를 알아야하긔.
당시 인도는 베다 신앙을 믿고 있었는데
베다 신앙은 힌두교의 전신으로 보면 되긔.
그리고 베다 신앙을 알기 위해선 인도의 역사를 알아야하긔.
기원전 1500년이니까 모세가 이집트 건널 때쯤인데
원래 인도엔 문다인 드라비다인이 살고 있었는데
아리안족이 침입하면서 남쪽으로 쫓겨났긔.

아리안족은 몇 명 안되고 드라비다인은 너무 많고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카스트 제도의 전신이 생기긔.

문화별로 비윤리적인 행동을 했을 때
사람의 양심을 찔리게 하는 심리적 제어장치가 있다고 하긔.
서양은 기독교긔.
잘못을 저지르면 신이 노여워하긔.
중국과 한국은 역사긔.
잘못을 저지르면 두고두고 욕을 먹게 되긔.
그래서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좋아하는
문화적 특수성이 있다고 하긔.
고대 인도에선 'karma' 라긔.
기독교에서 한번 죽으면 땡이고
그 때 믿음에 의해 천국이냐 지옥이냐가 결정난다면
베다 신앙에선 한번 죽으서 하늘 나라가면 거기서 또 살다가 또 죽고
다른 하늘나라 가서 거기서 또 살고 또 죽는다고 하긔.
사람은 끊임없이 태어나는 데 이걸 윤회라고 하긔.
전생에 잘못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지금 네가 이렇게 낮은 계급으로 태어난거다. 라고 했긔.
전생에서 했던 행동 = 업 = 카르마

불교에서 잘못한 행동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는 아니긔.
콩을 심으면 콩이 나지만 팥을 심으면 팥이 나듯이
그냥 예전에 네가 한 행동의 결과로
지금의 계급이 결정되었다는 거긔.
고대 인도 사람들은 삶이 즐겁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복해서 태어나는 것 자체가 참 힘들고 버겁다, 고 생각했긔.
다음 생에 더 좋은 계급으로 태어나기 위해서 착한 짓을 한다고 보면 되긔.
하지만 고대 인도에서 최대 화두는
윤회의 고리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는가?
였긔. 아예 안 태어나는 게
다음 생에 좋은 계급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더 좋은 거였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자들을 사두라고 하는데
이들은 깨달음을 얻겠다며 대개 신체를 혹사시켰긔.

왜 하는 지 모를. 진짜 모를.
사두는 지금도 있다긔. 소근소근.
고대 인도인과 현대 인도인의 사두 목적은 다른 것 같지만
어쨌거나 이미지만 참조하시긔.
무작정 굶거나, 불 위를 걷거나
뾰족한 가시 위에 앉아서 명상을 하거나
몸에 난 털을 다 뽑아버리면서 깨달음을 위해 수행한다긔.
사두는 대개 출가해서 살았는데
배우다가 / 가정을 이루고 / 수행하러 나가서 / 걸식하다 죽는 것
이 출가의 정석 코스였고
수행의 꽃은 고행. 왜 하는지 정말 알 수 없는 고행을 하는 것이긔.
이쯤에서 인도의 지형을 살펴봐야 하는데
인도 북쪽은 유럽, 아프리카와 연결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다양한 문화가 흘러들었고 상업의 중심지였다고 하긔.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까
집에서 남은 음식은 사두에게 보시하면서 살 수 있었긔.

지도에 추가로 녹색으로 색칠한 곳이 산맥인데
단순한 산맥이 아니긔. 히말라야급 산맥이 쭉쭉 이어진 곳이긔.
그래서 인도는 중국보다는 중동, 서양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긔.
그렇게 천 년이 흘러갔긔.
2. 부처의 생애

코살라국에 속해있지만
부분적 자치권이 있는 카필라국이 있었는데
말이 왕국이지 샤키아 족의 부족국가였긔.
카필라국은 지금으로 따지면 네팔에 있었긔.
코살라 왕국 영역은 정확하게 몰라서 대충 동그랗게만 표시했긔.
위치정도만 확인하시긔. 어차피 중요한 건 마가다 왕국이니까.
예수가 태어나기 500년 전 쯤에
카필라국 왕의 부인이 출산하러 친정길에 오르다
롬비니 언덕에서 아이를 출산하긔.
이 아이는 훗날 샤키아무니 (샤키아족의 성인이란 뜻) 가 되긔.
이 말은 한자로 옮겨지면서 석가모니가 되는데
태어날 때 당시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긔.
성이 고타마 이름이 싯다르타라긔.
샤키아족인데 고타마가 성씨가 될 수 있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광산 김씨 같은 거라서
샤키아와 고타마 둘 중 하나가
광산이고 나머지가 김씨의 의미라고 하긔.

