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야에는 정치사회적 비용이 듭니다. 그러나 이 비용보다 중요한 건 헬조선이라고 불리우는 우리 사회에도 참을 수 있는 부조리에 한계라는 것이 있고 바로 지금이 그 끓는점이다, 어른들은 어리석고 지쳐있지만 이것까지 그냥 두고보지는 않는다, 과거에도 몇번 도달해본 적이 있었던 이 끓는점이야말로 이 나라를 위대하게 만들어온 원동력이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노력해서 뭐하냐고 앞서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도 괜찮다, 라고 다음 세대에게 증명하는 일입니다. 이건 우리 공동체에 중요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왕따를 검색해보면 연관검색어로 가장 먼저 뜨는 건 왕따를 당하지 않는 방법이다. 왕따를 당하고 있을 때 알려야 할 곳이나 해결할 수 있는 과정을 다루는 대처법 같은 건 검색어에 없다. 예방법은 찾아보되 해결책은 포기한 병증. 그것이 지금 한국의 왕따 문제다.
한국에서 왕따 문제를 다루는 방법은 내부 고발자를 다루는 모습과 묘하게 닮아있다. 어떻게든 내부에서 조용하게 해결하길 바란다. 부조리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내부고발자 개인의 성향을 들어 조직에 어울리지 못하는 부적응자의 문제로 바꾸어 버린다. 남들도 그러는데 왜 우리 뭐만 가지고 그러냐는 옹호성 관전자들이 생겨난다. 그마저도 관심은 잠깐이고 내부고발자는 결코 보호받지 못한다.
나는 늘 이기는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이겨본 사람이 이길 의지를 가지고 다음에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부고발자도 학교폭력의 피해자도 비극적인 결말만 쌓여왔다. 이러한 경험치는 가해자들에게 매우 잘못된 신호를 보내기 마련이다. 계속 그렇게 해도 된다는 신호 말이다. 물에 빠져 구조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어른 시키는대로 했다가 떼죽음을 당했다. 학교폭력으로부터 구해달라고 자기 발로 찾아간 어른과의 면담에서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었다. 어른들은 언제나 면피만 할 뿐 해결의 의지가 없다. 그런 세상이다. 구제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자력구제 뿐이다. 대체 이 아이들에게 칼을 쥐어주는 건 누구인가.
소년은 부엌칼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한겨레 허지웅의 설거지) 자력구제 부추기는 사회

“풍파를 견딜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라는 말. 풍파는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이라는 의미다. 풍파를 견딜 수 있는 나이란 과연 몇살일까. 한국사회는 그간 생존의 출발선 앞에 선 젊은이들을 시작은 힘든 게 좋다며 세찬 바람 앞에 바람 막이로 썼고 험한 물결이 있을 때는 그 안에 수장시키고 사고라고 둘러댔다. 덕분에 젊은세대는 이 사회에서 전에 없이 가장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세대로 전락했다. 한국사회에서 풍파를 견딜 수 있는 나이가 몇살인지 정확히 산출할수는 없으나, 적어도 젊은세대가 앞서서 풍파를 견디도록 강요당하는 나이인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배를 타고 가던 아이들이 사고를 당해 구조를 기다렸으나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하다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하나도 작동하지 않아서 목숨을 잃었다. 그 아이들의 아버지는 광장 위에 섰고 철저하고 공정한 조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본래 가정에 소홀한 아버지였다, 보상금을 노리고 그러는 것이다 등의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면서 위로는 커녕 모욕을 당했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남자가 오랜 혼수상태 끝에 사망했다. 남자의 가족은 아버지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임종 순간을 지키지 않고 해외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쏟아져나오면서 위로와 지지 대신 비아냥과 손가락질을 당했다.
