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다구치 렌야
"언제까지나 정글 속에 있어봤자 굶어 죽기 십상이지."
식량이 사방에 널려있는데 뭐가 걱정이냐. 풀을 뜯어먹으면서 전진하면 된다!
난 잘못 없어, 부하 잘못이지(私は悪くない、部下が悪い)!
보급이란 원래 적에서 취하는 법이다! (북한군이 생각나네~)
식량은 자동차 대신 소나 말에 싣고 가다가 포탄을 다 쓰면 필요 없어진 소나 말을 먹어라
정글에서 비행기를 어디에다가 쓰냐?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가다가 길가에 난 풀을 뜯어 먹고 진격해라.
구 일본군 소속의 장군 최종 계급은 육군 중장. 이 분은 전술의 바닥이 없는 무한한 무능함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분 덕택에 동남아시아에서 일본군은 계속 죽을 쑤며 대한 독립을 가속화하는데 일조하였음.
생애: 1888년 10월 7일 에 태어남
1910년 일본 육군 사관학교 입교
1917년 29세의 나이로 육군대학교를 졸업, 1차 세계대전 일본군의 시베리아 침공 참전, 프랑스 주재무관
1926년 소좌, 캅차카 반도를 홀로 정탐
~ 1936년 일본 참모본부
1936년 1연대 연대장, 노구교 사건으로 인하여 중일 전쟁으로 확전 됨.
1937년 소장으로 승진하여 제4군의 참모장을 맡게 됨, 일본육군유년학교장
1940년 중장 진급, 제 18사단장으로 싱가포르 전투에 참전
1943년 3월, 버마 방위를 담당하는 제15군의 사령관으로 영전
1944년 임팔작전 실패로 인한 예편
1945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예과 교장으로 현역 복귀, 일본 패망으로 기소
1966년 8월에 사망
그는 잔혹행위에 대한 전범용의자로 체포되어 재판을 위해 싱가포르로 압송되었으나, 그의 무능때문에 오히려 일본군에 큰 피해를 입힌 점이 감안되어 불기소로 석방되었다.
그는 전후에도 "부하의 무능때문에 임팔 작전이 실패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일본의 우익 정치가들은 무타구치를 도미나가 교지, 스기야마 하지메와 더불어 삼대오물(三大汚物)이라고 부르며 비난하였다.
사실 이런 무능한 인물이 중장까지 승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무 능력보다는 학연, 지연, 인맥 으로 진급을 비롯한 모든 것을 결정하던 일본군 특유의 파벌 탓이었다. 무타구치는 당시 군부를 이끌던 우두머리였던 도조 히데키와 같은 육군사관학교-육군대학 파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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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윤 키 158이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