싯다르타 엄마는 싯다르타를 낳기 전에 태몽을 꾸었는데
하얀 코끼리가 연꽃을 물고오더니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꿨긔.
꿈을 해몽할 수 있는 사람이 말하길
태몽이며 장차 태어날 아이는
정말 위대한 왕이 되거나 출가해서 부처가 될 꿈이라고 말해줬긔.

그리고 아이는 다른 쪽 옆구리에서 태어나긔.
제왕절개설도 나오는데 뭐 그냥 신기하게 태어났다 정도로 받아들이자긔.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7걸음씩 걸었는데
그 때마다 연꽃이 생겨났긔.
그리고 아이는 외치긔.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늘 위 하늘 아래 내가 독보적인 존재라고 외쳤는데...
당시 인도는 죽어서 태어나면 하늘로 가고
그 하늘 위엔 다른 하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천상 = 하늘 위 하늘
천하 = 하늘 아래
아이 이름은 싯다르타가 되긔.
싯다르타 엄마는 싯다르타가 태어난지 일주일만에 죽어서
싯다르타는 이모의 손에 길러지게 되긔.
한편 카필라 왕은 걱정이 컸긔.
하루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나가 농촌을 보여줬더니만
아빠의 위엄 이딴 건 하나도 안 느끼고
새가 지렁이를 잡아 먹었는데
지렁이가 괴롭게 꿈틀거리는 거에만 꽂혀서
몇날 며칠을 명상해서 맘이 상했긔.
이 새끼가 진짜로 출가하면 안 되는데..
카필라 왕은 싯다르타에게 여자 + 술 + 호화를 제공했지만
즐기던 싯다르타는 이내 쾌락은 무상하다는 걸 깨닫고는
더더욱 명상에만 집중했긔.
카필라 성엔 동서남북으로 문이 나있었는데
싯다르타가 첫번째 성문으로 나갔더니 늙은 사람이 있었긔.
사람이 늙다니!
놀라서 다른 성문으로 나갔더니 거긴 병든 사람이 있었긔.
사람으 병들다니!
놀래서 다른 성문으로 나갔더니 거긴 장례식이 있었긔.
사람이 죽다니!
( 생노병사에서 생만 빼면 되긔. 쉽긩.)
마지막 문에서 싯다르타는 한 사문과 만나게 되긔.
사문 왈
인간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내가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한다는 말을 해주긔.
이 날 이후로 싯다르타는 자기도 언젠가 출가하리라 마음먹게 되긔.
그 후 싯다르타는
아버지 성화에 못이겨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았지만
아들이 태어나자 본인은 출가해 버리긔.
아들 이름은 라훌라인데
뜻은 장애 이런 뜻이라고 하긔.
너 때문에 출가하는데 장애가 된다는 뜻?
그래서 왕이 애 이름을 이렇게 지을 수 있냐고 닥달하니까
전 출가할 거니까요. 라고 말하고 출가했다고 하긔.

당시 사두의 수행의 방법은 스승을 찾아가서 배우는 건데
싯다르타 또한 유명하다는 스승을 찾아가
그 밑에서 고행을 하긔.
스승도 깨달은 것 같진 않아서
다른 스승이 더 괜찮나? 스승을 바꾸기도 하면서
그렇게 6년이 지났긔.
거의 굶는 고행을 하던 싯다르타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우유죽을 얻어먹었는데
같이 고행하던 동료들은 그것 하나 참지 못하냐면서 막 욕하긔.
그 날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긔.
고행으로 빡세게 한다고 무조건 깨달음이 오는 게 아니다.
고행도 적당한 게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중도가 태어나긔.

