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국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
나는 싸우면 이기지 못한 적이 없었고, 쳐서 뺏지 못한적이 없었다.
나는 곧장 명국으로 진군하여 그 나라를 우리나라 풍속으로 바꾸고 억만년 통치할 것이다.
(조선 침공을 결정하며 남긴 말)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
출정하는 병사들과 그의 가족들은
이 원정이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위험한 원정이라 생각하여 서로 슬퍼 하였다.
그리고 훗날 대부분이 생각한대로 되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 중에서)

동래부사 송상현
죽기는 쉬우나 길을 내주긴 어렵다
(길을 비켜달라는 왜군들의 요구에 대한 답신)
성은 외로이 적에게 둘러쌓이고 이웃 군진들은 고요하기만 하구나.
(동래성이 포위당했지만 아무도 구원해주러 오지 않자 남긴 탄식)
이웃의 법도가 이런 것이더냐? 우리는 너희를 저버리지 않았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이런 짓을 하느냐!
(동래성이 함락되고 왜군들에게 포위당한체 남긴 말)

삼도순변사 신립
조총은 쏘면 다 맞춘답니까?
(조총을 처음 보고 한 말)

종사관 김여물(그림 왼쪽, 일본태합회본기 삽화)
남자가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은 마땅하나,
나라의 치욕을 씻지 못하고 큰뜻을 이루지 못한채 죽는 것이 한이로구나
(문경새제에서 왜군을 막자는 자신의 의견을 신립이 묵살하자 탄식하며 한 말)

왜군 1군단장 고니시 유키나가
후퇴는 비겁하다. 그것은 적의 사기를 올려 줄 뿐 아니라 우리의 명백한 패배를 의미한다.
(탄금대 전투직전 일단 물러나자는 부하의 말에 답한 말)
우의정 유홍
종묘와 사직이 여기에 있고 백성들이 여기 있거늘
전하!
우릴 버리고 어디로 가시나이까
(한양을 버리고 피난하려는 선조에게 눈물을 흘리며 간한 말)
왜장 오오시마 타다야스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
이번에 가신인 가쿠에몬이 일본으로 돌아가니,
조선에서 잡은「하녀로 쓸만한 여자」와 「각시」를 선물로 보냈소.
무사히 도착할 것인가.
「어린 각시」한사람은 딸에게 주고 싶소.
나도 전장에서 11살짜리 아이를 구해 곁에 부리고 있는데, 심히 병약해서 곤란하오.
여하튼 딸에게도 하녀를 하나 구해서 주려오.
사자에몬님에게도 하녀로 쓸 수 있는 아이를 하나 잡아 다음 선물로 보내겠소.
다만, 지금은 가덕이라는 섬에서 지내니 먹는 것도 겨우라,
그 동안 수하들을 써서 잡는다면 선물로 보내고 싶소.

의병장 곽재우
우리는 명예나 이익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위해 싸우니
적을 물리치는 것에만 힘쓰고 논공행상을 따지지 말라
공을 탐내 왜적과 싸운다면 그게 어찌 진심이겠는가?
(자신이 이끄는 의병들에게 한 말)

별장 유극량(사진은 유극량 유허비)
죽는 것이 왜 두렵겠소? 다만 섣불리 군사를 움직이다 나랏일을 그르칠까봐 염려될 뿐이오
(임진강 전투중 무리한 공격명령에 반대하며 한 말
결국 상부의 무리한 공격명령에 의해 임진강을 도강하여 공격하다 큰 피해만 입게된다)

김제군수 정담(사진은 정담 장군의 사당)
적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을지언정, 단 한 걸음도 후퇴하여 살 수는 없다
(전쟁초반 왜군의 전라도 진입을 막아낸 웅치 전투중
적에게 포위되자 후퇴할 것을 권하는 부하에게 한 말
왜군을 막아내는대에는 성공하나 정담 자신은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의병장 조헌
사람은 단 한번 죽을 뿐이니 의(義)에 비추어 부끄러움 없이 하라
(금산 전투 직전 병사들에게 한 말
조헌과 그가 이끌던 의병들은 모두 이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들의 용기에 감동한 왜군은 그들의 무덤과 비석을 만들어주고 떠났다)

의병장 이정암
너희는 무기로 싸우지만 우리는 의로움으로 싸운다.
(연안성 전투시 왜군들에게 한 말)

경기도 의병장 홍언수의 아들 홍계남(사진은 홍계남장군 고루비)
너희들이 나의 아버지를 죽였으니 나도 또한 너희들에게 죽겠노라.
(의병을 이끌던 아버지가 왜군에게 죽고 아버지의 시체를 왜군이 끌고가자
혼자서 칼을 들고 왜군진영에 쳐들어가 한 말)
명나라 대신 설번
그 임금과 신하가 슬피 호소하는 간절한 말과,
곤궁하고 고생하는 정상을 눈으로 본 것을 근거하건대
진실로 존망이 순간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하건데 위급함은 거기에 있지 않고
우리나라 국경이 어지러울수 있는데 있으니 조선을 도와야만 합니다
(조선의 구원요청에 조선에 다녀온 설번이 명황제에게 올린 글에서)