순백의 피해자. 나는 이걸 순백의 피해자라고 이름 붙였다. 사람들은 순백의 피해자라는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피해자는 어떤 종류의 흠결도 없는 착하고 옳은 사람이어야만 하며 이러한 믿음에 균열이 오는 경우 ‘감싸주고 지지해줘야 할 피해자’가 ‘그런 일을 당해도 할말이 없는 피해자’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순백의 피해자란 실현 불가능한 허구다. 흠결이 없는 삶이란 존재할 수 없다. 설사 흠결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도 얼마든지 인과관계를 만들어내 낙인찍을 수 있다. 나쁜 피해자 착한 피해자를 나누고 순수성을 측정하려는 시도들의 중심에는 의도가 있다. 피해자의 요구나 피해자가 상징하는 것들이 강자의 비위에 거슬리는 것이라면, 그런 피해자는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든 너무나 손쉽게 나쁜 피해자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간과한다. 순백의 피해자라는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 자신 또한 언젠가 피해자가 되었을 때 순백이 아니라는 이유로 구제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그 친구를 더 열심히 돕지 못했다는 이유로 종종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진다. 우리가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던 그 많은 피해자들을 떠올려보자. 어쩌면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도움을 청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
한겨레 허지웅의 설거지) 피해자의 요건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유는, 열심히 일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고 의지만 있다면 반드시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으며 규칙을 지켜도 물에 빠져 죽지 않는다는 걸 우리 다음 세대에게 증명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룰을 지키는 사람들이 더 행복한 나라. 잘못이 있으면 그걸 바로 잡을 수 있는 저력을 가진 공동체.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만 할 유산입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건국 이래 최대 정치 스캔들이다. 사정 기관 혹은 정치권의 자정 노력에 의해 밝혀진 것이 아니라 언론의 취재로 촉발된 상황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워터게이트에 비견될 만하다. 사안의 중대성에 걸맞은 결말을 맞는다면 우리 사회의 가능성으로 기록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흑역사가 될 것이다.
비선 실세나 재단을 활용한 재벌과의 불법 자금 거래 등의 행위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일종의 학습효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안보와 외교를 비롯한 국정 전반에 걸쳐 비선 실세의 이해관계가 작용했고 국민의 세금이 그들을 위해 운용되었다는 사실은 자다가 벌떡 일어나게 만든다. 나는 정말 며칠째 세금이 아까워 밤잠을 설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우리 공동체의 수준과 미래를 대변하기 위해 뽑은 대통령이라는 걸 감안할 때, ‘그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곧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나는 안 뽑았는데요, 라는 말은 지금과 같은 때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 가운데 이경재 변호사의 말이 내 눈을 가장 오랫동안 잡아끌었다. 이경재 변호사는 최순실의 변호인이다. 그는 라디오 인터뷰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순실의 딸에 대해 묻는 사회자에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지금 그 딸이 어느 정도 세월의 풍파를 견뎌낼 만한 나이 같으면 모르겠는데 이거는 아닌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이해할 만한 그런 아량이 있지 않나.”
이경재 변호사가 공안검사 출신으로 그 나이대의 젊은이들에게 과거 무슨 짓을 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논외로 치도록 하자. 놀랍게도 나는 이경재 변호사의 말에 동의한다. 나는 젊은 세대가 세상의 풍파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원리를 배우기 전에 현실의 아니꼽고 치사함을 먼저 경험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단 한번도 젊은 세대를 향해 그런 종류의 아량을 베풀어본 일이 없다는 데 있다.
지금 이 파국의 시대를 맞이해 우리가 가장 염려해야 할 것은 우리 세대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가 아니다. 다음 세대에게 이런 나라를 물려줄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 우선되어야 마땅하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유는, 열심히 일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고 의지만 있다면 반드시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으며 규칙을 지켜도 물에 빠져 죽지 않는다는 걸 우리 다음 세대에게 증명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룰을 지키는 사람들이 더 행복한 나라. 잘못이 있으면 그걸 바로잡을 수 있는 저력을 가진 공동체.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만 할 유산이다.
씨네21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풍파를 견딜 수 없는 나이라는 말

마징가Z 전까지만 해도 대개의 거대로봇물은 주인공이 외부에서 로봇을 조종하는 방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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