그리하여 싯다르타는 보리수 나무 밑에 앉아서 명상에 잠기긔.
그리고 깨달았긔.
깨달으면서 붓다가 되긔.
붓다는 깨달은 자란 뜻이긔.
그의 나이 35세 때 일이었긔.
부처의 깨달음은 이것이라긔.
윤회의 고리를 끊어내는 깨달음인데
사는 건 고통의 연속이고
그 고통의 이유는 집착이고
집착이 쌓이면 업(=카르마) 이 되기 때문에
8가지를 바르게 하면서 살아가면 윤회의 고리를 끊고
nirvana = 열반의 세계 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긔.

니르바나를 너버나로 읽게 만든 세계적 밴드. 너바나

부처가 깨달았다는 장소 부다가야에 있는 사찰과 보리수 나무
얼마전 개신교 젊은이들이 땅 밟기 했다고 욕 먹은 곳이 여기긔.
부다가야에서 가야가 한국의 가야와 같은 가야라고 하더라긔.
생각외로 우리는 인도와 교류가 활발했다는 증거라는데
정확하겐 잘 모르겠긔. 도올이 그랬긔.
붓다는 이 깨달음을 누구와 공유할까 고민하긔.
스승 둘은 이미 죽은 상태였고
같이 수행하던 동료를 찾아가기로 하긔.
동료들은 변절자 싯다르타와 평생 말도 안 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만나니까 영험한 기운이 좔좔 쏟아져 나오는 것이
그가 말해주는 이야기들을 경청 할 수 밖에 없었긔.
샤르나트의 녹야원이란 곳이긔.

녹야원에 지어진 스투파긔.
당시 수행은 스승과 제자 몇 명이 그룹지어 같이 돌아다니는 건데
이런 그룹을 sanga 상가라고 하는 데
훗날 승. 승단. 이란 한자로 바뀌게 되긔.
주지승의 그 승 맞긔.
이 5명이 최초의 제자들이 되었고 이내 60명이 되면서
붓다는 45년간 진리를 알려주면서 돌아다니다가 80세에 죽긔.
중간에 아들 라훌라가 찾아왔지만 라훌라마저 출가시키긔.
키워준 이모도 출가시키긔.
붓다가 그럴 생각까진 아니었지만...
붓다의 고향 카필라국은 이 때 대가 끊겨
무리하게 왕위를 물려준 게
꼬이고 꼬여서 결국 한참 후에 망하게 되긔.
여기서 잠깐
붓다는 스스로를 종교의 창시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긔.
그냥 깨달았을 뿐이고 그 깨달음조차 설명해 줄 생각은 없었다고 하긔.
설명해 준다고 말로 잘 전달될 것 같지도 않아서
설명해 줄 생각이 아예 없었는데
자꾸만 사람들이 소문듣고 찾아와서 물어보면
그것에 대해서 잠깐 대답해주고 또 떠나길 반복했긔.
붓다는 한 곳에서 머무는 걸 지양했긔.
그러면 무언가 소유하는 것이 생겨나고
주변사람들과의 알력관계가 생기기 때문이었긔.
이러면 업이 생기긔.
끊임없이 돌아다니면서 얻어 먹고
(이건 당시 풍습)
그 날 얻은 건 그 날 다 먹어야 하며
그것도 오후 12시 이후엔 금식하라고 하라고 했긔.
다시 붓다의 죽음으로 넘어가서
붓다는 쿠시나가라에서 식중독으로 사망하긔.

붓다가 죽을 때 이런 자세로 잠자듯이 죽었다고 하는데
사실 붓다는 죽었다고 하면 안되긔.
업을 다 태우고 극락으로 갔긔 때문에
입멸 (불태우고 들어가셨다) 혹은 대열반에 들어가셨다고
표현해야 옳다고 하긔.

붓다는 죽은 후에 당시 풍습에 의해 화장 되었는데
진신 사리가 엄청 나왔다고 하긔.
서로 가져가겠다고 전쟁도 날 뻔해서
위 부조처럼 진신사리를 8개 왕들이 나눠 가졌다고 하긔.

