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덕준 / 금성
달 옆에 유난히도 빛이 나는 별 하나 있기에 물었더니
이정하 / 길의 노래
절망의 꽃잎 돋을 때마다
옆구리에서
겨드랑이에서
무릎에서
어디서 눈이 하나씩 열리는가
돋아나는 잎들
숨가쁘게 완성되는 꽃
그러나 완성하는 절망이란 없다
그만 지고 싶다는 생각
늙고 싶다는 생각
삶이 내 손을 그만 놓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러나 꽃보다도 적게 산 나여.
나희덕 / 너무 많이
그때 나를 내리친 것이 빗자루방망이였을까 손바닥이었을까
손바닥이었을까 손바닥에 묻어나던 절망이었을까.
나는 방구석에 쓰레받기처럼 처박혀 울고 있었다.
창 밖은 어두워져갔고 불을 켤 생각도 없이 우리는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침침한 방의 침묵은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느껴져 하마터면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을 뻔했다.
그러나 마른번개처럼 머리 위로 지나간 숱한 손바닥에서 어머니를 보았다면,
마음이 마음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들었다면,
나는 그때 너무 자라버린 것일까.
이제 누구도 때려주지 않는 나이가 되어 밤길에 서서 스스로 뺨을 쳐볼 때가 있다.
내 안의 어머니를 너무 많이 맞게 했다.
나희덕 / 별
모질고 모질어라
아직 생명을 달지 못한 별들
어두운 무한천공을 한없이 떠돌다가
가슴에 한 점 내리박히는 일
그리하여 생명의 입김을 가지게 되는 일
가슴에 곰팡이로나 피어나는 일
그 눈부심을 어찌 볼까
눈물 없이 그 앞을 질러 어떻게 달아날까
밤하늘 아래 얼마나 숨죽여 지나왔는데
얻어온 별빛 하나 어디에 둘까
어느 집 나무 아래 묻어놓을까
박노해 / 하늘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바보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두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 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죄인을 만들수도 살릴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높은 사람, 힘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대대로 바닥만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그 사람에게만은
이제 막 아장아장 걸음마 시작하는
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겠지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짖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 주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서덕준 / 그 애
동초등학교 2학년 1반,
이훤 / 비밀
나는 새벽마다 너에게 들통나고 싶다.
류시화 / 그건 바람이 아니야
내가 널 사랑하는 것
그건 바람이 아니야
불 붙은 옥수수밭처럼
내 마음을 흔들며 지나가는 것
그건 바람이 아니야
내가 입 속에 혀처럼 가두고
끝내 하지 않은 말
그건 바람이 아니야
내 몸 속에 들어 있는 혼
가볍긴 해도 그건 바람이 아니야.
이정하 / 행여 영영 올 수 없더라도
오늘 오지 못한다면
내일 오십시오
내일도 오지 못한다면
그 다음날 오십시오
항상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지루한 줄 모르는 것은
바로 당신을 기다리기 때문이지요
행여 영영 올 수 없더라도
그런 말은 입 밖에 내지 마십시오
다만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게
행복인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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