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시 모음
나도 당신처럼 한번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나 멀리 흘렀다. - 시인의 말 中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누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박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中
두 다리를 뻗어
발과 발을 맞대본 사이는
서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는 말을
어린 애인에게 들었다
나는 빈 가위질을 하면
운이 안 좋다 하거나
세 가구를 들여놓을 때도
뒤편에 王 자를 적어놓아야
한다는 것들을 말해주었다
클로버를 찾는
애인의 작은 손이
바빠지고 있었다
나는 애인의 손바닥,
애정선 어딘가 걸쳐 있는
희끄무레한 잔금처럼 누워
아직 뜨지 않은 칠월 하늘의
점성술 같은 것들을
생각해보고 있었다
박준, 미신 中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박준, 꾀병 中
기다리지 않아도 강변에서는
공중에서 죽은 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땅으로 떨어지지도 않은
새의 영혼들이
해를 등지고
다음 생의 이름을
점쳐보는 저녁
당신의 슬픈 얼굴을 어디에 둘지 몰라
눈빛이 주저앉은 길 위에는
물도 하릴없이 괴어들고
소리 없이 죽을 수는 있어도
소리 없이 살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하다가
문득 우리가 만난 고요를 두려워한다
박준, 저녁 - 금강
오늘은 나와 어려서
함부로 입을 대던 아이의
연담(緣談)이 들려와
시내로 가는 길에
우편환을 보낼까 하다
나서지 않았다
이유도 없이 흐려지는
내 버릇도
조금 고쳐보고 싶었다
박준, 2박 3일 中
나는 미인이 새로 그리고 있는
유화 속에 어둡고 캄캄한 것들의
태 (胎)가 자라는 것 같아 불만이었다
그날 우리는 책 속의 글자를
바꿔 읽는 놀이를 하다 잠이 들었다
미인도 나도
흔들리는 마음들에게
빌려온 것이 적지 않아 보였다
박준, 호우주의보 中
졸린 상태에서 타이핑 해서 오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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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불알에 뽀뽀하고 이거 받기vs안하고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