부처가 죽은 곳 위에 쌓은 스투파.
진신사리를 넣고 그 위에 탑 같은 건축물을 쌓는 게 당시 문화라고 하긔.
스투파 - 투파 - 탑 이렇게 되고
나라를 건너 건너 오다보니 작고 귀엽게 바뀌었지만
한국에 와서도 진신사리는 대개 탑 안에 들어가 있긔.
불국사 앞에 석가탑은 석가모니를 기리는 탑이긔.

붓다가 비록 네팔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네팔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수행하고 깨닫고 제자들과 돌아다닌 활동 반경은
주로 마가다 + 코살라 왕국이었기 때문에
붓다 = 인도사람으로 보는 것 같긔.
500년 뒤에 태어나는 예수와 부처는
종종 비교 대상이 되는데
예수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 기적 많이 보여주고 - 스스로 종교를 설파하다가 - 죽음 - 부활
그리하여 예수는 사람인가 신의 아들인가 논란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사람으로 보면 역사가 되고 신의 아들로 보면 종교가 되는 구조)
사람으로 믿은 사람들에 의해 죽어갔지만
예수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부활인 반면
붓다는
왕자로 태어나 - 출가하고 - 깨닫고 - 깨달음을 나누어주다가 - 죽음
붓다의 생애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은
그러나 아무도 모르던 걸 깨닫고는 알려주고 간 사람이긔.
스스로 종교라고 주장한 적도 없고
가는 곳마다 환영 받아서 안티 때문에 고생한 적도 없긔.
말년엔 주변 왕들마저 찾아와서 배워가고 그랬긩.
붓다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은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음이긔.
부처는 죽기 전에 어차피 깨달음은 각자 얻는 거니까
내가 한 말은 다 잊으라면서 죽긔.
붓다의 생애를 길게 적은 이유는 붓다의 생애를 이해하지 못하면
불교의 흐름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긔.
3. 근본 불교
이제부터 붓다는 중국 한자인 부처로 표현하겠긔.
인도는 뭘 정확하게 기록하는 걸 좋아하지 않긔.
(하긴 기록 좋아하는 나라가 중국하고 한국 밖에 더 있냐긔)
그래서 인도 역사 상당수가 아마도 이때쯤? 이렇게 시작되다고 하더라긔.
부처도 아마 기원전 563 ? ~ 483 ? 태어났다고 보고 있다긔.
그만큼 기록을 잘 안 남기긔. (우리 기준에서 봤을 때)
게다가 부처도
여기서 잠깐 저기서 잠깐 떠돌면서 이야기를 한 것 뿐이라
부처의 말씀을 전부 들은 사람이 없었긔.
그나마 아난자란 제자가
기억력도 빼어나고 20년간 같이 지내면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터라 다행이었긔.
부처가 열반에 들어간 지 3개월쯤 지나자
제자들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한 곳에 모여서 각자 들은 것을 모아보자고 해서
1차 결집이 이뤄지긔.

1차 결집은 동굴 앞에서
그 자리에 모인 sanga들은
각자 부처님에게 들은 말을 해주긔.
이렇게 모아진 이야기들은
들을 경자를 써서 경이라고 하긔.
부처가 특별히 sanga들이 지켜야 할 규율을 알려준건
율이라고 또 따로 모았긔.
이렇게 모은 경과 율은
다시 나누어서 그룹별로 암송하게 만들었긔
그리하여 불교 경전은 이야기가 짧고 반복되는 구절이 많은데
암기하기 쉬우라고 만들었기 때문이긔.
그리고 같은 이야기가 중복되는 경우도 많은데
인간 기억력에 의존한 영향이라고 하긔.
이렇게 백년이 흘러갔긔.
4. 원시 불교
백년이 지나자 율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승려들이 나타나긔.
12시 이후에는 금식하라고 하는데
정말 사정이 생겨 그 시간에 못 먹었다면
조금 늦게는 먹어도 되지 않나요?
보시한 걸 그 날 다 먹으라고 하는데
소금 같은 건 다음 날 음식 먹을 때 써도 되지 않나요?
보시로 먹을 걸 안 주고
금이나 은 같은 걸 주면 이런 건 받아도 되나요?
술을 먹지 말라고 했는데
정말 몸이 아플 때 약으로 조금 마시는 건 괜찮지 않나요?
같은 10가지 문제에 대해서 대대적인 토론을 하게 되긔.
결국 다 안 된다고 결론이 났지만
진짜 중요한 것이 나타나긔.
경과 율을 해석하는 것 또한 불교 경전에 들어가게 된 거긔.
율과 경을 논했다고 해서 논이라고 하긔.
논에 따라 여러 파로 갈라지는데
천주교와 개신교처럼 아예 떨어진 분파가 아니고
금이 20개로 나뉘어도 결국 다 금이듯
서로 간에도 같지만 아주 사소한 차이가 있는 ? 정도로 이해했다고 하긔.
이런 거 저런 거 다 안 된다고 한 사람들은
대개 높은 직위의 sanga들이었고
율을 조금 느슨하게 된다는 건 하층 sanga들 이었긔.
이들은 대개 진보주의자들이 많았긔.
이 하층 sanga들이 대승불교가 되긔.
5. 3차 결집

