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와 인사를 하면
저 사람 미쳤다고 수군거린다
나무를 알고 싶어 나무와 얘기를 나누면
저 사람 한다고 고개를 흔든다
없는 것을 본 것이 아니고
안 보이는 것을 보았을 뿐인데
무슨 죄인 만난 듯 돌아서 버린다
머지않아 보이는 것은 사라지고
안 보이는 것이 보이는 날
하늘에 바람 하나 걸고 산 삶이여 행복하여라
그 날을 기다리던 시간들은

안도현, 가을의 소원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하루쯤은 하루쯤은
멀리 아주 먼 곳으로 가서
사랑하는 사람을 안고 또 안고
원초적인 사랑을 하고 싶다
뻔히 아는 삶
뻔히 가는 삶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일이
무슨 죄일까 싶다가도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것 같아
주위를 살피다 웃어 버린다
그냥 좋은 대로 살아가야지
그리한들 뭐가 유별나게 좋을까
그러다가도 웬일인지
하루쯤은 하루쯤은
사랑하는 사람을 꼭 안고픈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나는 외로웠다 바람 속에 온몸을 맡긴
한 잎 나뭇잎 때로 무참히 흔들릴 때
구겨지고 찢겨지는 아픔보다
나를 더 못 견디게 하는 것은
나 혼자만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는
외로움이었다
어두워야 눈을 뜬다
혼자 일 때, 때로 그 밝은 태양은
내게 얼마나 참혹한가
나는 외로웠다
어쩌다 외로운 게 아니라
한 순간도 빠짐없이 외로웠다
그렇지만 이건 알아다오
외로워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라는 것
그래 내 외로움의 근본은 바로 너다
다른 모든 것과 멀어졌기 때문이 아닌
무심히 서 있기만 하는 너로 인해
그런 너를 사랑해서 나는
나는 하염없이 외로웠다

김길종, 저녁 어스름
어두워져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어두워져야 눈 뜨는 것들이 있다
어두워져야 자라는 것들이 있다
어두워져야만 꽃피는 것들이 있다
어두워져야만 빛나는 것들이 있다
아아, 어두워져서야 그리운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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