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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9년 전 (2016/9/25) 게시물이에요

[한국사이야기] 최고이자 최악의 발굴 : 무령왕릉 | 인스티즈

1971년 공주, 기존에 있던 송산리 6호분의 배수 공사를 하던 도중 우연히 지하에서 의문의 묘를 발견하게 됩니다. 잠들어 있던 무덤에서 여러 백제의 장신구들과, 무덤 주인의 이름이 쓰여진 석판이 발견되었지요. 무덤의 주인은 백제의 25대 국왕 무령왕이었습니다.

무령왕릉의 발견은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백제 무덤 중 유일하게 주인이 확인된 왕릉이자, 도굴되지 않고 고스란히 출토된 유적이니까요. 보통 피장자의 신원을 직접적으로 알 수 없도록 만들어진 다른 고분과는 달리, 이 왕릉은 내부 석판에 영동대장군백제사마왕이라는 정보가 적혀 있었습니다. 정말 희귀한 경우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정작 우리 손으로 한 발굴이었음에도 그 과정은 처참했습니다. 보통 몇 년은 걸릴 법한 발굴 조사를 겨우 하룻밤 만에 철야로 해치워버린 것이지요. 심지어는 작은 유물들을 자루에 쓸어 담았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고고학을 전공하시는 분이라면 뒷목을 잡을 일입니다.

비록 유물은 다 챙겼다고 하지만, 유물만큼이나 중요한 유물의 배치 현장에 대한 기록은 부실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남아있는 자료는 급하게 끝낸 실측자료와 조악한 사진뿐이었죠.
당시 발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모두 크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무령왕릉 발굴 책임자이자 한국 고고학계의 거물이었던 서울대학교 김원룡 박사는 후일 자신의 수기에서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수치이자 과오라고 밝힌 바 있지요.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일제강점기 당시 국내의 유적 발굴은 전부 일본인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때문에 광복 직후 한국의 발굴기술은 전무한 상태였지요. 이 시기 일본인들이 한국을 떠날 때,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일본인 발굴 전문가 한명을 거의 반 강제로 억류해서 그 사람한테 기술을 배웠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무령왕릉 발굴은 1971년의 일입니다. 해방 후 26년이 지난 시점이지요. 한국 고고학계가 26년 동안 아무런 발전 없이 일제에서 전수받은 기술에만 의존하고 있었단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희대의 발굴을 취재하던 기자들의 태도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유물이 발견되자 어떻게든 내부로 들어가 사진을 찍으려고 했으며, 그 중 일부는 책임자를 폭행하고 유물을 파손하기까지 했지요. 한 마디로 사건 현장이 전혀 통제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끌면 유물이 도난당할 수도 있었기에 조급해진 발굴자들은 급한 마음에 유물을 쓸어 담았던 것이지요.

게다가 유물 이송과 보존 과정에서도 발굴조사단과 지역 주민의 마찰도 일어났습니다. 당시의 공주박물관은 시설이 미흡해 유물을 서울로 이송하여 보존을 해야 했는데, 이송 소식을 들은 공주읍의 주민이 몰려와서 ‘단 한 점도 서울로 가져가게 할 수 없다.’고 농성을 벌인 것이지요. 당시에는 발굴단이 일부러 왕릉을 파손한다는 소문이 들기도 했답니다.

당시 고위 관료들의 발굴에 대한 낮은 인식 또한 문제였습니다. 고대 왕릉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보고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유물을 보고 싶어서 발굴을 독촉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출토된 팔찌가 순금인지 확인해보려고 접었다 폈다 해서 주변 사람들이 기겁을 할 정도였지요.

높으신 분들은 발굴을 독촉하고, 기자들은 밀려오고, 인근 주민들은 시위하고,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할 발굴단은 뭘 어찌해야할지 모르겠고.... 그야말로 제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었지요.

종합하자면, 경험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는 겁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졸속발굴이기에 해외 고고학계로부터 아직까지 욕을 먹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평가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도굴꾼도 그렇게까지는 안했을 거다.’
발굴 후의 관리도 엉망이었습니다. 제대로 관리를 못해 왕릉 내에 습기가 찼고 붕괴 위험도 감지되었죠. 결국 1997년 이후로 무령왕릉은 영구폐쇄 됩니다.

백제의 많은 역사를 알려 줄 수도 있었던 무령왕릉 발굴은 결국 수많은 오점을 남긴 채 끝이 났습니다. 출토된 유물들은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유물들의 가치도 대단하지만, 더 소중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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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야기] 최고이자 최악의 발굴 : 무령왕릉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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