부처가 죽은지 300년 쯤 되었을 때
아쇼카 왕이 인도를 통일하긔. 앗싸.
전쟁으로 통일해 놓고선
전쟁이 끔찍하다며 이제부터 불교 믿자고 선포하긔.
전국에 부처님을 기리는 탑도 여기저기 세우고
부처님의 말씀대로 하겠다며 복지도 막 퍼줬긔.
다리 짓고, 병원 짓고, 학교도 지어줬긔.
그리고 3차 결집을 만들어
불교 경전을 드디어 문자로 만들었긔.
경전은 팔리어로 쓰여졌긔.
그리고 출가시킨 자기 아들과
팔리어 경전을 모두 암기한 sanga 를 스리랑카에 보냈긔.
그 결과 훗날 베트남 라오스 등지가 불교 국가가 되긔.
아쇼카왕의 불교에 기여한 장점은
드디어 경전을 썼다는 것과 포교활동을 했다는 것이긔.
불교의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했긔.
아쇼카 대왕은 불교에서 부처 다음으로 존경받는 인물이긴 한데
단점은 스폰서의 맛을 알게 된 sanga들이 타락하기 시작하고
불교를 대중화 시키면서 불교 교리를 조금 뒤틀었다는 거긔.
나라를 사랑하는 것과 불교가 동일시 되었긔.
이를 호국불교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긔.
이 때의 불교를 부파불교라고 하긔.
불교의 종파가 본격 갈라지면서
높은 직위의 sanga 들이 왕의 권력과 나란히 갔긔.
근본불교 → 원시불교 → 부파불교 → 소승불교(=상좌부 불교) 가 되기 때문이긔

