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효근,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 같이는
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되나
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 내는 물방울의 그 둥근 표정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
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 내기도 전에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되나

위승희, 이별, 그 사소함
우리의 사랑보다 우리의 이별은 너무나 사소했네
늘 만나던 까페의 익숙함이
신선하지 않을 인사를 나누며
그대는 창가에서 두 번째 테이블의 덮개가 삼 센티쯤
밀려나간 것을 바라보고
나는 절망으로 자라난 손톱을 자르지 못했다고
말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그대 눈빛에서 꽃 피고 꽃 지는 소리 사라짐은
꽃가게의 꽃들이 너무 많아서였다고
잇몸을 다 드러내고 웃는 그대 입안으로
바람 움트는 지루함
그대 돌아서는 뒷모습에서 쟈켓 한 귀퉁이 조금씩 구겨 올라간 것을
또는
그대가 떠난 자리에 의자 쿠션이 조금 움폭 가라앉은 것을
일일이 기억해야 하는 권태의 바지
드라이크리닝된 그대의 허무가 세탁소 그늘에 내걸릴 쯤
그대 기억할까
마지막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던 사람을
마지막 커피값을 지불한 사람을
그렇게 이별은 사소했네
이제 정갈한 뒷모습의 한 사람이 그리워지네

이기철, 여기에 우리 머물며
풀꽃만큼 제 하루를
사랑하는 것은 없다
얼만큼 그리움에 목말랐으면
한 번 부를 때마다 한 송이 꽃이 필까
한 송이 꽃이 피어 들판의 주인이 될까
어디에 닿아도 푸른
물이 드는 나무의 생애처럼
아무리 쌓아 올려도
무겁지 않은 불덩이인 사랑
안 보이는 나라에도 사람이 살고
안 들리는 곳에서도 새가 운다고
아직 노래가 되지 않은 마음들이 살을 깁지만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느냐고
보석이 된 상처들은 근심의
거미줄을 깔고 앉아 노래한다
왜 흐르느냐고 물으면
강물은 대답하지 않고
산은 침묵의 흰 새를 들 쪽으로 날려 보낸다
어떤 노여움도 어떤 아픔도
마침내 생의 향기가 되는 근심과 고통 사이
여기에 우리 머물며

한 송이 꽃으로 눈길 끌고
세상 겁없이 활짝 피어났다
정성 드려 가꾼 한송이 꽃
어느 날 눈물 흘리는 고통 속에
서걱서걱 벌레 먹은 잎사귀로
누런 떡갈잎으로 떨어져 버린다
열정 속에 불태웠던 사랑도
가슴속에 멍에만 남기고
나 이제 당신의 끈 놓아 주고
발길 돌리는 아픔이 클지라도
두 번 다시 머물지 않으려 하네
그리워하는 만큼 슬프고
내 마음에 상처만 더해가니
보고 싶은 만큼 내 가슴
타들어가는 고통 벗어버리고
너무 사랑 했고
너무 그리워했던 당신이지만
나 이제 당신을 놓아주려 한다
미래의 꿈도 사랑도
여기까지가 운명인 것을
한줄기 비라도 내려 준다면
가슴속 타버린 멍에
빗물에 깨끗이 지워버리고
나 이제
당신 곁을 홀가분히 떠나려 한다
목으로 삼키는 눈물
마음대로 가름 할 수 없어
욕심도 사랑도 부질 없는것을
차라리 눈 귀 막고 망부석이 되려네

신현림,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
슬퍼하지 마세요
세상은 슬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니까
자살한 장국영을 기억하고 싶어
영화 '아비정전'을 돌려 보니
다들 마네킹처럼 쓸쓸해 보이네요
다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해요
외롭지 않기 위해 외로워하고
아프지 않기 위해 아픈 사람들
따뜻한 밥 한 끼 억지 못하고
전쟁으로 사스로 죽어가더니
우수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자살들
살기엔 너무 지치고, 휴식이 그리웠을 거예요
되는 일 없으면 고래들도 자살하는데
이해해 볼게요 가끔 저도 죽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죽지는 못해요
엄마는 아파서도 죽어서도 안 되죠
이 세상에 무얼 찾으러 왔는지도 아직 모르잖아요
마음을 주려 하면 사랑이 떠나듯
삶을 다시 시작하려 하면 절벽이 달려옵니다
시를 쓰려는데 두 살배기 딸이
함께 있자며 제 다릴 붙잡고 사이렌처럼 울어댑니다
당신도 매일 내리는 비를 맞으며 헤매는군요
저도, 홀로 어둠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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