의병장 정문부
지금 스스로 지키기만 한다면 어찌 의병을 일으킨 뜻이겠소?
나아가 싸우지 않는다면 역적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며
안방에 숨어있는 여인네들과 다를바 없을 것이오
(경성 전투 직후 한 말)

왜군 6군단장 고바야카와 다카가게
명나라의 대군에 맞서 모두가 놀랄 정도로 싸우다 주검을 전장에 흩뿌릴 뿐
(벽제관 전투 직전 한 말)

도원수 권율
남자는 의기에 감동할 뿐이니 누가 공명을 따지겠는가?
(행주산성 전투시의 구호)

의병장 김면
나라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내 몸이 있는 것은 알지 못하였구나
(왜군과 쉬지 않고 싸우다 과로로 사망하며 남긴 유언)

승장(僧將) 사명당
조선에서 제일 귀한 보배는 가토의 목이오, 조선인 모두가 가지고 싶어하니 말이오
(강화회담중 조선 최고의 보배가 뭔지 묻는 왜군 2군단장 가토 키요마사 에게 한 말)

의병장 김덕령
봄산에 불나니 못다 핀 꽃 다 타는 구나
그 불은 끌 물이라도 잇으나
내 몸에 연기없이 타는 불은 끌 물이 없구나.
(김덕령이 남긴 시)

왜국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람의 귀는 2개이지만 코는 하나이니. 죽인 조선인의 코를 잘라 소금에 절여 보내라.
병사 1명당 한되의 수량을 채워야 생포하는 것을 허락한다.
(정유재란 직전 왜군에게 내린 명령)

종군승 케이넨(사진은 의승(醫僧) 케이넨이 정유재란 당시 남긴 기록인 조선일일기)
1598년 8월 4일 8월 6일 나는 부모를 찾는 아이들의 울부짖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 비참함은 꼭 지옥의 거리와도 같았다 놓아 달라고 애원하는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이니 다시는 서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살아남은 아이는 귀신이 덥쳐오는 것처럼 공포와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다 8월 16일 비참할 뿐이다. 인간이란 모두 죽어 엎드려 있을 뿐이다. (남원성 함락직후의 기록) 8월 18일 차마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참경이다.
서로 쟁탈하는 모습들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기분이다
이것저것 죽은 자의 재물을 먼저 탈취하려고 벌떼처럼 몰려들어 떠들썩한 모습이여
들판도 산도 전부 불태웠으며 죄없는 사람을 마구 죽였다.
8월 8일
조선인 아이를 왜군이 잡아가자
성안의 사람은 남녀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여버려 살아있는 동물이란 하나도 없다.
새벽에 성 밖을 내다보니 길가에는 시체가 모래산처럼 쌓여 있었다.

왜장 오코치 히데모토
나에게 달려드는 조선병사 두 명을 죽였다
오늘은 8월 15일, 고향신사의 제삿날로 생각되었다피묻은 칼을 내던지고 피로 붉게 물든 손을 합장했다
멀리 일본을 향해 절했다
코를 잘랐다. 갑옷 주머니에 넣었다
전체 목의 수 3,726개 판관이나 대장은 머리를,
그 외는 모두 코를 잘라서 소금석회 항아리에 채워넣었다
("조선물어"중에서)

프란체스코 카를로티
조선은 9개 지방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 중 어떤 곳들로부터 즉 해안에 가까운 지방들에서
왜군은 연령을 가리지 않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남자와 여자, 소년 소녀를 잡아왔는데,
이들은 모두 극히 헐값에 노예로 팔려나갔다.
나는 12 스쿠도를 약간 넘은 가격으로 그 중 5명을 샀다.
("나의 세계일주기" 중에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전선의 수는 적으나 신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한, 적은 우리를 감히 업신여기지 못 할 것이옵니다.
(칠천량 해전 직후 수군을 해체해서 육군에 편입시키려하자 보낸 상소에서 한 말)
병법에 이르길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 했으며
"한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사람을 두렵게 한다"라 했는데 이는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너희는 살려는 생각을 하지 마라.
(명량해전 직전 12척의 전선으로 300척이 넘는 왜선을 상대함에 겁먹은 병사들에게 한 말)
우리보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시나. 우리가 돌아갈 고향이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왜군이 일본으로 돌아갈수 있게 길을 비켜주라는 명나라측의 명령에 응답한 말)

왜국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오사카의 영화는 꿈속의 꿈이로구나.
(도요토미의 유언)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
(충무공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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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속도로 망해간다는 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