사실 인도는 통일되었지만
부처가 살던 곳과 비교하기 위해서 부처가 살았던 때 지도와 중복사용했긔.
사실 부처는 마가다어로 설법했지만 팔리어로 기록 된 이유는
유럽 아프리카와 이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이 모였기 때문일 거라긔.
6. 그 후 2300년
그 후 2300년간 많은 일들이 일어났긔.
일단 가장 큰 사건은 대승불교가 떨어져나오면서
드디어 종교처럼 바뀌게 되긔.
부파불교의 단점이 뭐냐면 혼자만 깨닫는 거긔.
가족이고 뭐고 다 필요없고 깨닫기 위해서 출가를 했긔.
그래서 깨달으면 혼자만 열반으로 또르륵 가버리면 끝이긔.
한마디로 출가할 큰 마음을 먹은 사람만 윤회를 끊어낼 수 있고
출가하지 않은 사람들은 계속 윤회 속에 살아야했긔.
먹고 살기 힘든 사람에겐 굉장히 슬픈 일이었긔.
이게 다 깨달음만 추구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부처도 깨달음 얻고 45년을 깨달음을 나눠주고 갔는데
지들이 뭐라고 혼자 깨닫고 난리들이야.
이 세상엔 출가못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깨달았으면 깨달음을 나눠주자고!!!!
부파불교는 깨달음=지혜를 중시헀지만
지혜와 자비 둘 다 중요시하게 여긴 게 대승불교긔.
그러면서 우리는 큰 수레에 많은 사람을 태우고 갈꺼야라면서
스스로를 대승불교라고 했는데
혼자만 깨닫고 들인 사람들을 비꼬는 의미로
부파불교를 소승불교 라고 불렀긔.
물론 소승불교 또한 대승불교에게 할 말이 있긔.
진리를 혼자 깨달아라.
이게 부처님의 오리지널 메세지야.
근본없는 것들이...들이야.
그리고 소승불교가 뭐야? 우리가 쫌팽이인 것 같잖아.
우리는 sanga중에서도 엘리트 중에 엘리트거든.
맨날 명상하면서 깨달았는데
너네보다 더 많이 깨달았고..
너네보다 윗고 너네보다 위에 앉아.
그러니까 우리를 상좌부불교라고 불러. 라고 했긔.
어떠한 불교 교파도 지지하지 않는 입장에서
소승불교는 앞으로 상좌부불교라고 일컫겠긔.
그게 예의 같아서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는 이렇게 생판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도
경전을 파고들어가면 결국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거긔.
(신기한. 참 신기한)
더 자세한 상좌부불교와 대중불교는 다음 편에서 알아보도록 하겠긔.
오늘은 철저하게 역사 입장에서만 바라보자면
중간에 다시 결집이 일어나서
팔리어가 아닌 산스크리트어로 경전인 생겨나긔.
그리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경전은 이 산스크리트어 버전이긔.
그리고 드디어 중국에 불교가 들어가게 되긔.

중국엔 꽤 늦게 불교가 들어가는데
보시다시피 중국과 인도의 경계엔
에베레스트 같은 높은 산맥이 줄지어 있어서
그나마 낮은 산 실크로드를 따라서 둔황으로 넘어가게 되긔.
중국에 불교경전이 번역 되는데 1000년이나 걸리긔.
산스크리트어는 알파벳의 원조격으로
소리나는 데로 적는 언어고
부처의 말씀이라는 건
부처가 그 때 그 때 말한 거라서 운율이 없긔.
(후세들이 암기하면서 암기하기 쉽게 넣은 운율은 존재하긔)
불교는 뜻으로 읽는 언어인데다가
게다가 중국은 4자 8자로 운율맞춰야 하는 것도 있고
중국은 카스트 제도도 없고 도교가 워낙 판치는 세상이라
불교와 도교, 유교에 다 능하면서도
한자와 산스크리트어에 능해야 경전 번역이 가능했긔.
그래서 번역은 굉장히 더디게 이루어졌고
애초에 인도에서 경,율,논에서
여러 종파가 생겨나면서 논이 정말 많아졌고
대승불교는 새로운 개념이 마구 생겨나면서
그에 맞춰서 경도 늘어났긔. 이걸 일일이 번역해야 하는데
같은 경전이라고 해도 A가 만든 번역본 B가 만든 번역본이 다른데
뭐가 제대로 된 건지 모르니까 일단 다 펴내자.
법화경, 화엄경, 반야경, 천강경, 다라니경, 금강경, 부모중은경.....etc.
불교 경전은 8만개가 넘어가게 되긔.

여기서 8만은 진짜 8만이 아니라 그냥 그 정도로 많다는 뜻이긔.
팔만대장경 만들 때도 당시 나왔던 경전은 다 새겨넣은 거라고 하더라긔.
불교가 어려운 이유가
부처님은 네팔에서 태어났는데
마가다어로 가르침을 설명하다 입멸했고
후세들은 그걸 암기해서 기억하다가
누군가는 팔리어로 기록했다가
나중엔 산스크리트어로 기록했다가
이걸 다시 중국이 한자로 옮겨적는 지난한 과정이 있긔.
경전이 경, 율, 논 인데
논이 길어지고 결국 나중엔 경도 달라지고
어차피 부처가 종교로 만들라고 한 것도 아니라서
이렇게 뻗어나간 불교를 다 인정해주고
원래 불교는 힌두교와 연관이 있긴 하지만
훗날 본격적으로 힌두교가 섞이게되고
중국으로 넘어와서는 도교와 섞이게되고
이게 한국에서 또 변형되고 일본에서 또 변형되긔.
뭐가 다른지 본격적으로 공부해볼까?
마음을 독하게 먹게 되더라도
비슷한 내용이 겹쳐지면서 그 말이 그 말
경전별로 똑 떨어지는 내용도 없긔.
햐.
7. 팔리어 삼장
1800년대 후반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는데
영국의 학자가 스리랑카에서 팔리어 경전을 발견하긔.

