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과 마음 사이에
무지개 하나가 놓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 이정하, 사랑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 두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 받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 김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

네가 원한다면 나는
수천수만의 별들을 짜 맞추어
너만의 궁전을 지어줄 수 있어
나의 핏줄로 악보를 짓고
너를 쏙 빼닮은 꽃을 음표로 삼은
당신만의 웅장한 연주를 기대해도 좋아
말만 해, 이번엔 뭐가 필요해?
내 마음?
아니면 내 목숨?
/ 서덕준, 직녀 교향곡
어두운 길을 등불 없이도 갈 것 같다.
걸어서도 바다를 건널 것 같다.
날개 없이 하늘을 날 것 같다.
널 만나고부터는
가지고 싶던 것 다 가진 것 같다.
/ 이생진, 널 만나고부터

사랑했으므로
내 모든 것이 재만 남았더라도
사랑하지 않아 나무토막 그대로 있는 것보다는 낫느니.
/ 이정하, 장작
당신은 아는가
당신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함이
내게는 더 큰 고통인 것을.
당신은 나에게 위안을 주려
거짓 웃음을 짓지만
그걸 바라보고 있는 나는
더욱 안타깝다는 것을.
그대여, 언제나 그대 곁에는
아픔보다 더 큰 섬으로 내가 저물고 있다.
/ 이정하, 거짓 웃음
내 숱한 일기장에 붉은 잉크로 적히곤 했던 나만의 Y야.
파도의 끝자락같이 고왔던 너의 어깨에 장미 덩굴처럼 파고들던 나의 파란 포옹을 기억하고 있어?
네가 가는 길마다 꽃잎으로 수놓을 수만 있다면 나는 온갖 화원의 꽃 도둑이 될 수도 있었고,
너를 너의 꿈결로 바래다줄 수만 있다면 다음 생까지도 난 너를 내 등에 업힐 수 있었어.
새벽에 가만스레 읊조리던 기도의 끝엔 항상 너와 내가 영영코 끊을 수 없는 오색의 밧줄로 감기는 세계가 존재하곤 했지.
Y야. 너의 살굿빛 피부에 잠을 자던 솜털을 사랑했고, 눈동자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을 사랑했고, 너와 함께 했던 그 시절을 사랑했고, 교실 창밖에서 불어오던 꽃가루를 사랑했고, 너의 웃음, 너의 눈매, 너의 콧날과 목선을 사랑했어.
다음 생에는 내가 너를 가져갈게, 나만의 Y.
/ 서덕준, 다음 생에는 내가 너를 가져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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