뙇!
가장 오래된 경전이 산스크리트어 경전이었는데
아쇼카 왕이 만든 팔리어 경전이 짜잔하고 나타난 거긔.
이게 어쩐 일인가 살펴봤더니
스리랑카에서 1세기에 팔리어로 기록으로 남겨둔 것이었긔.
(아소카 시대보다 몇 백년 지나서)
영국 학자들이 번역에 들어갔지만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관심을 가진 나라는 일본이었긔.
일본은 이 경전을 번역하는 작업에 뛰어들게 된다긔.
(당시가 구한말이라 한국도 중국도 관심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을 때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팔리어 경전을 번역을 마치긔.
응? 근데 이거 아함경이란 경전이랑 비슷한데?

중국엔 수 많은 경전이 있었는데
유치해서 아무도 평가하지 않은 아함경이 있었긔.
사실 뛰어난 스님들은 대승불교에 더 많긔.
왜냐 대중에게 설명을 잘 해줘야 했기 때문에
더 논리적였고 학술적인 가치가 있었긔.
그리고 책으로 출판되면서 경전은 점점 더 길어지게 되긔.
(암기할 땐 짧게 짧게 갔지만 경전으로 쓰면 길게 써도 되니까)
그에 따라 부가 설명도 길어지기 때문이긔.
그러다보니 아함경같은 건 짧고 유치하다는 게 중론이었는데
이게 왠일. 아함경이 오리지널이었긔.
길고, 웅장하고, 멋진 건 후세 승려의 노력의 결정체에 불과하고
진짜는 아함경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현재 가장 많이 연구되는 불경이라긔.
불교의 진정한 연구는 지금이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선두권은 일본이 가지고 있긔.
팔리어 삼장과 아함경을 비교하다보니
숫타니파타가 뙇!!!

영어로 출판된 숫타니파타
숫타니파타는 아함경엔 없는 내용이었긔.
사실 아함경은 중국에서 쓰여진 책이니까
후세의 시각도 많이 들어가고
어디서부터 중국 시각이 들어갔는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에
숫타니파타는 현존하는 불경 중 가장 부처의 말씀에 가깝다고 볼 수 있긔.
그 중 우리에게도 정말 유명한 구절이 있는데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 라긔.

깨달음은 혼자 가야하는 거란 뜻인데
왜 무소의 뿔이냐면
무소 = 코뿔소인데
대개 동물은 좌우대칭이긔.
태생이 혼자 갈래야 갈 수 없는데
무소의 뿔만 하나로 존재하긔.
그래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는 거라긔.
공지영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는
여자들아! 남자 눈치보지 말고 당당히 살자! 라는 내용이라고 하긔.
끝.
p.s 다음 버전에선 대승불교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아보려고하긔.
어차피 우리나라는 대승불교니까요. ㅠㅠ
불교가 너무 어려워서 책은 정말 많이 읽었긔.
불교 (책 제목이 불교긔. 서양사람이 썼긔.)
하룻 밤에 읽는 불교. (절대 하룻밤에 못 읽긔.)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기독교인+종교비교학 학자가 쓴 책이라 읽기 쉽긔)
도올의 ebs 걍연 도올 인도를 만나다.
(가장 좋은데 방대한 게 흠. 중간에 다른 이야기로 새는 이야기도 많은 것도 흠)
(대신 정말 박학다식해지는 장점이 있긔)
내린 결론 : 불교는 스님이 쓰면 뭔 말인지 모르겠음.
그나마 기독교인이 쓰거나 서양사람이 써야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숨구멍이 생김.

인스티즈앱
보고 기분 불쾌해지는 영화 알려주셈 레옹, 은교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